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상세소개
“고양이 노라와 쿠루와 보낸 노작가의 날들”
그러나 우리의 우치다 핫켄이 노라와 쿠루, 이렇게 셋이서 ‘함께’ 지낸 시간은 없었습니다.
노라가 1년 반, 쿠루가 5년 3개월. 두 마리 고양이가 우치다 핫켄의 곁에 머물다 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에 대한 눈물겹지만 사랑스러운 기록이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건너 여기 남았습니다. 웃게 하고, 울게 하고,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는 이 따뜻한 글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지요.
목차
그는 고양이로소이다
노라야
노라야, 노라야
노라 위에 내리는 가을 소낙비
노라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고양이 귀에 가을바람
네코로맨티시즘
쿠루야, 너니?
카터 쿠루츠, 남은 이야기
속새 수풀을 헤치고
「노라야」
책속으로
p.33
노라가 방석 위에 누우면 아내가 보자기 천을 가져가 이불처럼 덮은 다음 얼굴만 내어놓고 폭 감싸준다. 노라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드는데, 방석과 이불 사이에 끼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퍽 우스꽝스럽다. 내가 욕실 수건에 손을 닦으려고 문을 열면 잠든 노라가 반쯤 실눈을 뜨고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야옹, 하고 내게 인사한다. p.43
어느 제약회사에 보내준 신경안정제 견본품을 먹고 잠을 청해볼까 싶다가도, 그 약이 잘 들어 깊이 잠들면 노라가 돌아와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할까 싶어 망설여진다. p.49
욕조 덮개 위에는 노라가 자던 방석과 덮는 이불로 쓰던 보자기가 그대로 있다. 그 위에 이마를 대고 거기 없는 노라를 부르기 시작하면 노라야, 노라야, 노라야, 하고 멈출 수가 없다. 이제 그만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또 부르고 싶어져서 이마를 방석에 대고 노라야, 노라야, 부른다. 멈춰야 함을 알지만, 거기 없는 노라가 사랑스러워 멈출 수가 없다. p.57
노라는 얼굴이 아주 귀여워서 사진으로 찍어둘까 생각한 적이 있다. 이렇게 사라질 줄 알았더라면 사진이라도 찍어둘 것을. 하지만 사진 따위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p.77
40일 가까이 바람소리, 빗소리 들으면서 노라만 기다리는데 어째서 돌아오지를 않나. 이건 단순히 고양이 한 마리에 관한 일이 아니다. 노라가 있던 예전 그 집의 나날들을 되찾고 싶다. 참으려고 애를 써도 눈물은 멈추질 않고. p.83
노라야, 너는 3월 27일 낮에 속새 수풀을 지나 어디로 가버린 게냐. 그 후론 바람소리만 나도 낙숫물이 떨어지기만 해도 네가 돌아왔나 싶고, 오늘은 돌아올까, 이제는 돌아올까 기다리는데, 노라야, 노라야, 넌 이제 정말 돌아오지 않는 게냐. p.91
자다가 일어나 앉아선 아주 사소한 일로 노라를 떠올리곤 눈물을 흘렸다.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엔 어디 담장 위에서 꾸벅꾸벅 낮잠을 자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는 꿈도 꾸지 않을 테니 내 걱정도 전해지지 않으리라. p.142
고양이의 가장 사랑스러운 부분은 바로 귀다. 내 쪽을 향해 쫑긋 서 있을 때도 반대쪽을 보며 세모난 뒷모습을 보일 때도 늘 아주 천연덕스럽고 당당한데, 그 조그마한 귀를 한쪽씩 움직이면 그럴 때 가장 고양이답다. p.161
노라의 3월 27일이 가까워지니 밤낮으로 눈시울이 뜨겁다. 정원의 가을벚나무 가지에 핀 연보랏빛 꽃 두어 송이를 보려고 해도, 그 아래서 노라가 뛰놀던 모습을 떠올리면 꽃잎이 흐릿해져 보이질 않는다.p.207
나는 자고 일어나 이부자리를 떠날 때 꼭 쿠루에게 말을 건다. 잠든 쿠루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고 팔로 쿠루의 몸을 감싸 안고서. 쿠루에게선 쿠루의 냄새가 난다.
“쿠루야, 너니?”
목 깊숙한 곳에서 “응, 응.” 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잠결에 대답하려는 것이리라.p.230
쿠루는 5년 몇 개월, 정확히는 5년하고 석 달 동안 완벽히 우리 사이에 녹아들었고 우리는 차츰 쿠루를 귀여워하게 되었다. 쿠루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된 노라의 말을 전하러 온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어디 풀숲이나 담 그늘에서 노라가 쿠루에게 우리 집에 가서 이렇게 좀 전해줘, 하고 말한 게 틀림없다. p.233
딱 하나 위안거리가 있다면 실종된 노라와는 달리 해주고 싶은 일은 다 해주었다. 쿠루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다 하게 했다. p.237
동트기 전 불현듯 잠에서 깼다. 옆 이부자리에서 아내가 운다. 휴지를 눈에 대고 하염없이 운다. 서로 쿠루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지만, 죽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아침이 되면 너무 괴롭다고 한마디 하고는 울었던 적이 있다.p.239
밤중뿐만 아니라 낮에도 와서 올라온다. 얼마 전 책상 앞에서 밤을 새우고 날이 밝은 후에 지쳐서 누웠더니 순식간에 꾸벅꾸벅 잠에 빠졌다. 그때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은 내 발 위로 쿠루가 곧장 올라왔다.
‘할아버지, 일 끝났어? 고생 많았어.’
쿠루가 그 말을 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발 위에 쿠루를 올려둔 채로 기분 좋게 잠들었다.
출판사 서평
*
우치다 핫켄의 나이 예순여섯에 예기치 못한 작은 손님 하나가 헛간 지붕에서 바지랑대를 타고 내려와 그의 집 물독에, 아니 그의 삶 속에 퐁당 뛰어들었다. 바로 고양이 노라였다. 노작가의 ‘작은 운명’이었던 노라가 훌쩍 집을 떠난 뒤, 눈물로 낮밤을 지새우며 “노라야, 노라야, 노라야”를 되뇌던 우치다에게 어느 날 문득 고양이 쿠루가 찾아와, 곁에 스르르 머문다. 그리고 5여 년 후,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이 책은 그 아름답고 슬프고 환한 시간들에 대한 기억이자 기록이다. *
책 속 등장인물이자, 이 책의 지은이 우치다 핫켄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하다. 이름난 상을 받은 것도, 그의 책 다수가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핫켄은 이런 작가였다. “내게 제일가는 문장가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우치다 핫켄이다.”(미시마 유키오)
“핫켄 씨의 작품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지만 그 몽환적 특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우치다 핫켄 씨가 시적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내 주변에 남은 메이지시대가 차츰 저물어 사라져 간다. 쓸쓸하다. 하지만 내겐 우치다 핫켄이 있다. 사실 나는 우치다 핫켄을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나 하나뿐이기를 바란다.”(사노 요코) *
노라가 가로질러 떠난 정원에 수십 번의 계절이 피었다 시들었지만, 그럼에도 노라를 생각하고 부르는 것을 멈추어야 할 적당한 때라는 건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목에 달아주지 못하고 넣어둔 서랍 속 목걸이처럼, 노라를 위한 마음은 항상 핫켄의 마음속 어딘가에 가지런히 수납되어 있었다.
노라와 달리 쿠루는 마지막 눈감는 순간을 곁에서 지킬 수 있었다. 귤 상자에 담겨 그의 집 정원에 고이 묻혀 있다. 언제든 원할 때 따뜻한 이부자리로 올라와 품에 안길 수 있다.*
찾지 못한 노라 생각으로 단팥죽 위에 툭 떨어트리는 눈물 한 방울, 고양이가 떠나고 남은 자리를 감히 바라보지도 못하고 엉엉 울음을 쏟아내는 힘겨운 어깨, 찬바람에 문이 삐걱대는 소리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애잔하게 굽은 등, 그 장면들, 그 마음들을 오래 기억하게 되는 글이다. *
『나는 지하철입니다』의 작가 김효은의, 생동하고 사랑스러운 그림 25장이 들어 있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당신이 나의 고양이를 만났기를 |
저자 |
우치다 햣켄 |
출판사 |
봄날의책 |
출간일 |
2020-04-20 |
ISBN |
9791186372753 (1186372753) |
쪽수 |
264 |
사이즈 |
143 * 220 * 20 mm /363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