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 평전 : 별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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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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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환기념사업회 (엮음) , 황정수 , 안태연 , 최재원 , 윤주 , 구보경
  • 살림
  • 2020-05-15
  • 9788952242099 (895224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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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되찾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고리
책 상세소개
이쾌대가 사랑한 화가! 이중섭이 본받으려 한 화가! 전쟁이 앗아간 ‘비운의 화가’, 70년 만에 본격 재조명 ‘향토색’ ‘소牛와 어린이의 화가’ 진환(1913~1951) 최초 평전

‘망각의 화가’ 진환, 70년 만의 재조명… 다시 쓰는 근대미술사. 이쾌대·이중섭과 동인 활동, 한국 근대사의 ‘잃었던 고리’ 진환 평전. 1930~1940년대 한국 서양화단은 미술은 전통과 현대, 사실과 추상, 순수와 참여가 공존하는 장이었다. 일제하 이쾌대·이중섭과 동인으로 해방 후 홍익대 미대 창립 교수를 지내다 6·25전쟁 중 요절한 비운의 화가 진환(1913~1951). ‘향토성’과 ‘소와 어린이’의 화가 진환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한국 근대미술사의 ‘잃었던 고리’ 하나를 찾아 잇는다.

목차
·‘망각의 화가’ 아닌 당당한 한국 근대미술가로 우뚝 서다_『진환 평전』을 펴내며 전환기념사업회 8

·잊혀졌던 예술을 찾아가는 기적 같은 시간_『진환 평전』 발간에 부쳐 구보경 11

·진환, 되찾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퍼즐 한 조각 황정수 17
작가 진환을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 17
진환과 이중섭 23

·진환과 1930~1940년대 일본 초현실주의 미술 안태연 33
미술사의 심연 속에 매몰되다시피 한 비운의 작가 33
모더니즘 흐름에 적극 참여한 화력(畵歷) 36
소 이미지, 회상과 염원이 교차하는 환상회화로 재탄생시켜 44
일본 초현실주의 미술과 한국 근현대미술의 관계 50

·화보 53
작품
습작, 스케치, 삽화

·작가 진환의 삶 99
무장(茂長)의 화가 진환 윤주 99
타고난 예술적 재능 105
집안의 기대를 무릅쓰고 108
일본에서의 학업과 작품 활동 112
뜻하지 않은 귀국, 단절된 열정 120
소, 민족의 향토성 125
전쟁이 앗아간 예술가의 삶 127
심연에서(de frofundis) 131

·진환의 작품 세계: 일곱 가지 키워드 134
무장, 그 향토색 134
한민족과 소 그리고 아이들 136
화가로 교육자로 148
다양한 재능, 타고난 예술성 151
청년 진환의 홀로서기 157
뛰어난 문학성 163
창작의 동인(動因) 168

·진환의 소-되기(Becoming an Ox) 최재원 175
생가에 걸린 〈바이올린이 있는 풍경〉 176
〈자화상〉이 아니라 〈초상〉 177
봉강집, 1·4후퇴와 진환의 최후 180
흥학구국(興學救國) 185
원근법 연습과 기하학 187
무장읍성과 알레고리: 무(無)장소(NON-PLACE)와 현존(NOW-HERE)의 간극 189
무장의 소-되기(Becoming on ox) 193

·작가 진환의 재조명, 1981~ 198
진환을 추모한다 서정주 201
東京시절의 진환 하야시다 시게마사 201
그림 속의 말 김치수 205

·부록 217
진환(1913~1951) 연보 218
유품·자료 221
찾아보기 281
책속으로
“제가 쏜 총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진환(陳?, 1913~1951)의 죽음을 알리는 절규가 무장(茂長)골을 뒤흔들었다. 6·25전쟁 중 학도병으로 나가 스승을 적으로 오인하여 죽인 후 통곡하며 알린 제자와, 집에서 불과 20여 리 떨어진 산비탈에서 죽임을 당한 스승의 사연이 기막히다. 고향의 정취를 주로 그리며 이름을 알리던 화가 진환은 그렇게 사랑하던 고향에서 서른여덟 살의 젊디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_(99쪽)소 그림 하면 흔히들 이중섭을 맨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소를 대표적인 소재로 하여 그림을 그린 것은 진환이다. 진환은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 돌아와서도 본격적으로 소를 많이 그렸다. 현재 남아 있는 소 그림을 보더라도 이중섭이 그린 소 그림들은 1950년대의 것들인 반면 진환은 이미 1942~1943년에 〈우기 8〉 〈물속의 소들〉 등의 작품을 그리고 있다. 이들 작품은 이중섭의 소 그림과 매우 유사한 면이 많아 두 사람 사이의 영향관계를 추측케 한다. ……
소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소재 작품들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유사성이 보인다. 특히 이중섭 작품의 대표적인 도상 중 하나인 낙원 풍경이나 아이들이 벌거벗고 노는 모습 등은 진환의 1940년경 작품 〈천도(天桃)와 아이들〉과 도상이나 기법, 작품의 모티프 취택 등에서 지나치게 닮은 면을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작품 또한 이중섭의 것들은 모두 1950년대에 제작되나 진환의 작품은 1940년대에 제작된 것이니, 역시 시기적으로 보아도 진환 작품의 제작 시기가 앞선다. 그러니 만일 두 사람 사이에 영향관계가 있다면 이중섭이 진환의 영향을 받았음이 자명한 일이다.
진환과 이중섭 작품의 이러한 유사성은 우연에 의해 단순히 그리된 것일까, 아니면 이중섭의 일방적인 표절 또는 모방일까 단정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두 사람이 함께 일본에 유학해서 활동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함께 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배로 먼저 활동하며 작품 활동을 한 진환의 모습을 이중섭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아가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은 해볼 수 있다. _(29~31쪽)그중에서도 특히 1936년 제5회 독립미술협회전에 후쿠자와가 출품한 작품 〈소〉는 주제와 도상 등 여러 가지 면모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화면 전체에서 감도는 초현실적 환상의 연출에 더하여, 작품의 주제로 ‘소’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서이다. ……
‘소’라는 주제는 향토적이고 평온한 정서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에서 초현실주의를 수용한 화가들이 추구했던 유토피아적 정서, 즉 이상향을 투영한 대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 _(44~46쪽)쭉나무 저쪽, 묵은 土城, 내가 보는 하늘을 뒤로 하고 「소」는 우두커니 서 있다. 힘차고도 온순한 맵씨다. 몸뚱아리는 비바람에 씻기어 바위와 같이-소의 生命은 地球와 함께 있을 듯이 强하구나, 鈍한 눈방울 힘찬 두 뿔 조용한 動作, 꼬리는 飛龍처럼 꿈을 싣고 아름답고 忍冬넝쿨처럼 엉크러진 목덜미의 주름살은 現實의 生活에 對한 記錄이었다. 이 時間에도 나는 웬일인지 期待에 떨면서 「소」를 바라보고 있다. _(6쪽, 진환, 「소의 일기」 중에서)어언간 형의 학안을 접한 지도 일 년이 가까워옵니다. 단지 형의 〈심우도〉만이 조석(朝夕)으로 낮에도 늘 만나고 있습니다.
긴박한 시국에 반영된 무장의 소를 금년은 아직 배안치 못하였습니다. 분뇨우차의 소는 이 골(경성)서도 때때로 만나봅니다만 역시 무장의 소가 어울리는 소일 겝니다. 경성의 우공들은 사역의 것이고, 무장의 것은 그 골을 떠나기 싫어하고 부자의 모자의 사랑도 가지고 그 논두렁의 이모저모가 추억의 장소일 겝니다.
형의 우공(우리 집에 잇는 〈심우도〉 소품)은 무장의 소산이므로 나는 사랑합니다. _(140~141쪽, 265쪽, 이쾌대가 진환에게 보낸 편지, 1944. 7. 12 소인)미술과 문화의 관계는 결국 예술의 순수성의 방향에 커다란 관련과 의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전개되어 있는 현실과 인간생활의 요소를 잇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현재 작가의 누구나가 이와 같은 공통한 과제를 갖고 다시 이 과제에 접근하려는 생각이 개개의 노력을 아끼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와 같은 노력은 단순히 작가의 태도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독자(獨自)의 방향을 개척케 하는 데 충실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본질적인 계기에 접해(接解)하는 데서 생각게 하며 이상(以上)에 말한 접근을 목적하기에 수다(數多)한 행동을 보게 한다. 이렇게 필연히 오는 욕망이 개성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을 연결케 하고 동시에 일종의 경향으로까지 변형케 하는 것을 볼 수 잇다.
이러한 경향에서 수다한 집단이 생기게 되고 집단적인 성격은 개성적인 것을 조장하기에 당연치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_(171쪽, 진환, 「추상과 추상적」, 『조선일보』, 1940. 6. 19)훈훈한 시정이 소 등을 타고 찾아올 때면 언제나 마을 앞에 엉크러진 개나리 밑둥에서 봄바람은 일기 시작한다. 끝없이 풍부한 자연 속에서 소 는 하늘을 마음끝(마음껏) 마시고 싶었던 까닭에 도시처럼 좁고 고독한 오양간에 있기를 늘 싫여하였다. 쟁기는 또다시 억세게 지구를 헤치고 가고 모든 원소(元素)의 생명이 새로 움직이는데 청자(靑磁) 모양 흐린 공기를 뚫고 이따금 쟁기잡이의 투박한 매아리 소리만 들려오곤 한다. _(277쪽. 진환, 「소」, 『한성일보』, 1950. 4. 1)
출판사 서평
##‘망각의 화가’ 진환, 사후 70년 만에 본격 재조명
1945년 8월 22일, 아직 해방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화가 이쾌대(1913~1965)는 서울에서 전북 고창 무장(茂長)에 사는 동갑내기 화가 앞으로 이런 편지를 쓴다.“하도 오랫동안 소식이 없기에 진형하처재(陳兄何處在)오! 야단들이엇습니다. 예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형의 그동안 심경 변화를 동무들께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어느 때입니까? 기어코 고대하던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감격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곳(서울) 화인(畵人)들도 ‘뭉치자, 엉키자, 다투지 말자’ ‘내 나라 새 역사(役事)에 조약돌이 되어도’ 이와 같은 고귀한 표언(標言) 밑에 단결되어 나라 일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형이여! 하루바삐 상경하셔 큰 힘 합쳐 주소서.” (267쪽)5년 뒤 1950년, 이쾌대는 창립 2년차를 맞은 홍익대학교 미술학부에 강사로 나가다 6·25를 맞는다. 교수진에는 학부장 배운성(1901~1978) 외에, 5년 전 편지에서 ‘형’ ‘진형’이라 깍듯이 부른 그 사람도 있다. 9·28 서울 수복 후 배운성은 북으로 가고, 월북하던 이쾌대는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휴전 후 북을 택한다. 서울에 남은 ‘진형’은 웬일인지 함께 망각의 심연으로 사라졌다.
함께 활동한 동료들이 대거 월북한 탓도 컸다. 실제로 남에서 오랫동안 금단의 이름이었던 배운성·이쾌대가 1990년 전후하여 ‘한국 서양화의 선구자’(배운성) ‘조선 향토색의 거장’(이쾌대)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자 비로소 공개되는 이들의 1940년대 사진에 ‘진형’도 감초처럼 함께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근대미술사를 조명하는 기획전시들에는 그의 작품 한둘이 어김없이 포함되고 있다.
서울에 남은 ‘진형’은 1951년 1·4후퇴 때 고향 무장을 향하다가, 고향 마을을 코앞에 둔 야산에서 아군 측의 오인사격으로 숨을 거둔다. 그것도 몇 년 전 고향 학교에서 가르친 제자의 총에! 전쟁통인 데다 동료들도 대부분 월북한 터라 오랜 세월 잊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38세 젊은 화가의 이름은 진환이다. 『진환 평전』(진환기념사업회 엮음, 살림출판사 발행, 2020)은 ‘비운의 화가’ 진환 사후 70년 만에 처음 나오는, 도록과 자료집을 겸한 평전이다.##생활인과 예술인의 경계에서
진환의 본명은 진기용(陳錤用), 고창 무장의 유지 집안 외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보통학교까지 나오고, 서울의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상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중퇴하고 화업(畵業)을 택한다. 도쿄에 유학해 일본(니혼)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작가 겸 미술학교 교수를 지내며 1941년(28세) 이쾌대·이중섭·김종찬·문학수 등과 조선신미술가협회(그해 ‘신미술가협회’로 개칭)를 창립하고 도쿄와 경성(서울)을 오가며 활동한다.
1943년(30세), 도쿄의 진환은 ‘외조모 사망 급 귀향’이라는 전보를 받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외아들이 ‘환쟁이’의 길을 걷는 것을 걱정하는 집안의 거짓 부고였다. 진환은 다시 도쿄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향에서 결혼하고 해방을 맞는다. 남아 있는 그의 작품(습작·스케치·동시화童詩畵 포함 40여 점)과 자료가 희소한 이유다. 아버지가 설립한 무장농업학원 원장(개교 직후 ‘무장초급중학교’로 개칭, 초대 교장)을 지내다 홍익대 미술학부 창설 준비를 위해 1948년 서울로 올라와 활동을 재개하며 ‘50년 미술전’(전쟁으로 무산)을 준비하던 중 6·25가 일어나고, 이듬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다.
진환은 늦어도 일본미술학교 재학 중 1936년(23세) 작가로 데뷔했다. 이해 도쿄에서 열린 ‘신자연파협회’ 제1회 전시에 〈설청(雪晴)〉 등 2점을 출품해 입상하고, 베를린 올림픽 부대행사로 열리는 ‘예술경기전’에 〈군상(群像)〉을 응모하여 입상했다. 〈동아일보〉 보도(1936. 3. 25)에 따르면 일본 출품작 30점에 든 작가 중 조선인은 양화부의 진환이 유일했다.
이해부터 사망할 때까지 16년 동안 진환은 창작에만 몰두할 수는 없었다. 갑작스런 귀향과 결혼, 학교 교장 재직까지 5년의 공백(1943~1948) 탓에, 1948년 자필로 기록한 화력(畵歷)은 1944년 5월 〈심우도(尋牛圖)〉(제4회 신미술가협회전 출품)가 마지막으로 돼 있다. 이해 7월 12일 소인이 찍인 이쾌대의 편지를 보면 진환의 〈심우도〉가 그에게도 있었던 듯한데, 5월에 출품한 것을 이쾌대가 소유한 것인지 아니면 〈심우도〉라는 제목의 연작 또는 습작이 여러 편 제작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어언간 형의 학안(鶴顔)을 접한 지도 일 년이 가까워 옵니다. 단지 형의 〈심우도(尋牛圖)〉만이 조석(朝夕)으로 낮에도 늘 만나고 있습니다. 긴박한 시국에 반영된 무장의 소를 금년은 아즉 배안(拜顔)치 못하였습니다. 분뇨우차(糞尿牛車)의 소는 이 골(경성)서도 때때로 만나봅니다만 역시 무장의 소가 어울리는 소일 겝니다. 경성의 우공(牛公)들은 사역(使役)의 것이고, 무장의 것은 그 골을 떠나기 싫어하고 부자(父子)의 모자(母子)의 사랑도 가지고 그 논두렁의 이모저모가 추억의 장소일 겝니다. 형의 우공(우리 집에 잇는 〈심우도〉 소품)은 무장의 소산(所産)임으로 나는 사랑합니다.” (265쪽)그러나 이때의 공백기에도 그는 큰아들을 위해 손수 동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그림책』이라는 수제본 동시화집을 만들었고, 홍익대 교수 재직 중에는 동시집 『쌍방울』을 출간 준비 중이었으나 전쟁으로 일실되었다. 진환의 동시화는 『그림책』에 6편, 낱장으로 4편, 모두 10편이 남아 있다. 진환의 마지막 공적 자취인 신문 기고들이 이번 평전에서 처음 발굴돼 공개되는데, 소의 작가답게 ‘소’라는 제목의 짧은 에세이와 소 드로잉이다(『한성일보』, 1950. 4. 1). ##첫 관심은 이중섭 ‘소’와 ‘어린이’의 선구자
배운성과 진환이 교수로 있고 이쾌대가 강사로 출강하는 1950년 1학기의 홍익대 미대 풍경은 어땠을까? 영영 잊힐 뻔한 이름이 처음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81년, 당시 갓 서른의 신예 평론가 윤범모(현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의해서다. 이해 『계간 미술』 여름호 기획기사와 2년 뒤 그가 기획한 두 차례 유작전(서울 신세계미술관,대구 대백문화관) 및 일간지 기고에서 윤범모의 눈길을 끈 것은 ‘소’와 ‘향토적 서정’이었다.
남아 있는 진환 작품과 스케치의 태반이 소를 그린 것이다. 각각 여러 장씩인 〈소〉 〈날개 달린 소〉 〈날개 달린 소와 소년〉 〈소 스케치〉에다, 〈우기(牛記)〉 시리즈(제8번만 남음. 이 책의 표지화), 〈연기와 소〉 〈산속의 연기와 소〉 〈혈(?)〉 〈계절 잡묘〉 〈두 마리의 소〉 〈물속의 소들〉 〈소(沼)〉 〈기도하는 소년과 소〉……. 심지어 마지막 신문 기고까지.
진환의 누이 중 한 명에게 초등학교 때 배우고 담임선생님 댁을 드나들며 ‘마을 선각자였던 그 댁 죽은 아들’의 소 그림을 접했던 문학평론가 고 김치수도 ‘이중섭 리바이벌’을 보며 반사적으로 어릴 적 소 그림의 기억을 소환한다.내가 다시 나의 오랜 기억의 한 모서리에 있던 그를 생각하게 된 것은 70년대 초였다. 화가 이중섭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회고전이 열리고 또 월간지에 이중섭 전기가 연재되고 있을 때 나는 우연히 이중섭의 ‘소’를 보았다. 그 순간 오랜 망각 속에 묻혀 있던 유년시절의 추억 한 자락이 열리면서 그때 본 ‘소’와 이중섭의 ‘소’가 너무나 흡사한 것 같았다. 뒤에 그 두 ‘소’ 그림을 대조한 결과 소의 모양이나 전체의 구도는 전혀 다른 반면에 그림이 표현하고 있는 소의 느린 동작과 강력한 힘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7쪽)진환의 소 그림뿐 아니라 어린이 그림, 특히 〈천도(天桃)와 아이들〉(1940경)은 영락없이 이중섭의 도원(桃園)과 과수원의 아이들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소와 아이들을 그린 이중섭의 유화와 은지화 대부분이 1950년대의 것임을 고려하면, 재발굴 초기 진환에 대한 관심이 ‘이중섭에 영향을 준 화가’에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웠다(「이중섭에 영향 준 ‘망각의 화가’」, 일간스포츠 1982. 12. 14).
당시는 월북 작가 이쾌대가 해금되기 전이었다. 이쾌대는 그로부터 십여 년 뒤 해금되며 단숨에 ‘조선 향토색’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러나 곧이어 미술사학계에서는 ‘조선 향토색’이 일제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는 논쟁이 일어났다.##진환과 이쾌대가 함께 추구한 ‘향토색’
향토색을 정당하기 자리매김하기 위해 1940년 도쿄로 되돌아가 보자.
1913년생 김환기·이쾌대·진환, 1916년생 유영국·이중섭. 엇비슷한 나이지만 고향은 제각각, 일본에서도 각기 다른 미대를 나와, 20대 중·후반 나이에 도쿄에서 활동 중이던 조선인 화가들이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이들의 삶과 커리어는 극명하게 두 갈래로 나뉘어 전개된다.
일찌감치 추상에 눈뜬 김환기(~1974)와 유영국(~2002)은 대한민국에서 중견·원로 화가로 입지를 다졌다. ‘소재의
신미술학회 제3회전(1943) 기념촬영. 뒷줄 왼쪽부터 이성화, 김학준, 손웅성, 진환, 이쾌대, 윤자선, 홍일표, 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배운성, 이여성, 김종찬 등
사실성’을 고수한 다른 셋은 화재(畵才)를 한껏 펼치지 못했다. 이쾌대는 3년의 포로수용소 생활 후 북을 택했다가 급사했고(1965, 52세), 이중섭은 가난으로 고통 받았고 더 단명했다(1956, 40세), 진환이 그중 가장 허망하고 단명했다(38세).
신문의 전시회 평은 으레 화가들이 품앗이처럼 서로 써주곤 할 때다. 바다 건너 도쿄에서 열린 전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해 김만형(1916~1984, 월북)은 제10회 ‘독립미술협회’전에 출품한 조선인 작가평을 『조선일보』에 기고하며 진환·석희만·홍일표·김해·안기풍·곽인식·승동표를 거론한다(1940. 3. 29, 석간 3면). 6월, 이번에는 진환이 제14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조선인 작가평을 『조선일보』에 두 차례에 나누어 기고하며(6월 19일·6월 21일, 석간 3면) 김환기·문학수·유영국·이중섭·조우식·안기풍을 언급한다. 독립미술협회와 자유미술가협회 모두 일본에서 탈(脫) 관전(官展)의 젊은 미술가들이 주축인 단체였다.“‘독립미술’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미술단체에서 딴 이름으로 정치적인 의미는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인 관리는 독립이란 단어를 매우 싫어하여 조선에서는 ‘독립미술협회전’을 개최할 수 없었고, ‘독립미술협회’의 회원은 조선에서 개인전도 개최할 수 없었습니다.” (하야시다 시게마사林田重正 회고, 201쪽)독립전과 자유전 출품 작가 중 김환기(6월 19일자 도판)와 유영국(6월 21일자 도판)은 그때 이미 추상으로 나아간 것이 확인된다(239, 241쪽). 나머지 화가 중 진환·김만형·홍일표·문학수·이중섭은 바로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 창립의 주역들이다. ‘예술은 현실과의 연결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소재의 사실성을 견지한 대표적인 그룹이 신미술가협회고, 진환과 이쾌대는 그중에서도 최애 절친이었다. 윤범모가 일찍이 ‘향토적 서정’이라는 말로 간파했듯, 진환 작품의 태반을 차지하는 소 그림들을 꿰뚫는 색조는 ‘무장의 황토색’이다. 1940년대 ‘조선 황토색’은 진환과 이쾌대를 나란히 놓고 보아야 정당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 이쾌대가 좀 더 빨리 해금됐더라면 진환은 ‘소와 어린이’를 넘어 ‘조선 향토색의 한 갈래인 황토색’으로 조명될 수 있었겠고, 진환이 좀 더 빨리 재발굴되었더라면 이쾌대의 조선 향토색은 ‘일제 관제(官製)’ 혐의 없이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근대미술사의 또 한 장면, 초현실주의
그러나 똑같이 사실성, 더러는 향토성까지 함께 추구한 1940년대 화가들의 작품이 저마다 내뿜는 독특한 화풍, 즉 개성과 독자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진환 평전』은 여러 군데서 조심스럽게, ‘1930년대 일본 화단을 통한 유럽 미술 사조와의 간접 접촉’ 가능성을 제기한다.
신화적 환상성과 상징성이 짙게 밴 진환의 소 그림에서는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등의 유럽 초현실주의(Surrealism)가 읽힌다. 구체적으로 일본 화가 난바타 다쓰오키(難波田龍起, 1905~1997)(191쪽)와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 1898~1992)(43~46쪽)를 통한 간접 영향이다. 진환은 일본미술학교 졸업 후 ‘미술공예학원’이라는 사설 미술학교를 다시 다녀 졸업하고 곧바로 이 학교 강사로 3년간 재직하다 귀국했는데, 후쿠자와는 이 학교 공동 창립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일본을 거쳐 아예 베를린과 파리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주목받은 배운성 정도를 제외하면, 20세기 초반 조선 미술가들의 서양미술 수용은 압도적인 다수가 일본을 통한 간접 수용이다. 초현실주의의 영향까지 읽어내야 진환을 제대로 독해하는 것이듯, 대다수가 일본파인 1940년대 리얼리스트 작가들 저마다의 표현성과 상징성은 그들이 수학 시절 간접적으로 접촉했을 유럽 미술 사조까지 더듬어 올라가야 속시원한 해명이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시절부터 굵고 거칠고 어두운 선에 집착해 ‘동양의 루오(Rouault)’라 불린 이중섭의 경우 그것은 야수주의였다(27쪽).##알콩달콩 미시사(microhistory) 자료들
권말부록 ‘자료’(221~280쪽)로 실은 사진과 편지, 문서 중 일부는 이번에 처음 발굴됐거나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950년 『한성일보』에 기고한 ‘소’ 에세이와 드로잉은 『진환 평전』 제작 막바지에 미술사가 황정수에 의해 발굴되었다. 1940년 『조선일보』에 기고한 제14회 자유미술가협회전 평은 그동안 상편인 「추상과 추상적」만 알려져 있다가, 역시 평전 제작 중 그 하편 「젊은 에스프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작가 커리어 외에 ‘인간 진환’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자료들도 쏠쏠하다. 진환의 고등보통학교(5년제) 재학 기간인 1926~1931년은 마침 6·10만세로부터 시작돼 광주학생운동(1929)에서 정점을 찍고 1931년까지 지속되는 호남지역 학생 항일운동 기간과 정확히 겹치는데, 이 기간 고창고등보통학교 항일운동 기록에서 진기용(진환 본명)과 시인 서정주의 이름을 나란히 발견한 것은 망외의 소득이었다.
이쾌대가 진환에게 보낸 다섯 통의 편지(엽서 2, 봉서 3)는 이 『평전』에서 처음 원문을 그대로 판독해 실었다. 사생활에 속하는 것으로, “환아견지. 미지이래 여객상이 여하하며(?兒見之. 未知伊來 汝客狀이如何하며: 환이 보아라. 요사이 네가 객지에서 지내는 상황이 어떠하며)……”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멋들어진 수서(手書)와 기타 가족들 간에 오간 편지, 서울에서 전시 개막하는 날 전시장에서 (어쩌면 결혼 전 아내일지 모를) 지방의 지인에게 보낸 엽서 등은 모두 처음 공개되고 판독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전주에 사는 일본인 여성 야스다 에미코(안전혜미자安田惠美子)’에게 보낸, 일본어 행초(行草)로 휘갈긴 두 통의 엽서와 한 통의 봉서다. 나이 든 유족들을 탐문하고 판독한 결과 ‘안전혜미자’는 일본인이 아니라 아내 강전창의 창씨개명이었다. 둘은 집안끼리 정혼 후 결혼 전까지 1년여 교제하면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진산 환’과 ‘안전혜미자’라는 창씨개명으로, 심지어 전남 영광 사는 ‘백곡태원 방 상억’(백곡태원은 매형 정태원의 창씨개명, 상억은 그 아들로 당시 갓난아기)을 매개로 서신을 주고받았음이 밝혀졌다. 일제의 만행으로만 여겨지는 창씨개명이 일상 민초(民草)들의 삶 속에서 뜻밖의 쓸모를 찾은 경우라고 할까.
『진환 평전』을 준비하는 과정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잃었던 고리’를 찾는 여정이자, 다시 쓰는 작업이었다. 이로써 화가 진환은 더 이상 ‘망각의 화가’가 아닌, 명실상부한 ‘한국 근대미술가’로 우뚝 설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진환 평전
저자 진환기념사업회 (엮음) , 황정수 , 안태연 , 최재원 , 윤주 , 구보경
출판사 살림
출간일 2020-05-15
ISBN 9788952242099 (8952242092)
쪽수 284
사이즈 172 * 226 * 21 mm /59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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