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청춘의 화가, 그들의 그림 같은 삶
책 상세소개
철학자 들뢰즈는 예술가들을 ‘환자인 동시에 의사인’ 이들로 정의했다. 상처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진물이란다. 화가 분들의 작품은 삶에 베이는 아픔과 상처를 통해 체득한 회복과 치유의 흔적이며, 제 한 몸을 밀어붙인 효과이다.
화가 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지금의 화풍으로 자리 잡게 된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져 있다. 그들의 작품은 ‘부재’의 방식으로 기억을 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저 감성과 상상 사이에서가 아닌, 예술과 삶 사이에서 작동하는 상관이다. 그렇듯 예술가로서의 조건은, 직접 삶의 아픔을 겪는 예술 바깥에서의 경험까지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로 이미 예술 ‘안’으로 들어와 있는 조건일 수도 있겠고…. 그저 감성과 상상만으로 가장 슬픈 이별의 장면을 구상해 보는 이들보다야, 직접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별을 겪어 본 가수에게서 구슬픈 그루브가 가능하듯 말이다.
그로써 평면도를 벗어나, 부감의 풍경으로 삶을 바라보는 자유. 평면을 살아가는 이는 벽에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부감을 사는 이는 그 벽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예술가적 자아가 지니는 입체적 시선 또한 삶의 효과이다.
목차
화가 40명과 80 작품의 이야기
책속으로
그렇게 아등바등 하는 사이에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조금 열린 체계가 되었다고나 할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화풍하고 연계가 되니까. 흑백으로만 보던 세상이 이젠 컬러풀하게 보이니까. 그전까지는 수묵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씩 수묵화를 그려볼 때가 있는데,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젠 흑백의 농담 속에서도 다채로운 흐름이 있다. -강병섭 (p.15)좋은 작가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여러 가지 갈래의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실험적으로도 말이 잘 되어야 하고, 상품성도 있어야 하고, 작품성도 있어야 하고, 철학도 담겨 있어야 하고….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 고스 (p.25)
그림을 못 그릴 상황이 무리를 지어 다가왔었는데도, 어떻게든 그릴 수밖에 없던 내 자신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돌아보면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림이 나를 시험한 느낌이다. 계속 상황을 던져주면서, 너 이래도 그림을 그릴 거야? 이래도 그림 그릴 수 있어? 라고 묻고 있었던 것 같은…. - 권태훈 (p.32)내 입장에서는 상처인데, 그 사람은 자기 밖에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 그러나 내 성질대로 그들을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그런 적이 없는지를 자문해 보면 그 대답에 당당할 수만도 없다. - 김도훈(p.40)작업실은 따로 없고, 집에서 작업을 한다. 독립된 공간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그런 작업실은 창고화가 된다. 원래는 작업실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과 관련 없는 것들이 쌓여간다. 그래서 작가들은 외부에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 김수진(p.62)아이러니한 게, 대중적인 코드를 쫓아야지 그 사람의 인지도도 넓어지고 하는데, 또 그런 방향성으로 가게 되면 돈 맛을 알아버렸네 하면서 또 뭐라 그런다. 그렇다고 실험미술을 하면, 왜 그렇게 궁핍하게 사느냐면서 또…. 사실 전시라는 말 자체가 펴서 보여준다는 의미이지 않던가. 혼자 보는 게 아니라 밖으로 펼치는 것인데, 예술가들은 이런 거 하면 안 돼, 좀 외롭게 살아야 돼, 이런 편견이 있는 것 같다. - 김영진(p.69) 모네는 거의 할아버지가 되어서 늦게 전성기를 맞이했다. 죽도록 그림만 그릴 땐 사람들이 잘 몰라주다가 루앙대성당 때문에 빵 뜬 것. 그것도 연작으로 엄청 많이 그렸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드니까, 나갈 수가 없으니까, 아예 루앙대성당 앞에 집을 잡아놓고서 매일 나가서 그렸단다. 생애를 알고 나니까 너무 감동적이었다. 나도 좋아하려면 이렇게 죽을 때까지 좋아해야겠구나. 기력이 다 할 때까지 그런 생각을 했었다. - 김주희(p.87)
나는 미술을 계속 하고 싶다. 회사도 다녀보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해보고 나니까, 이게 제일 행복하더라. 이미 많이 혼란을 겪은 후라서 그런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이제서야 큐레이터나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건 아직 안 해봐서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내가 겪은 이런 저런 일들에는 정말 행복함이 없는 기분이었다. 이걸 하면 몸은 진짜 고된데, 약간 충족되는 뭔가가 있다. 정신적 에너지가 충족되는 느낌. 그래서 이걸 내 팔이 남아날 때까지 하지 않을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 노채영(p.117) 그렇다고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왜 내게 그런 허무한 감정들이 밀려들까에 대한 대답이 궁금했던 것 같다. 강의 중에,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는데, 표출을 못 하고 살아온 날들이 쌓인 결과가 그런 감정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돼서, 그때부터 해골 작업을 죽음으로 풀기보다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풀고 있다. - 박훈(p.134)
어떤 사람은 그렇게 하면 진짜 예술가는 아니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의 생각은 그렇다.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 먼저 가능해야지. 그것이 뿌리라고 생각하는데, 바닥이 안 튼튼하면 해봤자 모래성이지 않을까. - 송재윤(p.154) 시장에 대한 관심은 없는 척 한다. 실상 관심 받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에서나 있는 것 아니겠나. 내 작업들을 보면, 항상 성에 차지는 않는다. 그래서 주제도 화풍도 계속 바뀌는 것 같다. 완벽하게 ‘이거야!’ 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누구나 갖고 있는 소망, 화가로서 잘 되는 것. 그러려면 일단 작업이 좋아야 할 테지만, 어떤 작업을 하던 간에 항상 완성도 면에서 만족도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항상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는 행복이다. - 오태중(p.167)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뭘 만드시던, 모든 엄마 작가들이 그런 마음이실 거다. 워킹맘이랑은 또 다른 개념이니, 워킹맘은 떳떳한 경제력이기라도 하지, 작가 엄마들은 다 불안덩어리이다. 불안을 더 크게 하는 요인은, 작가로서의 행위들이 취미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거 안 해도 되잖아,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머지 집안일이라던가 육아에 있어서 전업주부와 똑같이 완벽해야 된다. 뭔가 하나 어그러지면 취미생활 때문에 그런 거라는 시선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나는 이것도 잘 해야 되고, 저것도 잘 해야 되고…. 모든 엄마 작가들이 그러실 거다. 물론 워킹맘들도 당연히 그러실 테고…. - 이은지(p.188)이를테면 도마뱀은 나 자신에 빗댄, 경계를 넘나드는 양서류이다. 살다보면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틀을 만든다. 나는 여기까지만 해야겠어, 나는 여기 이상으로는 안 돼, 나는 이걸 넘어가면 안 돼, 그렇게 지어 올린 틀이 나의 생활 반경 혹은 삶의 패턴이 된다. 그렇게만 살다보면 내 안에 잠재된 것들을 발견해낼 수 없다. 닫혀진 공간 안에 혹은 그 공간의 바깥 표면을 오르내리는 도마뱀 한 마리는 그걸 깨뜨려 나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 이정연 (p.194) 직장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까, 수동적인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뭔가 정해진 일이 던져지고, 언제까지 몇 시까지 하라고 하면, 거기에 나를 맞추는 일만 해왔던 것. 주도적으로 내가 내 시간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다 보니까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는 거다. 뭔가 정해진 것도 없고, 뭔가가 시작되는 것도 없고, 뭔가가 끝나는 것도 없는 그런 기분.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그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 장은혜 (p.212)가린다는 건 어떤 면에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리는 것까지가 ‘나’다. 내가 꾸미려면 얼마든지 꾸밀 수 있으니까. 사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게 나다. - 정진 (p.236)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하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차피 그렇게는 잘 안 된다. 이런 방향으로 가야지 하며 억지로 해봤자 잘 되지도 않고…. 지금의 작업 스타일은 즐긴다고 할 수는 없는데, 그냥 이렇게 그려지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그려야지 하고 그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그려지고 있는 거다. - 최은서 (p.275)지금의 삶에 만족하기는 하지만, 직장을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뭐 이런 느낌은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다만 돌아갈 수 없으니까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행복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불행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 - 허진의 (p.287)
출판사 서평
화가의 삶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도,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잘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그랬으니까. 나에 비추어 보면 남들도 그러지 않을까?” - 정진 작가의 말 - 사랑에 관한 지침서들을 백날 읽어봐야 사랑에 서툴고, 인생에 대한 철학을 백날 읽어봐야 삶에 서툰 현실. 구조의 문제가 어떻다 저렇다를 거시적으로 떠들어 봐야, 자신을 향해 있는 미시적 관계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삶. 출판사 포스트에는 화가 분들의 작품과 관련한 미학의 글월을 적어 놓았었다. 그러나 굳이 이 기획에 페이지를 할애할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렇듯 미학과 미술사적 지식보다는 화가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정리한 원고. 거시적인 모네보다는 미시적인 정진에 관한 이야기.
음악에서 디미니쉬 코드 개념은, 불안정한 화음으로 연계함으로써 음악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하는 조합이란다. 철학자 들뢰즈가 설명하는 바로크 미학을 이런 경우로 이해하면 쉽다. 안정과 불안정의 배열로써 단조로움으로부터 탈주하는, 그 자체로의 균형미. 삶도 그러하지 않던가. 온실 안의 화초처럼 순조롭게 살아온 이들보다야, 야생의 비바람을 한껏 맞아본 이들이 지닌 질곡과 곡절의 스토리텔링은 안정된 흥미의 요소를 두루 갖춘 문학성이다.
녹록치만은 않은 화가의 삶. 그 모진 현실이 건넨 좌절과 방황. 그러나 또한 개인의 화풍이 정립된, 혹은 변하게 된 저마다의 사연은 그 시간들이 선사한 선물이기도 했다. 사유로부터 영향을 받는 붓질,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한다’는 파울 클레의 어록을 미학사가 아닌 인생사로 풀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 |
저자 |
YAP |
출판사 |
다반 |
출간일 |
2021-03-30 |
ISBN |
9791185264516 (1185264515) |
쪽수 |
304 |
사이즈 |
151 * 221 * 23 mm /583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