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책 상세소개
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저자는 보도 사진을 찍는 일 말고 행사와 사건이 끝난 뒤 남아서 자신을 위해, 또 다른 쓸모를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적었다. 앞모습 사진은 골라 매체용 사진으로 챙겨 마감하고, 가만히 선 모습이나 뒷모습 사진은 따로 챙겨뒀다. 어두침침한 사진, 보도에는 마땅치 않은 사진이지만, 쓸데없는 사진이어도 문득 쓸 곳이 떠올라 여러 장을 찍었다. 이번에 그런 사진에 글을 붙여, 때로는 글에 사진을 곁들여 책으로 묶었다.
목차
쓸모에 대하여
빚지다
1미터: 큰일인데 별일 아닌 것처럼
2~3미터: 설레는 봄볕, 서러운 봄
5~7미터: 장소는 기억을 품는다
10미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책속으로
중요한 일은 왼손으로 한다.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일이면 더욱 그렇다. 예를 들자면 셔츠 단추 잠그는 일 같은 것 말이 다. 망가진 아이 장난감을 고치고, 화장실 배수구를 교체하는 일이 또 그렇다.__11쪽나는 어떤 크고 화려한 장면을 찍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원체 느렸고, 자주 게을렀던 탓이 크다. 나는 그저 한 발짝 물러나서 관찰하거나 종종 용기를 내어 주목받지 못한 사소한 일을 묻고 적고 찍었을 따름이다. __13쪽인터뷰였다. 얼마 전 자식 앞세운 사람에게 그 죽음을 다시 묻는 일이었다. 다행인지, 질문하는 건 나의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뒤에 숨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나는 거기서 생각했다. 카메라를 좀 늦게 들었다. 조명 장비를 얼마간 챙겨 갔는데 꺼낼 생각을 접었다. 그저 바라보고 듣는 일을 한참 했다. 동기화라고 해야 할까,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낮추는 과정이었다. 감정이 넘쳐서도, 부족해서도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의를 갖추는 일이라고도 여겼다. 보자마자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건, 조명 세워 팡팡 터트리는 건 폭력적인 일이라고 느꼈다.__59쪽 천막에 사는 사람들 앞에 카메라 들이대는 건 좀 민망한 일이었다. 싸움 나선 사람이라도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가 신경 쓰이는 법이다. 구석으로 숨거나 얼굴 돌리는 사람이 꼭 있다. 빼고 찍거나 동의를 구한다.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법을 배워야 했다. 눈 맞춰 질문하고 얘기를 듣는 기술도 익혀야했다. 무엇보다도 거기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해야 했다.__93쪽점거 농성 진압 작전은 주로 새벽에 이뤄지곤 했다. 농성자의 집중력도 떨어지고, 따라붙는 카메라를 피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언젠가 평택 미군 기지 확장을 반대하며 대추분교에서 농성하던 주민들을 진압했던 작전 이름도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기다린 사람만이 그 장면을 사진에 기록한다. 그 시간에 거기 있어야 한다는 건 사진기 든 사람의 숙명이다. 나는 자주 게을렀다. 마음에 빚만 잔뜩 지고 산다.__123쪽일하는 사람 앞에 두고 번쩍번쩍 불 밝히려니 그것도 좀 민망한 일이었다. 뻔뻔함을 여태 익히지 못해 매번 힘들다. 땀을 찍는 건 카메라 든 사람도 땀 흘릴 일이다. 더운 데서 같이 땀 흘리니 묘한 연대감 따위가 생기기도 했다.__38쪽하나같이 지켜보기 힘든 장면이 매일같이 반복됐다. 나는 지옥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다른 단어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곳이 지옥이구나 싶었다. 나는 무슨 사진을 더 찍고,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를 알 수 없어 자주 멍하니 섰다. 정신 붙들어 잡고, 몸에 밴 뻔한 사진 공식대로 피사체를 따라붙었다. 경찰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초점 잃은 사진이 누군가의 손과 뒤통수, 다리를 기록했다. 그중에는 세차게 흔들리는 학생증도 있었다. 망친 사진이고 쓸 수도 없었지만 지울 수가 없어 그냥 뒀다. 경찰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가 꺽꺽 울며 말을 토했다. 고개를 꺾어 우는데, 뒤로 보이는 태극기가 눈에 밟혔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당시에 많았다. 빨갱이 선동꾼을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며 태극기 흔들며 목소리 높이는 어버이들이 또한 거기에 많았다. 언젠가 지옥도를 그려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그 장면들을 떠올릴 것 같다.__45쪽거기 모두들 기뻐 웃는데, 그 순간 카메라 든 사람들 표정만 잔뜩 찌그러진다. 뭐라도 하나 제대로 찍어야겠다고 마음이 바쁘다. 집중하느라, 한쪽 눈을 질끈 감느라 더욱 그렇다. 관찰자의 팔자다. 결정적인 순간이란 게 있다면, 항상 카메라 들고 잔뜩 찡그린 채 그때를 맞이한다.__230쪽
출판사 서평
◎ 미시사 혹은 현장에서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임종진 작가가 지적하듯이 정기훈이 머문 자리는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 노동자의 단식 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등’ 같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이다. 그런 현장에서 피사체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는가, 피사체에게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또 흘러갔는지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설명한다. 물론 피사체 주위에 선 저자에게도 시간은 흐를 텐데 그 둘을 동시에 묘사한다.
하종강 교수는 저자의 작업을 ‘우리들의 소중한 미시사’라고 표현했다. “그들 사이에 오간 가슴 저미는 대화들이나 통계 속 숫자에 묻혀버릴 뻔했던 사실들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모든 현장에 그가 있었다. 과연 ‘한국의 모든 현장’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은 독자는 책을 펼쳐보는 순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KTX 여승무원, 콜텍 해고자, 평택 쌍용차 공장, 기륭전자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김용균,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 명동 재개발 지구, 용산 참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조합,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 하이디스 정리해고, 동양시멘트 하청 업체 노동자, 국립대 병원 용역 노동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리해고, 시민 불복종 운동, 공무원노조, 교육공무직 비정규 노동자, 이랜드 부당 해고, 서울대병원분회 파업, 전교조, 삼성 백혈병, 청소 노동자 파업, 강정 해군 기지, 백남기 농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대통령 파면 선고, 전태일 기일, 광주 망월동 묘역,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대통령 선거 개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세아제강 해고 노동자, 알바 노동자, 빌딩 외벽 청소 로프공, 단원고 희생 교사, 빌딩 청소 노동자, 경비 아저씨, 민중총궐기, 씨앤엠 등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등. 별스러울 것도 없었다, 싸움은 이미 길었다
삼보일배 하는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꾸역꾸역 자벌레가 기듯 나아갔다. 서서는 손을 모았고, 엎드려서는 앞으로 뻗었고, 종종 하늘 향해 쳐올렸다. 발 뒤에 다른 이의 손이 가까웠다. 엎드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카메라가 높았다. 내려다보기는 익숙지 않아 카메라는 저들을 따라 몸을 낮추곤 했다. 바닥 가까이에선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보였다. 반복되는 여러 동작 중 일어서는 걸 자꾸 담았다. 2009년 8월 경기 평택 칠괴동 어느 5층 건물 지붕 위에 올라 그 건너 불구덩이 쌍용차 공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속 태우고 살 태우던 날, “수원 집이 팔렸다”고 어머니가 알려 왔다. 늦은 밤 덜그럭거리는 연장 가방 메고 아버지가 왔다. 술냄새가 폴폴, 오래 삭힌 홍어 냄새가 거기 섞였다. 취기에 비틀거리는 아버지가 새로 산 흰색 농구화를 밟을까 걱정했다. 공장 정문 안내실 옥상에 비닐집 얼기설기 짓고 사람 둘이 굶었다. 바짝 마른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옛날엔 사람이 분신하면 온 나라가 뒤집혀서 ‘해결하라’고 들끓었는데, 이제 한두 사람 죽어도 ‘누가 죽었나 보네’라며 금세 잊힌다”고 말했다. 구호는, 또 싸움의 말은 대개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이들의 말에는 바짝 말라 뼈에 붙은 살처럼 뺄 것이 없었다. 오후 세 시, 농성하던 유민 아빠가 천막을 나섰다. 청와대를 향했다. 경찰 무전기가 곳곳에서 요란스레 울었다. 구급차가 느릿느릿 걸음 맞춰 따라붙었다. 봉황상 화려한 분수대 앞에 이르러서야 잠깐 쉬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먼 곳을 살폈다. 긴 숨 내쉬고 민원실 방향으로 걸었다. 따라붙던 경찰이 재빨랐다. 몸싸움이 한바탕 요란스러웠다. 반소매 셔츠 차림 그곳 경찰은 빠르고 힘이 셌다. 곡기 오래 끊었지만 살아 숨이 가빴던 유민 아빠는 몸싸움을 이겨낼 수 없어 농성장으로 발길 돌렸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우는 사람이 많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막는 사람 때문인지, 그걸 찍고자 몰려든 기자들 때문인지를 묻는 건 거기 안산 화랑유원지 앞에서 의미 없었다. 얼굴에 줄줄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영석 엄마는 온몸으로 울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자고 벌인 토론회와 집회 맨 앞자리에서 용균이 엄마를 자주 볼 수 있다. 여태 운다. 나는 또 그 눈물을 담겠다고 앞에 쭈그린 채 허둥댄다. ◎ 관찰자의 사진과 글
사진들은 피사체와의 거리를 기준 삼아 총 4부로 나눴다. 여기에 각 사진마다 ‘초점거리’를 밝혀 피사체와의 거리를 좀 더 정확히 가늠해보도록 했다. 피사체와의 거리에 대해 저자가 적은 글이 있다. 저자는 거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아름다운 거리가 얼마쯤일지를 늘 고민한다.
“사진은, 그중에도 매체 사진은 자주 무례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 앞에 설 일이 많은데 부끄럼 많은 나는 다가가길 망설였다. 무작정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건 폭력적이라고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광각렌즈 끼우고 가까이 다가가 찍는 사진을 선호했다. 피사체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가까이 가는 게 맞는 걸까를 늘 생각했다. 피사체와의 거리는 관계와 비례하는 일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멀찍이 물러나지 못해 실패한 일보다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망친 일이 훨씬 많았다. 특별한 일 없어도 오며 가며 농성장을 찾았다. 혹시 뭐 없나 싶어서다. 뭐가 있긴, 거기도 사람 지내는 곳이니 사람 얘기에 귀 기울였다. 남들이 서러워 울 때가 사진기 든 사람이 바빠질 때다. 미안함도 잊고 플래시를 연신 터뜨렸다. 나는 무뎌져갔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소심한 사진의 쓸모 |
저자 |
정기훈 |
출판사 |
북콤마 |
출간일 |
2019-11-20 |
ISBN |
9791187572190 (1187572195) |
쪽수 |
300 |
사이즈 |
140 * 212 * 24 mm /446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