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 : 별밤서재

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 요약정보 및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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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규
  • 은행나무
  • 2020-02-19
  • 9791190492300 (11904923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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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서재 사은품
책 상세소개
동물 없이는 역사도 없다 인간들만 판치는 지루한 역사에 종지부를!

동물이 역사를 바꿨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후추, 소금, 감자 같은 작물도, 석유, 총, 균, 쇠 같은 자원이나 과학 문명도 아닌 동물이 말이다. 사실이다. 『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물론 주변 아시아 국가의 역사, 문화 속에서 동물이 어떻게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역사의 장면 장면에 얽힌 흥미로운 동물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02년 경남 하동에서 미지의 파충류 화석이 발견됐다. 복원 작업 끝에 이제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악어종임이 밝혀졌다. 이 악어는 조류, 포유류보다 앞선 2억 4천만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나 공룡이 멸종된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한반도의 원주민은 인간이 아닌 악어였던 셈. 이처럼 동물의 역사에 비하면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그런데 어째서 인간은 역사를 오직 인간만이 좌지우지해온 듯 으스대는 걸까? 현재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린 신종 코로나는 ‘박쥐’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쥐’를 매개로 전염된 흑사병 페스트는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빼앗으며 중세 유럽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이 책은 많은 국가와 사회를 치명적 위기에 빠뜨렸던 의외의 동물부터 역사의 결정적 장면에 틈입해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 동물들, 각 나라 사신이 보내온 외교 답례품 속 동물부터 한중일 3국의 전통문화ㆍ정신문화의 원형을 만든 신화 및 설화 속 동물, 용과 봉황, 기린, 해치 같은 환상 동물들까지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동물에 관한 흥미진진하고도 유익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유쾌한 필치로 풍성하게 펼쳐진다.





목차
서문: 역사 속 동물들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1부 태초에 동물이 있었다
· 태초에 신은 곰이었을까?
· 삼족오 신화 속 숨겨진 역사, 철의 전쟁
· 슈렉에서 치우천왕까지, 도깨비인가 상남자인가
· 늑대개의 출현, 지금까지 이런 개는 없었다
·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는 이유
· 나도 때로는 용꿈을 꾸고 싶다
· 용을 잡아먹는 새 중의 왕, 봉황
·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적폐 청산의 종결자, 해치
· 일본 기린맥주의 기린이 그 목 긴 기린이 아니라고?
· 백두산 호랑이 잔혹사를 아시나요?

2부 한중일 전쟁에 얽혀 든 동물들
· 전쟁이 나면 동물원 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 백제 패망을 예고한 신라개 동경이
· 고려와 거란이 벌인 낙타 전쟁
· 무인 시대의 도화선이 된 비둘기의 몰락
· 참새잡이 공무원을 특채한 연산군과 참새와의 전쟁을 벌인 마오쩌둥
· 임진왜란에 참전한 원숭이 기병대 300명
· ‘조선 호랑이’ 먹고 아들 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돌고래 상병, 바다사자 병장, 해병대 말 하사님

3부 한중일을 사로잡은 동물의 왕국
· 나는 대통령, 왕, 공주의 고양이로다
·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 조선 시대, 제주도에 원숭이가 살았나?
· 나는 네가 지난 겨울에 시치미 뗀 일을 알고 있다
· 돈 맛을 알아버린 북경의 코끼리
·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말했다, 우리 같이 살자고
· 좋은 개, 나쁜 개, 이상한 개
· 다람쥐 수출을 위한 ‘다람쥐섬’이 있었다?
· 고양이를 탄핵한다!
· 한양 거리의 원숭이 버스킹과 일본의 원숭이 쇼 ‘사루마와시’

4부 동물원 밖 동물 이야기
· 전남 신안에 쥐라기 공원이 만들어질 뻔 했다고?
· 돼지가 동물원에 있는 나라는 어디?
· 백두산 설인 예티와 한라산의 식인 거인
· 한강과 부산, 동해에 인어가 나타났다
책속으로
우리 민족의 처음(시원) 역시 동물이 열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와 만나 단군을 낳지 않았나. 단군 신화는 주인공 환웅과 곰 그리고 호랑이가 펼치는 통과 의례가 자못 흥미진진하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의 동명성왕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동부여의 금와왕은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였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 설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백마, 김알지 설화에서 왕의 탄생을 알리는 닭, 석탈해 설화 속에 등장하는 까치, 고려를 세운 왕건 설화의 호랑이와 용녀 등 역사 속 신화와 설화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에 앞서 동물의 신화가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전 세계의 신화, 전설 속에는 동물 코드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등장한다. 신화가 텍스트가 되면 역사이고, 역사가 색이 바래면 신화가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화와 만나지 않는 역사는 없다.
_p. 10~11 우리 역사 속에는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신비한 동물이 있었다. 바로 해치다. 해치는 선악과 시시비비를 판단할 능력을 갖췄다는 외뿔 짐승이다. 수많은 유적에는 대개 ‘해태’ 또는 ‘사자상’으로 불리는 서수상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해태’라고 부르고 있는 석상은 어처구니없게도 뿔이 없다. 또 해치와 서수상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그 이미지도 한 데 뒤섞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의 좌우, 국회의사당 앞에 세워진 서수상을 해태로 알고 있다. 그런 곳은 ‘선악을 구분하여 악한 자에게 벌을 준다’는 해치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다. 조선 시대 사법부 수장인 대사헌 관복의 흉배에 해치를 장식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해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해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하라는 의미였다. 지금 대검찰청이나 법관을 양성하는 기관인 사법연수원의 상징물은 해치의 모습이 맞다. 얼핏 보면 외뿔 염소처럼 생긴 괴상 한 조각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비교적 정확하게 해치상을 표현했다. 단, 대검찰청 앞 해치상은 지나치게 유니콘의 모습에 가깝긴 하다. 백성은 가난보다는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고 했다. 해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불만을 종식시킬 적폐 청산의 유일한 희망이다
_p. 94~95 조선 시대 호랑이 피해는 오늘날의 교통사고 발생률보다 높았다. 조선 500년을 통틀어 궁궐이나 민가 주변에 호랑이나 표범이 나타난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여서 호랑이는 그야말로 조선 시대 가장 큰 민폐 덩어리였다. 한양 인왕산 서쪽 자락의 무악재는 호랑이의 단골 출몰 장소였다. 행인들은 여럿이 모여 꽹과리를 치며 군사들의 호위 속에서 겨우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조선에 처음 호랑이가 출몰한 기록은 태조 1년부터 나온다. 개경 도성 북쪽에 들어온 호랑이를 흥국리 사람이 활로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1571년(선조 4년) 10월, 눈썹과 이마가 흰 백호가 현 고양시에 출몰해 무려 사람과 가축 400여 마리를 물어 죽였다.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서 선조는 주로 창덕궁에 머물렀는데, 이때도 호랑이가 자주 나타났다. 심지어 1607년(선조 40년) 7월 18일, 궁 안에서 호랑이가 새끼까지 낳았다. 선조는 궁에 출몰한 호랑이를 꼭 잡도록 어명을 내렸으나 그 호랑이와 새끼를 잡았다는 기록은 없다.
_p. 114 창경원이 동물원인 창경궁으로 둔갑했던 시절. 태평양 전쟁 패전을 앞두고 있던 일본에게 사육하던 동물들은 골칫거리였다. 당시 일본은 도쿄 우에노 동물원을 비롯해 고베, 오사카, 타이완, 만주 등에 여러 동물원을 운영했었다. 천황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기 20일 전인 1945년 7월 25일, 패전의 기운이 일본에 짙게 드리웠다. 창경원을 담당했던 사토는 전 직원을 불러 “사람을 해칠 만한 동물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은밀한 지령을 전달했다. 사육사들에겐 동물들의 먹이에 몰래 넣어두라며 독약을 나눠줬다. 한국 표범을 비롯해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악어 등 21종 38마리가 그렇게 독살됐다. 그날 밤, 고통에 찬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새 창경원 일대에 메아리쳤다.
_p. 126 전쟁의 역사는 과연 인간만의 역사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전쟁에는 인간만큼 중요한 자원이 작용해왔다. 바로 동물의 힘이다. 동물은 때로는 식량으로, 때로는 이동 수단으로, 때로는 무기 발명에 커다란 영감을 줬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몸에 원격 조종 시한폭탄이 장착된 낙타 자살 특공대가 미군기지 쪽으로 보내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실 낙타가 전쟁에 참전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과 소, 낙타 등은 군수 물자 수송에 활용됐다. 고도로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수많은 동물이 여전히 전쟁에 쓰이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때로는 동물들이 사람에 의해 ‘살상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_p. 145 장진호 전투를 실감나게 기록 한 책 《브레이크 아웃》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데, 6.25 전쟁 당시 북한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중공군이 낙타를 이용해 탄약 등 보급품을 수송했다는 것. 저자 마틴 러스는 해병 대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었다. 낙타 목격담은 마틴 러스뿐이 아니다. 사막에서나 어울릴 법한 낙타가 영하 35도의 혹한이 맹위를 떨치는 장진호 전투에 나타났던 것이었다.
_p. 150 마오쩌둥은 중국 지도자 중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벌인 수많은 정책 중 실패한 대표적 정책이 바로 ‘참새 소탕 작전’이다. 당시 참새는 인민의 곡식을 뺏는 ‘계급의 적’이자 해로운 동물로 낙인찍혀 대대적인 박멸 운동 대상이 됐다. 참새 둥지는 허물어졌고, 알은 깨뜨려졌으며, 새끼들은 살해당했다. 더러는 하늘을 날던 도중에 총에 맞아 떨어졌다. 학교, 작업반, 정부 기관마다 죽인 참새의 양에 따라 표창이 주어졌다. 이렇게 잡힌 참새는 1958년에만 2억 1천만 마리에 달했다. 이런 조직적 참새 잡이의 결과 중국 참새들은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다. 동시에 수백만 마리의 각종 야생 동물들이 죽임을 당해 대거 사라졌다. 그러나 웬걸. 참새를 잡으면 곡식의 수확량이 늘어날 줄 알았는데 풍년은 고사하고 오히려 눈에 띄게 생산량이 줄었다. 1958년부터 60년까지 중국은 최악의 흉년이 들었고, 1958년 한 해 동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다음해도 쌀 생산량이 적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참새를 박멸하니 그동안 참새들이 잡아먹었던 해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메뚜기 등 이 벼를 갉아먹어 대흉작이 되었던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3년간 약 4천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고 한다. 결국 마오쩌둥의 참새 소탕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이 여파로 그는 권력 퇴진을 압박받아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중국 인민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대재앙을 초래한 후였다.
_p. 170 일본이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보낸 동물은 원숭이였다. 조선에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원숭이를 자꾸 선물로 가져와 사육 방법을 두고 고민한 기록이 많다. 심지어 연산군은 여러 번 원숭이를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연산군 역시 개와 고양이, 양은 좋아했지만 아버지 성종과 달리 원숭이는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원숭이를 선물로 보내자 “선왕(성종) 때 앵무새를 받은 적이 있는데, 비용만 많이 들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구리나 철과 같이 꼭 필요한 물건도 값을 대기 힘들어서 무역을 모두 중지했는데 무익한 짐승을 왜 받는가? 도로 돌려보내고 잘 이르도록 하라”는 의외의 개념 발언을 한 적도 있다.
_p. 238사냥을 좋아했던 요나라 천조제는 매번 사냥을 떠날 때마다 매와 사냥개를 데려갔는데, 그는 여진족에게 너무 많은 해동청을 바치도록 무리한 요구를 해 원 성을 샀다. 여진의 아골타는 결국 요나라에 반기를 들었고 금나라를 세웠다. 요나라는 결국 매사냥 때문에 멸망한 셈이다.
_p. 242조선 시대 들어 여우가 갑자기 성적으로 더 부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교 문화의 희생양으로 여우를 삼았다는 해석이 있다. 여우는 가부장적 조선 사회에서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끌거나 현모양처의 위치를 위협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이로 인해 유교 사회의 근본인 가정을 붕괴시키는 사악한 존재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남존여비 사회에서 능력 있는 여성의 출현은 권위와 체제에 도전하는 불순 세력으로 간주됐다. 여우는 온갖 둔갑술과 변신 마술에 능하다. 게다가 “나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라는 원초적 클리셰까지 가졌다. 적대적 희생양으로 삼기에 딱 적합한 대상이다. 결국 여우의 부정적 이미지는 우연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주입된 것이라 볼 수 있다.
_p. 2721442년 3월 10일, 영응대군이 아홉 살 때였다. 세종은 강원도 관찰사에게 하늘다람쥐 두 마리와 새끼 독수리 두 마리를 바치게 했다. 실록에는 “세종이 영응대군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요즘으로 치면 ‘어린이날’ 선물인 셈이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하늘다람쥐와 새끼 독수리라니. 둘 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은 아니다. 이런 야생 동물은 세종이 스스로 골라 선물한 것은 아닐 것이다.
_p. 28519세기에 들어서면서 우후죽순 생긴 근대적 공공 동물원은 제국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동물원은 세계사의 무대이자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다. 열강들은 식민지 침략 과정에서 동물 약탈도 겸해 수많은 야생 동물이 수집되어 유럽에 운반 됐다. 보기 힘든 동물을 잡아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식민지 지배력을 증명하는 수단이 됐다.
_p. 323
출판사 서평
중국은 참새, 일본은 고래, 한국은 호랑이라고?
역사를 바꾼 작지만 대단한 동물들그렇다면, 한중일 3국의 역사를 바꾼 대표 동물은 무엇일까? 인류의 오랜 가축이었던 양이나 돼지, 닭일까? 농업 혁명의 주역인 소, 또는 교통과 전쟁의 혁명을 가져온 말일까? 한중일 3국은 물론 세계 역사를 바꾼 의외의 동물은 곤충에 불과한 메뚜기다. 1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메뚜기 떼는 하루 3만 5천 명분의 식량을 먹어 치워 ‘마른 쓰나미’로 불린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 8번, 백제 5번, 신라는 19번의 대규모 메뚜기 피해가 발생했다. 백제 무령왕 가을에는 메뚜기 때문에 무려 900호가 신라로 탈출했다. 메뚜기 떼가 곡식을 먹어치우자 적어도 수천 명이 신라로 집단 탈출했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중국과 일본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당 태종은 가장 큰 메뚜기를 잡아 삼키며 “네놈이 백성의 곡식을 갉아먹는다니 차라리 내 오장육부나 갉아먹어라”라고 대성일갈을 했다는 야사도 전한다. 이 밖에도 한중일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만든 동물은 많다. 중국은 참새, 일본은 고래, 한국은 호랑이 때문에 역사의 장면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일등공신 호랑이
한반도의 밤은 호랑이와 표범이 지배했다. 조선에 호랑이가 얼마나 많았는지는 중국 속담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은 호랑이한테 물려죽은 사람 문상을 다니고, 나머지 절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를 봐도 알 수 있다. 1571년에는 백호가 사람을 비롯해 가축 400여 마리를 물어 죽인 충격적 사건이 있었고, 1607년에는 호랑이가 궁궐 안에 새끼까지 낳았다. 결국 조선에서는 호랑이와 표범 사냥을 전담할 특수 부대 ‘착호갑사’를 운영했는데, 이 착호갑사가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선두에 섰다. 인조반정의 중심인물이었던 이귀는 마침 군사력을 보유한 황해도 평산 부사로 임명됐다. 그 후 평산에서 개성에 이르는 길목의 호랑이를 퇴치하겠다는 빌미로 착호군을 모아 호랑이 대신 광해군을 잡았다. 호랑이가 아니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던 쿠데타였다. ▶ 고래 때문에 강제 개항을 맞은 일본, 조선과 중국을 앞지르다
고래는 일본 근세사를 바꿨다. 1853년 일본에 문호를 열라고 협박한 미국 페리 제독은 실상 고래를 쫓아 일본까지 왔다. 당시 세계 최대의 포경 국가였던 미국은 태평양 고래잡이 어선의 기착 항구가 필요했다.?어업 전진 기지를 확보하고 중국과 무역을 트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미국은 일본을 강제 개항시켰다. 비록 강압으로 맞은 개항이었지만 일본은 서구의 신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여 강대국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1945년 패전 때까지 동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위세를 떨쳤다. ▶ 참새 때문에 닥친 대기근, 4천만 명이 목숨 잃고 마오쩌둥은 정치 2선으로
마오쩌둥은 가장 존경받는 중국의 지도자였다. 어느 날, 쓰촨성 농업 현장을 시찰하던 마오쩌둥 눈에 벼를 쪼아 먹는 참새가 포착됐다. “인민의 곡식을 뺏는 해로운 새다. 없애라!” 마오쩌둥의 명령이 떨어지자 참새 박멸 운동이 시작됐고 학교, 작업반, 정부 기관마다 죽인 참새의 양에 따라 표창이 주어졌다. 이렇게 잡힌 참새는 1958년에만 2억 1천만 마리. 그러나 참새를 잡으면 곡식 수확량이 늘 줄 알았건만 1958년부터 60년까지 중국은 최악의 흉년이 들었고, 1958년 한 해 동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참새를 박멸하니 참새들이 잡아먹었던 해충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대흉작이 된 것. 일설에 따르면 3년간 약 4천만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 여파로 마오쩌둥은 권력 퇴진을 압박받아 정치 2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중국 인민 수천만 명이 굶어 죽은 대재앙을 초래한 후였다. ▶ 원숭이부터 낙타, 비둘기, 코끼리까지 전쟁의 역사는 곧 동물의 역사
대부분의 전쟁에는 인간만큼 중요한 자원이 작용해왔다. 바로 동물의 힘이다. 동물은 때로는 식량으로, 때로는 이동 수단으로, 때로는 무기 발명에 커다란 영감을 줬다.
중국 송나라 때 소수민족 10여만 명이 규합해 반란을 일으키자 송은 인근 산에서 원숭이 수십 마리를 잡아와 원숭이 등에 횃불을 묶어 풀어줬다. 원숭이가 뜨거워 날뛰자 불은 순식간에 반란군 진영을 태웠고, 이 혼란을 틈타 반란을 진압했다. 전투에 투입된 역사상 최초 ‘원숭이 가미카제’다. 6.25 전쟁에는 낙타가 참전했다. 당시 북한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한 중공군이 낙타를 이용해 탄약 등 보급품을 수송한 것. 사막에나 어울릴 법한 낙타가 영하 35도의 혹한이 맹위를 떨치는 장진호 전투에 나타난 것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많이 혹사당하다가 죽는 동물은 말과 당나귀다. 말과 당나귀에 각종 중화기와 탄약을 싣고 험지의 적진에 침투한 사례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말과 사람을 동시에 제압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무기를 ‘인마 살상용’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탱크가 없던 시절, 코끼리는 적의 견고한 방진을 뚫는 역할을 했고, 전쟁 후 바닷속 숨겨진 기뢰나 적 잠수요원을 찾아내는 특수 임무에는 잘 훈련된 돌고래가 이용됐다.우리말 ‘시치미 뗀다’의 유래부터
한중일 외교 사절단에 빠지지 않던 동물들
조선 호랑이에 꽂힌 도요토미 히데요시, 고양이 덕후 숙종까지
희귀해서 더 재밌는 동물들의 숨은 일화‘시치미 뗀다’는 말이 매 사냥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지? 매사냥은 한중일 3국 모두가 사랑했는데 우리나라 매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탐을 냈다. 북방 민족인 발해, 거란, 여진은 물론 당태종 이세민부터 고려 충렬왕, 조선 세종대왕,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모두 매사냥의 재미에 푹 빠졌는데, 워낙 인기이다 보니 길들인 매를 도둑맞는 일도 잦았다. ‘시치미’는 매의 소유주를 표시한 인식표. 매에게 붙여둔 시치미를 누군가 몰래 떼면 매의 주인이 누구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시치미를 뗀다’는 말까지 나온 것. 동물에 얽힌 우리말과 속담, 방언들에는 이 같은 당시 세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용산, 낙산, 내장산 같은 지명 역시 동물과 관련 깊다.나라 간 외교 사절단에 빠지지 않던 동물들은 그 나라의 환경과 생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뿐일까? 조선 개국 초 일본은 왜구에게 잡힌 조선인 659명을 돌려보내며 이성계에게 원숭이를 바쳤는데, 이는 조선에 유화책을 쓰기 위함이었다. ‘신라개’로 불리던 꼬리 짧은 개 동경이는 통일신라와 당나라가 평화 협정을 맺고 화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력을 확장하던 발해가 당의 산둥반도를 침공한 733년을 전후해 신라는 당나라에 과하마 다섯 필과 개 한 마리를, 당은 개 세 마리와 흰색 앵무새 한 쌍을 포함해 오색 비단 등의 예물을 보냈다. 이처럼 나라 간 동물 선물은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관계를 여는 징표가 됐다. 그런가 하면 동물을 향한 유별난 애착을 보인 왕들도 있었다. 일본의 우다 천황은 네 마리 고양이를 키우며 육묘일기를 남겼고, 양녕대군은 세자 시절 금묘를 얻으려고 신하 신효창의 집에서 떼를 쓰다 이 일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조선 제일가는 고양이 덕후는 효종의 셋째 딸 숙명공주와 숙종이었다. 특히 숙종은 수라상을 받을 때도 고양이에게 손수 고기반찬을 먹여줬을 정도였고, 그의 아들 영종 또한 어의가 팔 통증에 고양이 생가죽 찜질을 처방했지만 자신이 고양이 가죽을 써 병이 나으면 고양이 씨가 마를 것을 걱정해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은 난생처음 보는 호랑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호랑이의 위용을 본 뒤 몸보신을 위해 조선으로 출병가는 장수들에게 특별히 호랑이 고기를 부탁할 정도였다. 이 밖에도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 여우가 유독 천대받은 이유부터 조선 시대 제주도에 원숭이가 살게 된 사연, 다람쥐 수출을 위해 만든 다람쥐 섬, 대검찰청과 사법연수원에 해치 석상을 둔 까닭까지 풍성한 이야기들이 지면 가득 진진하게 펼쳐진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재밌어서 끝까지 읽는 한중일 동물 오디세이
저자 박승규
출판사 은행나무
출간일 2020-02-19
ISBN 9791190492300 (119049230X)
쪽수 360
사이즈 141 * 210 * 28 mm /55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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