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 시집

창밖엔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이런 여백에 궁색한 짐을 내려놓게 되다니 부끄럽다 하지만 어쩌랴 고작 이게 내 삶인 것을 2020년 늦가을 김재환

제1부
껍데기의?바깥 13
나비야 나비야 14
매화를 그리다 16
앵두꽃 크로키 18
봄밤 20
죽순이 자라는 오후 21
손편지 22
랑 24
나는?가끔?내가?갈참나무라?생각한?적이?있다 26
봄날의 우연한 상상 27
마이신mycin을 보면?터뜨리고 싶다 28
분홍 립스틱 30
마네킹 안전원 32
시시한 연애 34
우연히 보다 36
바람개비 38

제2부

그러나 다시 나는 길 위에 있다 40
기일忌日?일기 42
초록섬 44
여름날의 서정 45
분홍, 속수무책으로 번지는 46
절벽을 읽는 방식 48
오래된?얼룩말?무늬의?얼룩에?대한?오해 50
그리움을 소환하다 53
붉은 아카시아꽃의 편지 54
제3의 눈 57
꽃의 그늘 58
어느 눈부신?오월에 문득 60
이별 의식儀式 62
촌사람 64
탄도항 66
각시붓꽃 68

제3부
우리들의 나비를 위하여 70
백목단 꽃 읽기 72
두근두근?카페 74
바이올린 소나타? 77
쫄리John Lee 78
Oh My California 80
초콜릿 외설 82
검은 고양이, 레이 83
오후의 커피숍 86
25시 88
X 같은 90
Fox, Fox 92
우아하게 세 번 93
숲이 새를 꺼내 보여주었다 94
분홍과 빨강 불러오기 96
겨울 저 나무를 나라고 하면 안 될까? 98

제4부
공중을?나는?돌 100
즐거운 옥상 102
가을 편지 104
나는 어서 가기를 원하고 105
중록서원中麓書院 106
돌에 새긴 그녀 108
각覺 109
성산 일출봉 110
등 굽은 팽나무가 있는 풍경 111
이상한 기다림 112
돌 앞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114
돌거미의 전설 116
어떤 팔자 118
왕국 가는 길 120
잠시 타임을 걸고 122

해설
관계를 꽃피우는?존재의 서정성 | 유종인 124

껍데기의?바깥어쩌나,
둥지 안 끝끝내 부화하지 못한 달걀 하나
?
그때 나는
어미 닭의 간절한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껍데기를 깨지 못한 이 알을 잠시 생각하기로 했다
?
깨는 것에 대하여
결별이란 것에 대하여
?
껍데기는 껍데기일 뿐
깨뜨려라, 거듭거듭
오직 깨뜨리는 것만이 썩지 않는 길이거늘
?
껍데기란 그런 것
장렬한 파괴를 위하여 신은 껍데기를 만들었다
?
이제 막 껍데기와 이별을 한 병아리들
눈부신 봄 햇살 속에서
꿈속처럼 제 그림자를 쪼고 있고
?
그러면
침묵 속의 이?알은 또 무엇인가각시붓꽃오월의 바람을 좇아가다 만난꽃, 가만히 본다알 수 없다 노랑도 아닌 빨강도 아닌눈앞 가득 자줏빛을 켜고 있는저 꽃, 나와 눈 마주치자그녀의 가녀린 목을 닮은 꽃대

환한 꽃잎 받쳐 들고 흔들거린다야트막한 산비탈 자줏빛 물든 오후가 오래 앉아 있다

김재환 시인의 시적 에스프리는 자신을 둘러싼 사물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긍정적인 존재의 관계망을 펼치는 서정적 활기로 풀어내고 있다. 생사의 갈림길이나 그늘에 놓인 숨탄것들도 있고 일견 무생물적 영락(榮落)에 놓인 사물이나 상황을 놓고 보더라도 그것의 표면적인 단적인?인상에만 머물지 않고 그 대상 상관물이 지닌 주변과의 상관성에 주목한다. 하나의 상관물은 그 하나의 현재 상태에만 모든 결정적인 의미가 고착된 것이 아니라 향후 그리고 점진적인 변화와 다른 의미적인 반전을 함의하고 있을 가능성이 여실하다. 그만큼 서정의 폭과 깊이를 헤아리려는 시인의 눈길은 자못 진지하면서도 활달한 성향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