문학소녀 : 별밤서재

문학소녀 요약정보 및 구매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상품 선택옵션 0 개, 추가옵션 0 개

  • 김용언
  • 반비
  • 2017-06-19
  • 9788983718518 (898371851X)

15,000

13,500(10% 할인)

포인트
130p
배송비
무료배송
포인트 정책 설명문 닫기

00포인트

포인트 정책 설명문 출력

관심상품

선택된 옵션

  • 문학소녀

관련도서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상품 정보

별밤서재 사은품
책 소개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책 상세소개
전혜린에 열광했던 이들의 관점에서, 전혜린을 재조명하다!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의 편집장 김용언, 스스스로 읽고 쓰는 여성인 저자가 한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왜 소녀들은 전혜린의 글을 통해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에 입문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경멸과 비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를 벗어나려 애쓰게 되는지를 이 책에서 밝히고자 한다. 소녀 취향, 감정의 몰입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과 시에 열중하는 미성숙함, 그런 이미지로 안전하게 놀려댈 수 있는 대상이 된 ‘문학소녀’. 그리고 10대 초반 문학소녀의 정통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갈 때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던 전혜린. 저자는 이제 와선 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는 전혜린에 대해, 전혜린에 열광했던 세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혜린이 그렇게 비웃음과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 물으며 전혜린을 경유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읽기와 쓰기가 폄훼되어온 기나긴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는 전혜린이라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던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살피는 동시에 너무나 자주 오해되거나 표면적으로만 읽혔던 그녀의 글들을 그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며 전혜린이라는 인물의 한계를 짚어내는 동시에 그녀에게 매혹되었던 많은 이들의 기억의 의미를 발굴해낸다.

목차
들어가며 전혜린은 ‘흑역사’인가

1 전혜린이라는 예외적 존재
2 한국을 탈출하려는 꿈
3 전근대 한국의 세계시민
4 전혜린은 ‘창작’하지 못했는가
5 수필이라는 퍼포먼스
6 신의주, 부산, 그리고 슈바빙
7 번역가 전혜린
8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
9 신여성에서 여학생까지, 소녀의 탄생
10 ‘소녀 감성’의 폄하
11 여류 작가 수난사
12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
13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

후기
참고문헌
전혜린 연보
출판사 서평
소녀 취향, 감상주의, 미성숙함……
‘문학소녀’는 어떻게 안전하게 놀려댈 수 있는 대상이 되었을까“그 시절의 문학소녀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계속 읽고 쓸 것이므로.”
―조남주(소설가, 『82년생 김지영』)“이 책은 여성들의 읽기와 쓰기의 의미를 결정하고 구성하는 해석 투쟁이 드디어 시작됐다는 선언이다. 이런 책이 우리 서재에 200권쯤 꽂혀 있게 되길 열렬히 바란다.”―오혜진(문학평론가)“너무 오랫동안 오해받아온 전혜린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여성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억압하는 사회, 여성의 성취를 은근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사회를 향해 오직 자신의 글쓰기로 투쟁한 예술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전혜린은 그 어느 때보다도 눈부시다.”―정여울(작가)신여성에서 전혜린까지, 읽고 쓰는 여자들의 수난사미문 취향, 낭만적 감상성, 부르주아, 서구 동경, 소녀 감성……. 오랜 세월 여성 작가들의 글에 따라붙어온 수식어들이다. ‘문학소녀’라는 말도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역사의식’이 없으며, ‘감상주의’에 치우쳐 있는 ‘미숙한 글’이라는 등의 온갖 폄하를 응축한 것 같은 단어다. 그리고 전혜린은 그런 ‘부잣집 철부지 문학소녀’의 대명사로 가장 자주 불려나왔던 인물이다. 박정희는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이런 교양주의를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의 소녀”라 부르며 “피와 땀과 눈물을 모르는, 노동하지 않는 자”, “우리의 적”으로 지목함으로써 전혜린, 문학소녀를 구악(舊惡)이자 적폐로 상징화하기도 했다. 온통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남발하고, 한국에 발을 딛고도 유럽의 어딘가를 고향처럼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불화하는 자기 자신에게 몰두했던 전혜린의 글은 많은 여성들에게 책 읽는 사람으로서 자의식을 키우게 만든 출발점이지만, 황급히 잊고 극복해야 할 ‘흑역사’로 여겨지기도 했다.
『문학소녀』에서 그 스스로 ‘읽고 쓰는 여성’인 저자 김용언은 전혜린을 경유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읽기와 쓰기가 폄훼되어온 기나긴 역사를 파헤친다. 1920~30년대 ‘여류 작가’들이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신기한 취급을 받으며 남성 평자들에게 멋대로 논평할 대상이 되곤 했던 풍경을 환기시키고, 1960년대 여학생 대상의 잡지에서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소녀다움을 잃어서도 안 되는” 이중규범을 발견한다. 걸출한 화가이자 문인이었던 나혜석조차 「이혼고백장」에서 가부장제를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격심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가족과 사회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채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여성 작가는 작품이 아닌 ‘스캔들’로 소비되기 일쑤였다. 잡지 《신여성》에는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 《신여자》 주간으로 활약했던 김원주 등 여성 문인들의 온갖 사생활과 뜬소문을 폭로하며 깎아내리는 코너 ‘색상자’가 있을 정도였다. 1930년대부터 등장한 강경애, 모윤숙, 최정희 등 ‘2세대 여류 문사’들은 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여류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소녀 문단”, “여류라는 프레미엄”, “지나친 섬세 감각이라는 한계성” 등 이 시기 여성 문인들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범주화한 남성 지식인들의 언어를 자세히 살펴본다. 한국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과거를 추적함으로써, 왜 소녀들은 전혜린의 글을 통해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에 입문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경멸과 비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여류’를 벗어나려 애쓰게 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문학소녀는 작가가 되지도 못할,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인문-사회-과학서들이 아니라 감정의 몰입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과 시에 열중하며 여전히 몽상을 끄적거리는 유아적 단계에 머물러 있는 독자라는 느낌이다. 전혜린은 그런 사람의 대표자처럼 자꾸만 불려나왔고, 그래서 어릴 때 전혜린의 글을 읽고 좋아했던 사람이라도 아직까지 여전히 ‘전혜린의 상태’에 머무르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17)[1965년 창간한 잡지 《여학생》에 실린 세계문학 작품 소개 기사에 관해] 이를테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주인공을 설명하는 기사가 이런 식이다. “돈키호오테 형이라면 적어도 축복받은 느낌을 주지만 결코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가볍게 살아가는 타이프는 아니고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력으로 이상을 구하는 영원한 젊은이다. 당신 주변에도 조금 괴짜인 실수만 거듭하는 남자가 있을 것이다. 낙제 점수를 받거나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간에 초연한 자세로 있는 이러한 타이프는 보이 프렌드로서는 ‘햄릿형’보다 호감이 가는 타이프다. 고민을 상의하면 즉석에서 해결해 줄 것이다.” 혹은, 여성 주인공을 설명할 때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은 “고집이 센 여성”,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세실은 “에고이스트이자 질투심이 강한 여성”으로서 이성 교제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 이성 친구가 리드할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주는 게 좋다는 조언을 덧붙였다고 한다.(147)소녀들의 독서와 글쓰기는 훈육과 계몽의 주체, 많은 경우 ‘남성’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떤 소녀는 실존주의 문학을 ‘잘못’ 이해해서 자살을 기도했고, 어떤 소녀는 ‘소녀답지’ 않은 현실 인식을 글로 썼기 때문에 옳지 않고, 또 어떤 소녀는 과도한 감상을 글로 쓰는 바람에 ‘열등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공인된 권장 도서를 읽되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교양으로서의 지식으로만 습득해야 했고, 그럼으로써 ‘소녀다운’ 순수성은 간직하며 남성-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제가 제시된 것이다.(157)“남성 작가는 감쪽같이 자기를 은폐하고도 걸작을 내놓을 두력(頭力)을 가졌지마는, 그를 못 가진 여성 작가에 있어서는 반대로 있는 대로의 자기를 표박(漂迫)할 때에 한해서 볼 만한 글을 내놓는다는 불문율을 새로이 인식하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즉 “신진 문단에 등록될 작품”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여류 문단’, 아니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류 문단’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문청(文靑) 문단이란 말에 대하여 소녀 문단”이라 불러 마땅한 집단에서, 최정희의 ‘수필’이 자신의 내면 혹은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어 남성은 쓸 수 없는 방식으로 표면에 끌어올렸기 때문에 그나마 봐줄 만하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182)대중들이 열광하고 사랑하는 ‘말랑말랑한’ 종류의 책에 대해 단호하게 그것은 ‘고급 문예’가 아니고, ‘일류 문사’가 쓸 법한 글이 아닌 종류의 ‘창피한’ 책이라는 경멸은 나름의 기준을 통해 고급과 저급의 구분을 가르고, 대중과 지식인 사이의 경계선을 가르고 있는 이들이 취하는 태도다. 천정환은 1920년대부터 “낭만적 감상성의 문학”, “미문 취향”은 극복해야 할 한계이며 공격받아 마땅한 대상이었다고 확인한다.(194)어쩌면 전혜린은 제1기 여류 문인과 제2기 여류 문인이 겪은 호기심과 조롱과 모욕적인 숭배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한국에 돌아온 전혜린이 급작스레 자신의 평범함과 초라함을 과장스럽게 자문하게 되었던 과정에는 재능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과 (당시 남성 문인들이 전혜린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썼던 단어인) “괴짜”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당시의 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녀는 ‘슈바빙의 자유로운 개인의 위치’에서 ‘1960년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현실’로 급작스럽게 내동댕이쳐진 것이다.(196~197)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국가와 혁명과 나』를 집필하며 “전체 국민의 1% 내외의 저 특권 지배층의 손”, 그 “보드라운 손결”이 “우리의 적”이라고 지목했다. 그는 왜 부정부패를 통해 대부분의 국민들을 수탈하며 계층의 극단화를 실현했던 ‘주적’의 정체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식민지 시기를 급작스럽게 끝낸 다음 큰 혼란 속에 전쟁까지 치르게 된 상황을 이용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이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거기에 느닷없이 ‘고운 손으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의 형상을 세우는가? 스스로를 변호할 힘이 없기 때문에 비난하기에 가장 손쉬운 대상인 문학소녀는 노동하지 않는 자, 피와 땀과 눈물을 모르는 자로 순식간에 변신한다.(209)‘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 전혜린을 다시 읽다“전혜린의 수필들은 비범함을 열망했던 평범한 여성의 평범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고종석이 『말들의 풍경』에서 전혜린에 대해 내렸던 냉정한 선고다. 많은 평자들은 전혜린을 ‘문인’ 혹은 ‘작가’로 부르기를 저어했고, 그녀는 ‘제대로 된’ 작가라기보다 철없는 시절의 열광, 미성숙했던 특정 시기가 지나면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치부되기 마련이었다. 반면 전혜린은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청춘들의 정신적 풍경을 형성하는 데에 일조했던 아이콘이기도 했다. 많은 젊은이들, 특히 ‘문학소녀’들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문학적 감수성의 첫 단계에 입문했고, 그녀가 펼쳐 보인 뮌헨의 생생한 묘사 속에서 ‘여기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었으며, 문학과 글 속에서 비로소 현실 세계에선 찾지 못했던 자신의 자리를 발견했다. 『문학소녀』는 전혜린에 열광했던 이들의 관점에서, 그녀의 글에 몰두했던 한때의 기억에서 출발해 전혜린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전혜린이라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의 등장을 가능케 했던 시대적, 사회적 맥락을 살피는 동시에, 너무나 자주 오해되거나 표면적으로만 읽혔던 그녀의 글을 그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낸다. 1950년대 한국 사회라는 맥락에서 전혜린의 성장 환경을 객관적으로 살핌으로써 손쉽게 ‘미성숙함’으로 치부되던 서구 교양에 대한 동경이 당시 교육받은 여성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밝힌다. 또 독일로 유학을 떠나서도 출산과 육아를 감당하고 같은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번역과 집필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개인사를 조명하며 당시 여성 지식인이 겪어야만 했던 분열을 짚어낸다. 그리고 한국어로 쓰인 기행문을 살필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저자로서 전혜린, 그리고 남다른 감식안을 갖춘 번역가이자 출판 기획자로서 전혜린이라는 존재를 재조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혜린이라는 인물의 한계를 짚어내는 동시에 그녀에게 매혹되었던 많은 이들의 기억의 의미를 발굴하는 균형 잡힌 시선은 한 시절을 뒤흔들었던 중요한 사건으로서 전혜린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사춘기의 한복판을 지나면서 어릴 때는 아무 불만 없었던 일상의 많은 부분이 시시해졌고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라는 보들레르의 시구를 일기장에 베껴 쓰며 다른 시공간을 공상하게 되었다. ‘나는 당신들 중 일부가 아니야.’라는 의식은 주변에 대한 은밀한 우월감이기도, 나는 왜 그들 같지 못한가라는 초조한 자괴감이기도 했다.(15)“1934년생인 전혜린은 일제에 의해 이식된 근대 문화와,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였던 식민지 최상층 엘리트가 가진 돈과 문화자본에 의해 길러졌다.” 다시 말해 전혜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여성”이자 “예외적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존재는 그녀의 아버지 전봉덕이었다.(22~23)현재 시점에서 전혜린을 비판적으로 조롱하는 시각, ‘부잣집 딸내미의 교양 있는-공주-코스프레’라는 시각은 어느 정도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고려하며 교정되어야만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문화자본을 구분하지 않아야만 그 같은 조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30)“내가 아주아주 부자가 되면 살롱을 열고 싶다. 19세기 중엽의 그것과 같은 것, 언제나 맛있는 음식과 음료와 모든 것을 손님의 쾌적을 위해서 설비해놓고, 수많은 방에 맘대로 가서 자유스럽게 앉게 설비해 놓고, 크디큰 수풀과 노래하는 분수가 있는 정원도 해놓고, 정신의 귀족들, 아름다운 영혼(schone Seele)들을 전부 모아서 드나들게 하고 싶다. 대화에 의해서 우리 의식이 잠드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완존(完存)에 돌입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34~35)독일 유학 당시 일기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노동과 불안에 대한 토로를 읽노라면,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가 독일에선 철저하게 제3세계 이방인이자 가난한 유학생으로서, 동시에 어린 임산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에 번역 노동까지 쉴 새 없이 수행했던 나날의 낯선 디테일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녀는 독일 유학 당시 며칠 내내 물만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고 처음 경험하는 ‘진짜 굶주림’의 체험을 토로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수익의 절반 이상을 책 사는 데 쓰면서 “가난이 우리에게는 재미있었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임신하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정신적 사치마저 누릴 수 없었다. 출산과 관련된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역시 유학생 신분인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가사 노동을 책임지며, 만삭의 몸을 이끈 채 《여원》 등의 잡지와 몇몇 출판사를 위한 번역을 하고 수필을 쓰며 얼마 안 되는 원고료를 벌었다.(35~36)그러므로 전혜린을 생각할 때, ‘그녀가 창작품을 내놓지 못했다’라는 부분 혹은 ‘그녀의 수필이나 일기, 편지가 지나게 감상적이고 소녀적이다’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비판할 것이 아니라(애당초 그 일기의 독자는 나나 당신이 아니었다.), 그녀가 쓴 수필과 그녀가 번역한 작품들이 한국문학계에, 혹은 동시대인 1960~70년대 청춘들의 정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피는 게 더 맞을 것이다.(80~81)드디어 기차가 조선에 놓이면서 전국을 빠르게 여행하는 게 가능해지자, 이광수는 그 사실을 신문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1917년 두 달 동안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경상북도를 거친 뒤 「오도답파여행(五道踏破旅行)」을 썼다. 특히 이광수가 부산 해운대에서 느낀 시정을 지극히 감각적으로 노래한 부분을 읽고, ‘문학청년’ 현진건은 큰 감명과 동경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사이에서 오간 영감의 교환은 문학적 자산으로 간주되지만, 전혜린과 그녀의 독자들에게는 그런 호의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다시 상기해보자.(96~98)전혜린이 수필-기행문을 통해 이국적인 유럽 취향을 전염시켰던 데 대한 비판적 시선과 그녀의 ‘번역’에 대한 아주 쉬운 폄하의 눈길은 평행하게 흐른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 했던 것과 별도로, 그녀가 현대 독일문학을 쉼 없이 읽고 연구하고 번역했던 건 그 작업에 기쁨과 보람, 어떤 사명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혜린이 쓴 글의 목록보다 더 길고 풍부한 것은 그녀가 번역한 책의 목록이다.(105)박숙자는 전혜린의 직업을 ‘수필가’보다 ‘번역자’로 보는 것이 그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박숙자는 전혜린의 번역작 중 가장 반향이 높았던 작품으로 『데미안』과 『생의 한가운데』4를 꼽으며, 번역자 전혜린의 감식안과 기획력에 집중한다. 이 중 『데미안』은 ‘노오벨문학전집’ 속 한 편으로, 『생의 한가운데』는 ‘독일전후문제작품집’ 속 한 편으로 포함되었는데 이 같은 전집이나 작품집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현대 독일 문학의 문제작들을 선별하는 기획력이 필요한 작업이었다.(107~108)스스로를 “점수 따기와 책상버러지와 독서광의 부류”에 속한 사람이라고 규정한 전혜린은 본질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읽히고 싶은’ 독서광의 조바심을 간직하고 있었다.(113)솔직해지자. 전혜린의 ‘드라마 퀸’으로서의 기질, 문학과 예술에 현혹되어 자신이 그 일부인 것처럼 착각하는 ‘문학소녀’로서의 기질 앞에서 얼굴이 달아오르지 않을 사람은 없다. 스스로를 ‘공부 안 해도 성적 잘 나오는 천재 소녀’로 포장하는 기술이라든가, 공부도 뛰어나게 잘했지만 그 이외의 것, 즉 다른 모범생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을 서슴없이 해치울 수 있는 ‘비범한 천재 소녀’로 포장하는 기술.(122)여성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문학사, 여성 공동의 문화적 기억김용언은 『문학소녀』와 관련된 내용을 이야기했던 자리에서의 에피소드를 전한다. 저자보다 많게는 스무 살, 적게는 열 살가량 어린 참석자들은 당연히 ‘전혜린’이라는 이름조차 알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전혜린을 알고 있었고, 대부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다고 했다. 그 책을 읽게 된 계기를 질문하자 어머니의 책장에 꽂혀 있어서, 친했던 선생님이 추천해서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전혜린이 숨을 거둔 1965년 이후로 50년이 더 지나도록, 젊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을 통해 그녀의 글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책이, 문학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목록, 즉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와 같은 남성 저자들의 책이 차지했던 자리들 뒤로 좀처럼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문화적 기억’이 존재한다. 저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호출해서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 전집, 에이브 문고, 에이스 문고, 파름문고, 할리퀸 로맨스, 그리고 전혜린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이 계보를 재구성한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기억’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한, 어린 시절을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전혜린을 이해하기 위한” 여성 작가의 독서기이기도 하다. 한번이라도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이었던 여성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이러한 공동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고, 사회의 시선에 짓눌려 있던 자신의 매혹과 판단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이제 와선 ‘책 읽는 여자의 흑역사’의 대명사쯤으로 여겨지는 전혜린에 대해, 전혜린에 열광했던 세대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김양선이 언급한, “개인과 집단이 동일한 규범, 관습, 풍습이라는 토대 위에서 공유된 과거를 회상함으로써 현재 정체성을 구성하는 행위”로서의 ‘문화적 기억’을 나의 개인적 체험 위주로 재구성한다면,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명작동화 50권 전집, 에이브 문고, 에이스 문고, 파름문고, 할리퀸 로맨스, 그리고 전혜린으로 이어질 것이다.(9~10)그중에서도 전혜린의 글은 10대 초반 ‘문학소녀’의 정통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갈 때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처음 접했다. 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던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느닷없이 “우리 언니가 무척 좋아하는 책인데 너한테도 어울릴 것 같아.”라며 그 책을 건넸다. 아마 하루 만에 다 읽었던 것 같다. 책을 친구에게 돌려주고, 서점에 가서 삼중당의 문고본을 구입해서 재독했다.(12~13)아스팔트 킨트, 소식(小食)과 불면, 인식욕, 절대로 평범해져선 안 된다는 전혜린의 맹세가 그때의 나를 사로잡았다. 그전까지 읽었던 한국 동화들은 왜 그렇게 과수원과 따뜻한 고향집이 많이 등장했는지, 서울에서 태어나 한 번도 이사를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도저히 그 동화들을 현실감 있게 읽지 못했다. 그런데 전혜린의 에세이 「홀로 걸어온 길」의 강력한 첫 문장,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아스팔트 킨트(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회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쓰일 수 있는 명칭이다.”를 접한 순간 나는 비로소 아스팔트 위 나의 고향을 찾은 것 같았다.(13)그리고 전혜린의 글 속에 언급된 다른 책들, 이를테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와 몇 년 뒤에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까지. 전혜린이 에세이 「새로운 사랑의 뜻」에서 언급한 바흐만의 『맨해탄의 선신』은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를 읽는 수순을 밟았다. 전혜린에게 공감한다면 그녀가 사랑했던 책에도 당연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14~15)내 또래의 수많은 소녀들은 전혜린의 글을 읽으며 지금-내가 속한-현실에 대한 불만을 비로소 인지했고 문학에 심취하는 ‘나’를 좋아하게 되고 낯선 장소를 동경하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에서 출발하는 독서의 행로, 즉 “개인의 일상적인 독서 체험과 관련된 기억”은 김양선의 말처럼 “여성의 역사에 대한 공식적인 ‘망각’에 대항하는 ‘대항기억(countermemory)’”이 될 수 있지 않을까.(18~19)현실 세계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지만 문학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본질적으로는 평범했지만 생의 어떤 특정한 순간의 상황과 우연의 힘을 빌려 잠시 동안 특별할 수 있었던, 그리고 그 시절을 두고두고 추억하며 자기위안을 동력으로 삼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 명사로서 전혜린의 힘은 강력하다.(223~22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편집한 대학생 김화영이 “명동의 명문 대폿집 ‘은성’에서 단 한번 만난 것이 기억의 전부인 전혜린 씨”를 위해 일종의 ‘헌신’을 기울이면서 당대의 스타 이어령의 이름 뒤에 숨어 자신의 사랑을 아낌없이 고백했던 것은, 이후 전혜린에게 매혹된 문학소녀들의 원형처럼 느껴진다.(225)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문학소녀
저자 김용언
출판사 반비
출간일 2017-06-19
ISBN 9788983718518 (898371851X)
쪽수 236
사이즈 135 * 195 * 21 mm /327g
배송공지

사용후기

회원리뷰 총 0개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

등록된 상품문의

0개의 상품문의가 있습니다.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교환/반품

교환 및 반품
[반품/교환방법]
마이페이지> 주문배송조회 > 반품/교환신청 또는 고객센터 (1544-0435)로 문의 바랍니다.

[반품주소]
- 도로명 : (10882) 경기도 파주시 산남로 62-20 (산남동)
- 지번 : (10882) 경기도 파주시 산남동 305-21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14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반품/교환비용]
단순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으로 단순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 ①양서-판매정가의 12%, ②일서-판매정가의 7%를 적용)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됩니다.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 문학소녀

회원로그인

오늘 본 상품

  • 문학소녀
    문학소녀
    13,500
  • 애도의 공동체
    애도의 공동체
    14,400
  • 발도르프 공부법 강의
    발도르프 공부법 강
    9,000
  • 나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네가 듣고 싶
    13,500
  • 연애대장
    연애대장
    12,600
  •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지극히 문학적인 취
    23,400
  • 사랑은 서툴고 결혼은 먼 그대에게
    사랑은 서툴고 결혼
    11,700
  •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생각이 너무 많은
    14,400
  • 밥따로 물따로 음양식사법
    밥따로 물따로 음양
    10,800
  • 그리운 문학 그리운 이름들
    그리운 문학 그리운
    16,200
  •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나를 바꾸는 글쓰기
    16,200
  • 스눕
    스눕
    14,400
  • 콤팩트 일본어 문법
    콤팩트 일본어 문법
    5,400
  • 인스티튜트. 1
    인스티튜트. 1
    13,500
  • 최강 우주탐사대
    최강 우주탐사대
    11,700
  • 세상의 모든 가족
    세상의 모든 가족
    9,000
  • AI 시대, 내 일의 내일
    AI 시대, 내 일
    13,500
  • 우리는 작게 존재합니다
    우리는 작게 존재합
    15,300
  •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단독자 김종인의 명
    14,400
  • 참 좋은 소통의 지혜
    참 좋은 소통의 지
    13,500
  • 웃음 치료
    웃음 치료
    11,700
  • 뇌내혁명
    뇌내혁명
    1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