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 별밤서재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요약정보 및 구매

날조된 천황 37명과 일본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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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희
  • 주류성
  • 2019-08-26
  • 9788962464016 (896246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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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서재 사은품
책 소개
날조된 천황 37명과 일본고대사
책 상세소개
무려 2,679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어온 일본 천황가(天皇家)는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일본 사람들은 일본을 통치한 천황가(天皇家)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초대 천황이라는 신무(神武)가 기원전 660년에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는 이때부터 서기 687년에 즉위한 40대 지통(持通)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왕조교체도 없이 계속하여 이어져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697년 즉위한 문무(文武)천황부터 현재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천황가의 왕통이 계속된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 천황가는 기원전 660년 즉위하였다는 신무 이래 2019년 현재 시점까지, 무려 2,679년이라는 길고도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단 말인가? 전 세계에서도 전무후무한 이 기적 같은 일이 과연 사실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황가는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섬나라 일본에서 자생하였을까? 아니면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 정복왕조를 세운 것인가?

목차
머리말

서장 『일본서기』는 왜 천황가의 기원을 은폐하였나?
1. 일본의 천황은 어디 출신인가?
1) 천황가의 시조는 신무神武인가?
2) 신무 이후 9대까지 가공의 왜왕
2. 천황가의 진실을 은폐한 이유
1) 역사의 창작과 연장
2) 『일본서기』에 보이지 않는 토착왜인
3) 토착왜인의 민족분규에 대한 대비
3. 왜국 지배층 백제인들의 왜인화 정책
1) 소수 민족에 의한 다수 민족 지배의 사례
2) 돌아갈 곳이 없었던 재왜 백제인
3) 『일본서기』는 구백제계 귀족의 관점에서 서술한 역사서

1장 허구의 왜왕과 창조된 왜왕릉
1. 왜 왜왕릉인가?
1) 방치되어 온 왜왕릉
2) 무수하게 많은 고분과 왜왕릉
2. 『해동제국기』로 본 『일본서기』의 변작
3. 허구의 왜왕과 창작된 왜왕릉
1) 시조 신무(神武)
(1) 고고학으로 본 신무의 시대
(2) 『해동제국기』의 옥의희玉依姬
(3) 시조릉
(4) 수릉修陵작업
(5) 신무릉은 총산塚山고분에서 신무전神武田고분으로
(6) 신무전고분의 타당성
(7) 『일본서기』의 신무릉
2) 2대 왜왕 수정綏靖
(1) 결사8대 왜왕과 무덤
(2) 수정의 실존 여부
(3) 수정의 무덤
3) 3대 왜왕 안녕安寧
4) 4대 왜왕 의덕懿德
5) 5대 왜왕 효소孝昭
6) 6대 왜왕 효안孝安
7) 7대 왜왕 효령孝靈
8) 8대 왜왕 효원孝元
(1) 무내숙내武內宿?, ta?ke?u?ti?no?su?ku?ne
(2) 효원의 여러 아들과 오포피코大毘古
9) 9대 왜왕 개화開化
(1) 개화의 손녀 갈성지고액비매葛城之高額比買
(2) 새로운 도읍지 카스카春日, ka?su?ka
10) 10대 왜왕 숭신崇神
(1) 임나의 조공
(2) 칼과 거울의 제작
(3) 근강주近江州의 호수와 서복徐福
(4) 숭신의 무덤 72
(5) 저묘箸墓
11) 11대 왜왕 수인垂仁
(1) 인간세상에 내려온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이세신궁伊勢神宮
(2) 수인과 왕후의 무덤
12) 12대 왜왕 경행景行
(1) 경행의 후비 가구루비매迦具漏比買, ka?gu?ro?pi?me
(2) 83세에 즉위한 경행의 여성편력
(3) 경행의 규슈九州 정벌
(4) 경행의 아들 일본무존日本武尊과 경행릉
13) 13대 왜왕 성무成務
14) 14대 왜왕 중애仲哀
(1) 부친 일본무존과 모 양도입희兩道入姬
(2) 금은金銀의 나라 신라
(3) 신공왕후神功王后
(4) 한漢에 대한 사신 파견과 신공의 무덤
15) 15대 왜왕 응신應神
(1) 출산을 억제하기 위한 돌 ‘진회석鎭懷石’
(2) 응신의 왕후와 여성편력
(3) 백제인의 도왜 1
(4) 백제인의 도왜 2
(5) 목만치木萬致
(6) 백제 태자의 도왜
(7) 일본은 삼한三韓과 동종同種인가?
(8) 응신의 무덤
16) 16대 왜왕 인덕仁德
(1) 인덕의 모후
(2) 무내숙내武內宿?의 죽음
(3) 인덕의 무덤
(4) 인덕은 무사武士였나?
17) 17대 왜왕 이중履中
(1) 이중의 수명
(2) 반란 전승에 관련된 인물들의 실존 여부
(3) 태자책봉
(4) 이중의 무덤
18) 18대 왜왕 반정反正
19) 19대 왜왕 윤공允恭
20) 20대 왜왕 안강安康
(1) 안강의 실재 여부와 태자 목리경木梨輕의 반란 전승
(2) 안강 암살 설화의 진위 여부 121 (3) 안강의 무덤
21) 21대 왜왕 웅략
(1) 웅략의 부모와 출생
(2) 웅략의 사망과 유조遺詔
(3) 웅략 이름의 유래
(4) 웅략 이름의 모순점
(5) 즉위 무렵 웅략이 소년이었나?
(6) 웅략의 후비 치원稚媛
(7) 개로왕과 미녀
(8) 임나국사任那國司
(9)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10) 웅략의 신라 정벌
(11) 웅략의 무덤
22) 22대 왜왕 청녕靑寧
(1) 성천星川왕자의 반란 설화
(2) 반풍飯豊천황
23) 23대 왜왕 현종顯宗
(1) 시변압반市邊押磐, i?ti?no?be?no?o?si?i?pa왕자
(2) 이원荑媛, pa?ye?pi?me
(3) 현종 형제가 소년이었을까?
(4) 현종의 왕후 난파소야
24) 24대 왜왕 인현仁賢
(1) 동생보다 나이가 적은 형 인현 149 (2) 인현의 왕비 춘일대랑
25) 25대 왜왕 무열武烈
26) 26대 왜왕 계체繼體
(1) 계체는 응신의 5세손인가?
(2) 계체의 부모 153
(3) 계체의 왕후 수백향手白香과 후비 이원荑媛
(4) 계체의 즉위식
(5) 임나 4현의 백제 할양
(6) 반정磐井의 반란
(7) 반정의 행적 1
(8) 반정의 행적 2
(9) 계체의 죽음에 관한 백제본기百濟本記의 기록
(10) 계체의 연호
(11) 계체의 무덤
27) 27대 왜왕 안한安閑
28) 28대 왜왕 선화宣和
29) 29대 왜왕 흠명欽明
(1) 소아도목蘇我稻目과 그의 딸
(2) 중복되는 왕비 강자糠子
(3) 『일본서기』의 변명
(4) 임나부흥회의
(5) 임나부흥회의 관련 왜인들의 실존 여부
(6) 신라정벌
(7) 고구려 정벌
(8) 성왕의 불교 전파
(9) 왜국 불교전래의 진실
(10) 흠명의 연호
(11) 흠명의 수명
(12) 흠명의 무덤
30) 30대 왜왕 민달敏達
(1) 민달의 왕후
(2) 민달의 역어전譯語田, wo?sa?ta 궁전
(3) 연호
(4) 태자 언인대형彦人大兄의 죽음
(5) 신라의 왜국 침공 1
(6) 신라의 왜국침공 2
(7) 물부수옥物部守屋의 배불排佛과 민달의 수명
31) 31대 왜왕 용명用明
32) 32대 왜왕 숭준崇峻
(1) 『해동제국기』에 나오는 숭준과 용명의 나이
(2) 숭준의 무덤
33) 33대 왜왕 추고推古
(1)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섭정
(2) 성덕태자의 헌법 17조憲法十七條
(3) 『해동제국기』와의 차이
(4) 추고의 연호
(5) 연호 법흥法興
(6) 연호 법흥원法興元
(7) 연호 대화大化
(8) 신라新羅 공격
34) 34대 왜왕 서명敍明
(1) 『만엽집萬葉集』과의 모순
(2) 『해동제국기』와의 차이
35) 35대 왜왕 황극皇極
(1) 황극의 계보
(2) 황극의 이름
36) 36대 왜왕 효덕孝德
37) 37대 왜왕 제명齊明과 실존 왜왕 부여풍夫餘豊
(1) 백제 구원군을 지휘한 제명의 행적
(2) 제명 행적의 진실
(3) 부여풍은 인질이었나 1
(4) 부여풍은 인질이었나 2
(5) 부여풍의 백제 귀환
(6) 백제의 왕자 선광禪光의 도왜와 입시入侍
(7) 가족을 거느리고 도왜한 백제의 왕자들
(8) 부여풍은 왜왕의 관모를 썼다
(9) 부여풍의 진군가進軍歌
(10) 『해동제국기』와의 차이 242 (11) 제명의 무덤
38) 38대 왜왕 천지天智
(1) 천지가 동생 천무를 태자로 책봉하였을까?
(2) 아들 천무를 태자로 책봉한 것은 왜왕 부여풍
(3) 『해동제국기』에 나오는 제명의 연호 백봉白鳳
(4) 천지릉天智陵
39) 39대 왜왕 천무天武
(1) 천무의 연호 백봉白鳳
(2) 가공의 연호로 인한 혼란상
(3) 백제 조정과 구별되는 아조我朝
(4) 연호 주조朱鳥
(5) 천무와 지통持統의 합장릉
40) 40대 왜왕 지통持統
41) 『해동제국기』와 『일본서기』
4. 왜왕 계보의 이중구조
1) 신무神武그룹의 왜왕들
(1) 기나긴 재위연수와 수명
(2) 부자상속
2) 이중履中그룹의 왜왕들
(1) 짧은 재위기간과 수명
(2) 형제상속
5. 왜 천황릉을 공개하지 않을까?
1) 천황릉의 비공개
2) 비공개의 이유
3) 천황릉 공개를 거부하는 궁내청의 진정한 의도
4) 천황릉의 한정공개

2장 왜국 귀족들의 창작된 시조
1. 가공인물을 시조로 둔 귀족들
1) 소아蘇我씨
(1) 백제에서 건너간 소아씨
(2) 목협만치의 후손 한자韓子, 고려高麗, 마자馬子
(3) 소아씨의 시조는 소하석하숙내蘇賀石河宿?인가?
2) 물부物部, mo?no?no?be씨
(1) 물부物部의 의미
(2) 물부씨의 조상 우마시마지宇麻志麻遲
(3) 물부나솔 物部奈率
3) 중신中臣, na?ka?to?mi씨
4) 대반大伴, o?po?to?mo씨
5) 내목來目, ku?me씨
6) 갈성葛城, ka?tu?ra?gi씨
7) 평군平群, pe?gu?ri씨
8) 기紀, ki씨
9) 거세居勢, ko?se씨
10) 아배阿倍, a?be씨
11) 와니和珥, wa?ni씨
12) 식장息長, o?ki?na?ga씨
13) 지명을 성으로 삼은 것은 백제의 풍습
(1) 흑치상지黑齒常之
(2) 기주기루己州己婁와 동성도천東城道天
(3) 곡나진수谷那晋首 291
(4) 사비복부四比福夫
14) 수많은 후손을 둔 가공의 시조들
(1) 19 씨족의 시조인 신팔정이명神八井耳命
(2) 수십 씨족의 시조인 건내숙내建內宿?의 아들들
(3) 7 씨족의 시조인 대언명大彦命과 대랑자大郞子
(4) 6 씨족의 시조인 타캐토요파두라와캐建豊波豆羅和氣
2. 귀족들의 원적 295
1) 선왕후船王後의 묘지명
(1) 묘지명의 작성시기
(2) 왕지인王智仁
(3) 상표문의 진실성 여부
(4) 왕진이와 왕인王仁
(5) 중조中祖
(6) 신神 조상 ? 허구의 조상
(7) 백제풍의 이름
2) 위나대촌威奈大村의 묘지명
(1) 위나대촌은 선화의 5세손일까?
(2) 부친의 이름 위나경威奈卿
3) 도락道樂 스님의 묘지명
4) 석천연족石川年足의 묘지명
(1) 석천연족은 소아석하숙내의 10세손일까?
(2) 석천연족의 원적
5) 행기行基 스님의 묘지명
(1) 부친은 백제의 왕자
(2) 모친 고이비매古爾比賣
6) 우치숙내宇治宿?의 묘지명
7) 등원겸족藤原鎌足 일대기 『가전家傳』
(1) 부친의 대에 도왜한 등원겸족
(2) 천지天智가 중신겸족을 중용한 이유
8) 환무桓武천황의 생모 고야신립高野新笠의 일대기
3. 재왜 백제인들의 터전 이마키(今來)
1) 이마키 ? 새로 건너온 사람들의 터전
2) 여러 곳에 있던 이마키
(1) 소아하이蘇我遐夷 쌍묘의 이마키
(2) 제명齊明의 손자 건建의 무덤이 있는
(3) 교토京都의 이마키
(4) 산전사山田寺 부근의 이마키
(5) 아라가야 사람들의 이마키
3) 이마키今來의 재기才伎
(1) 『일본서기』의 금래재기今來才伎
(2) 금래재기今來才伎의 원래 의미
4) 이마키가 변한 타캐티高市
(1) 하늘의 타캐티高市
(2) 왜국의 수도는 준백제
5) 이마키今來와 타캐티高市 인구의 대부분은 한국인
(1) 상표문이 전하는 진실
(2) 백제인들의 세상 피노쿠마檜前, 檜?
6) 아스카飛鳥의 원류 부여와 부여신궁扶餘神宮
(1) 일본인들은 아스카 문화의 원류가 부여라고 생각하였다
(2) 부여신궁夫餘神 宮과 신도神都
4. 아푸미(近江) 천도와 임신(壬申)의 난(亂)
1) 아푸미近江 천도 349
(1) 아푸미의 카라사키韓岐
(2) 천도의 이유
(3) 『일본서기』에는 천도의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5. 토착왜인
1) 『일본서기』 천손강림조의 토착왜인
2) 수사노素?嗚와 토착왜인
3) 신무기神武紀의 토착왜인
4) 응신기의 토착왜인
(1) 미개인으로 묘사된 토착왜인
(2) 국소國巢, ku?ni?su의 의미
6. 천손강림(天孫降臨) 설화와 고천원(高天原)
1) 천손강림 설화
2) 천손강림 설화 창작의 진정한 의도
3) 백제를 의미하는 고천원高天原
(1) 고천원高天原
(2) 여왕 지통持統의 시호 고천원高天原
(3) 문무文武 시호의 ‘천天’
(4) 원명元明 시호의 ‘천天’
(5) 광인천황 시호의 ‘천天’
4) 「고천원=백제」라는 증명
(1) 천손天孫은 해북海北에서 배로 왜국으로 건너갔다
(2) 세 여신과 무나가타대사宗像大社
(3) 오키노시마의 제사유적
(4) 바닷길로 왜국을 오가던 백제인들의 염원
(5) 고천원은 하늘이 아닌 지상의 장소
(6) 고천원을 한국으로 본 일본 연구자들의 견해
5) 천손강림 설화와 백제, 고구려의 건국설화
(1)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소서노召西奴와 유화부인柳花夫人
(2) 백제,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신무神武의 동정설화東征說話
6) 천손강림 설화의 백제적 요소
(1) 하늘의 바위자리天磐座와 자온대自溫臺
(2) 천안하天安河 회의와 정사암政事巖
(3) 천강天降 장소인 한국악韓國岳
(4) 쿠지푸루타캐久士布流多氣와 구지봉龜旨峰
7) 천손天孫 니니기
(1) ‘니니기’의 의미
(2) 고목신高木神
(3) 니니기의 모친 ‘바다’
(4) 사루타피코猿田毗古
8) 왜국의 미칭
9) 천손강림 설화의 백제어
(1) 단 구름
(2) 치헤치고
(3) 5부의 신五部神
(4) 다섯 부족장의 ‘키’
(5) 일본 목간에 보이는 조사 ‘의’
(6) 사나이
(7) 들이
(8) ~시리
(9) 광인光仁천황의 모후 고야신립高野新笠 시호의 ‘시리’
10) 하늘의 피 잇기天津日繼, a?ma?tu?pi?tu?gi
(1) pi?tu?gi 日繼 일계
(2) 피 잇기 416 (3) 제황일계帝皇日繼
11) 『고사기』의 서문에서 공표한 역사 창조의 방침

3장 고대 왜국의 원풍경
1. 금석문에서 나타난 고대 왜국의 원풍경
1) 왕연손王延孫
2) 대고신大古臣
(1) 신해년辛亥年
(2) 붕거朋去
(3) 평評
(4) 포나태리고신布奈太利古臣과 건고신建古臣
(5) 고을
3) 고옥대부高屋大夫와 한부부인韓婦夫人
(1) 고옥대부高屋大夫와 병인년
(2) 한부韓婦 부인夫人
(3) 아마고阿麻古
4) 이지사고伊之沙古와 처 우마미고汗麻尾古
5) 둘째 아들 무투코六子
(1) 중지中知
(2) 무투코六子
(3) 분分
6) 서림사의 한국인들
(1) 보원寶元 5년 기미년
(2) 서직 대아사고군書直 大阿斯高君
(3) 서림사를 창건한 지미고수支彌高首
(4) 전단고수?檀高首와 토사장형土師長兄
(5) 고연양고수高連羊古首와 한회고수韓會古首
7) 나니파연공那?波連公
8) 백제 대왕이 하사한 파적검破敵劍과 호신검護身劍
9) 물부순勿部珣의 백제식 이름
10) 백제 왕세자가 왜왕 지旨에게 하사한 칠지도
(1) 칠지도의 명문
(2) 칠지도는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하사下賜한 것이다
11) 무령왕의 남동생인 왜왕男弟王
12) 왁가다기로獲加多支鹵대왕과 장도인杖刀人의 수首
(1) ‘왁가다기로’가 웅략이 아닌 이유
(2) 웅략의 궁宮과 사귀궁斯鬼宮
13) 무리저无利?와 이태화伊太和, 장안張安
2. 무령왕릉으로 보는 백제와 왜국의 원풍경
1) 무령왕은 곤지昆支의 아들일까?
(1)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
(2) 군사 5백명의 대규모 호위대
2) 무령왕릉에 왜풍의 유물이 있을까?
(1) 왜국산 금송으로 만든 무령왕의 관
(2) 목관 이외의 왜국산 목재
(3) 무령왕릉의 유물이 왜국에 미친 영향
3. 왜왕의 왕호와 궁호(宮號)에 드러난 왜국사의 원풍경
(1) 대군大君
(2) 미코 御子 어자
(3) 태자太子
(4) 미매 妃 비
(5) 미야 宮 궁와 미야코 都 도
(6) 왜군倭君의 선조가 된 법사군法斯君
(7) 백제의 골족骨族
(8) 수매라미코토天皇 천황
(9) 금석문의 대왕大王
(10) 일대일궁一代一宮은 사실인가?
(11) 제명齊明의 비조판개궁飛鳥板蓋宮과 궁전 이전의 실태
(12) 천무의 아스카飛鳥 키요미파라淨御原궁
(13) 지명에 기인한 궁호의 유래는 고대 한국

4장 천황가의 제사와 천손강림
1. 고대 왜왕가의 조상에 대한 관념과 제사
1) 왜왕가의 조상에 대한 관념
(1) 근릉近陵과 원릉遠陵
(2) 천황가에서는 어떤 조상을 위패로 모셨을까?
2) 『속일본기』에 보이는 왕릉에 대한 제사의 실태
(1) 왕릉 제사의 구체적인 실례
(2) 10릉4묘十陵四墓와 시조 천지天智
3) 왕릉급 고분에 대한 파괴
(1) 부서지고 평탄화된 왜왕릉
(2) 고분 파괴에 대한 왜 조정의 조치
2. 신상제(新嘗祭)와 대상제(大嘗祭)
1) 진혼제鎭魂祭 ? 혼을 부르는 제사
2) 신악神樂
(1) 불
(2) 아지매阿知女
(3) 오게
(4) 하늘 궁전에 진좌하신 풍강희豊岡姬
(5) 한신韓神
(6) 티
(7) 때때
(8) ~디
(9) 길이길이
3) 중신수사中神壽詞와 고천원高天原
(1) 황친皇親과 황손존皇孫尊
(2) 대상제의 제신祭神은 누구인가?
(3) 백제의 신성한 벼를 왜국으로
4) 삼종신기인 칼과 거울을 바치는 의식
(1) 삼종신기三種神器
(2) 외부의 권위에 의지하여 성립한 왜왕권
(3) 왜왕 즉위식의 천신수사와 삼종신기
(4) 성무聖武천황 시호의 삼종신기
(5) 흠명欽明 시호의 백제와 왜국
(6) 천지와 천무 왜풍시호의 하늘
(7) 문무文武천황 즉위사의 고천원高天原

5장 실존 왜왕, 천황 노래의 백제어
1) 왜왕 천지天智
(1) 바다
(2) 천지 왕후 노래의 ‘바다’
(3) 운내비雲根火 ? ‘ㄴ’ 첨가현상
(4) 닫다
2) 왜왕 천무天武
3) 왜왕 지통持統
(1) 지다
(2) 시부리다
(3) 세우다
(4) ~이
(5) ‘ㄴ’ 첨가
4) 문무文武천황
5) 성무聖武천황
(1) 벼 들
(2) 치쓰다듬다
6) 고시高市왕자

6장 천황가의 기원
1) 백제의 왕이었던 대원박사大原博士
2) 대원大原이라는 성
3) 대원씨는 일본 땅에서 왕성王姓
(1) 세 스님과 동족인 대원씨는 천황의 일족
(2) 절 이름과 관련된 의문에 관하여
4) 대원진인은 민달의 손자 백제왕에서 나왔다
5) 이 왕성王姓은 백제왕百濟王이라는 성을 의미할까?
6) 결론

덧붙이는 글 1. 백제는 왜와 교류하였을까?
덧붙이는 글 2. 일본의 새 연호 ‘영화(令和 레이와)’와 한국의 인연

참고문헌
책속으로
[머리말 중에서]
1. 2015년 가을의 어느 날, 일본의 고고학 서적을 읽다가, 대략 다음과 같은 취지의 문장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수많은 천황 중, 그 무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38대 천지(天智)릉과 그 뒤를 이은 천무(天武)와 지통(持統)의 합장릉 둘 뿐이다」
일본 고고학의 확립된 통설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필자가 졸저 『일본 천황과 귀족의 백제어』에서 「『일본서기』에 기록된 역대 왜왕 중, 시조 신무(神武)부터 37대 제명(齊明)까지는 창작된 허구의 인물이고, 38대 천지(天智)부터 실존인물이다」라고 주장한 것과 결론에서 완벽하게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일본의 왕릉(천황릉)에 관하여 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이에 관한 책을 구할 수 있는 한 수집하여 읽어 보았다.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37명의 왜왕이 날조된 가공인물이기에, 그 무덤이 있을 리가 없고, 따라서 왜왕릉에 관한 일본 고고학의 통설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창작된 왜왕들의 신하인 귀족, 호족들은 어떠한가?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등장하는 귀족들은 왜왕과 마찬가지로, 거의 대부분 창작된 가공인물이었다.
즉 기원전 667년에 즉위하였다는 시조 신무(神武)부터, 661년에 사망하였다는 37대 제명(齊明)에 이르기까지, 1,328년간의 왜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왜왕 전부와 귀족들 대부분은 날조된 가공인물이었다. 이 두 사서는 허구의 왜왕과 왕후, 왕자, 귀족, 그들이 연출하는 가공의 사건들로 이루어진, 꾸며낸 창작소설인 왜국의 역사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2. 진실된 왜국 고대사를 밝히면 절대 안되는 이유가 있었기에 이렇듯 역사를 날조하였을 것이다. 진실은 무엇인가.
왜국을 지배한 것은 토착왜인이 아니라 백제인이었다. 왜왕은 백제의 왕자였고, 백제에서 파견한 귀족들이 왜국을 통치하였던 것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발간된 8세기 초, 천황을 비롯한 일본 지배층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완벽하게 감추면서, 자신들의 선조가 태곳적부터 왜국에서 토착왜인들을 지배하여 온 양, 창작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인구수에서 압도적으로 다수인 토착왜인들을 민족분규 없이 안정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백제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스스로 왜인이 되는 길을 선택하였는데, 이러한 「왜인화 정책」의 핵심적인 포인트가 바로 이 역사창조였다고 생각된다.
소수민족으로서 중국을 지배한 몽골인이나 만주족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백제인들은 정반대의 노선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3. 이렇듯 창작된 역사를 기록한 『일본서기』이지만, 중세의 일본 지식층에서는 「조국 대일본의 위대한 역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원본 『일본서기』의 곳곳에 가필하여 새로운 변작을 감행하였다.
지금은 일본 사학계에서 폐기된 담론인 「임나일본부」에 관한 엄청난 분량의 기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서문이 사라진 것, 무수하게 등장하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조공 기사 역시 후세 변작자의 소행인 것이 분명하다. 『일본서기』는 태생부터가 창작된 허구의 역사를 기록하였는데, 거기에다 수차에 걸쳐 후세 사람의 혹심한 변작까지 보태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두 사서는 37대나 되는 가공의 왜왕과, 그에 따른 수많은 왕후, 왕자, 귀족, 사건들을 날조하였으므로, 수많은 창작상의 실수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빠짐없이 기록된 왜왕릉 역시 진실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제 1장 「허구의 왜왕과 창작된 왜왕릉」에서는 이러한 날조된 왜왕과 왕릉, 무수하게 등장하는 창작상의 실수, 그리고 후세인의 수많은 가필과 변작에 관한 여러 가지를 규명하였다.
제 2장 「왜국 귀족들의 창작된 시조」에서는 귀족들의 뿌리와 그 원적, 그리고 천황가와 지배층의 기원에 관한 창작설화인 고천원(高天原) 설화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8세기 초 일본의 지배층인 백제인들이, 스스로가 토착왜인인 양 역사를 날조하였지만, 자신들의 뿌리가 완벽하게 잊혀지는 사태는 결코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고천원 설화는 뿌리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일종의 암호문에 다름 아니다.
제 3장 「고대 왜국의 원풍경」에서는 고대 금석문 등을 통하여, 두 사서의 기록과는 전혀 다른 왜국의 원풍경을 들여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왜국의 맑은 공기를 숨쉬며 활동하던 백제인들의 발자취뿐이었다.
8세기 이후의 천황가에서는 가공의 선조 왜왕들에게 제사를 올렸을까? 신무(神武)를 시조로서 특별하게 존숭하고 받들었을까? 허구의 왜왕들에게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을까? 천황가의 뿌리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이러한 의문을 제 4장 「천황가의 제사」에서 풀어보았다.
제 5장 「실존 왜왕, 천황 노래의 백제어」에서는 천지(天智)를 비롯하여 실존하였던 왜왕과 천황들이 지은 만엽가에 등장하는 백제어를 규명하였다. 이들은 예외 없이 백제어에 능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제식 일본어를 구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 6장 「천황가의 기원」에서는 금석문에 나오는 기록을 단서로 하여, 천황가의 원래 성이 백제 부여씨라는 사실을 증명하여 보았다.
출판사 서평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의하면, 초대 신무는 현대의 규슈(九州) 가고시마(鹿兒島)현 휴우가(日向)라는 곳에서 대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나라(奈良)현 아스카(明日香)에 있던 적을 무찌르고는, 그곳에 정착하여 왜국을 통치하였다 한다. 그렇다면 초대 신무는 바다 너머에서 건너간 것이 아니라 토착왜인인 셈이다. 위 두 책에는 토착왜인인 역대 천황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단 한 번의 왕조 교체도 없이 왜국을 통치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된 천황가의 역대 천황들은 하나같이 이름만 있고 성은 없다. 이러한 현상은 초대 신무부터 현대의 영화(令和)천황에 이르기까지 전혀 변함이 없다. 현대의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성은 없고, 이름만 가진 사람은 아마도 일본의 천황가 사람들 외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고대의 왜국(한국도 마찬가지)에도 일반 평민은 성이 없고, 이름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당연히 성이 있었다. 성이 없는 귀족은 단 한명도 없었다. 오직 천황가의 사람들만 예외였던 것이다. 천황가는 성이 없으니 그 뿌리를 추적할 단서마저 존재하지 아니한 셈이다.『일본서기』에서 밝힌 시조 신무조차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저자가 창안해 낸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신무의 뒤를 이은 수정(綏靖)으로부터 9대 개화(開化)까지의 8대 왕을 일본의 사학자들은 ‘결사8대(缺史八代)’라는 용어로 일컫고 있다. 역사가 빠진 8대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이 왕들의 행적이나 나라에 있었던 일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궁의 위치, 왕비와 자녀들의 이름, 사망한 해와 나이, 묘지의 위치 등이다. 그렇지만 왕에 관한 역사를 쓴다면 당연히 기록하여야 마땅한 여러 치적, 나라에 있었던 일, 여러 신하에 관한 기록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일본의 사학계에서는 근래에 들어 이 신무를 포함한 9대 왕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놓았다. 이 점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일본서기』는 이렇듯 철저하게 왜왕가의 기원을 감추고 있다. 시조인 신무조차 실존 인물이 아니라 저자가 창안해 낸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 『삼국사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왜왕가의 출자를 철저하게 은폐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천황가 즉 왜왕가는 어디에서 기원하였단 말인가?백제가 멸망하고 돌아갈 터전이 사라진 백제인들은 정체성을 버리고
왜인과 동화되는 길을 선택한다. 7세기 말의 일본열도에는 참으로 다양한 원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으나, 그중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은 백제 멸망 이전부터 도왜하여 살고 있던 구백제계 귀족들이었다. 백제의 개로왕 무렵에 도왜하였던 목만치(木滿致)의 후손인 소아(蘇我)씨, 소아 가문에 의하여 멸망한 물부(物部)씨, 백제 멸망으로부터 불과 얼마 전에 도왜하였던 중신(中臣)씨 등이 대표적인 구백제계이다.
『일본서기』는 이러한 구백제계는 토착왜인인 것처럼 처리하여, 백제계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은폐하였다. 마치 천황가의 가계가 아득한 옛날, 천지창조 무렵부터 왜국에 붙박아 살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백제계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스스로 토착왜인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동화하려 했을까. 그만큼 백제계 귀족들에게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백제가 멸망하고 신라의 영토가 되어 버렸으니, 한반도에는 그들이 돌아갈 곳이 어디에도 없었다. 돌아갈 터전이 사라진 백제인들은 정체성을 버리고 왜인과 동화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한 「왜인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선전광고 책자로 등장한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라는 두 역사서이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천황가의 기원은 백제 부여씨
저자 이원희
출판사 주류성
출간일 2019-08-26
ISBN 9788962464016 (8962464012)
쪽수 640
사이즈 152 * 225 * 31 mm /93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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