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1919 : 별밤서재

백 투 더 1919 요약정보 및 구매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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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승훈 , 엄지원 , 최하얀
  • 철수와영희
  • 2020-04-11
  • 9791188215423 (11882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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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문기자, 100년 전으로 가다
책 상세소개
식민지 조선인들은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까? -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이 책은 100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가상의 ‘지하신문’을 통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게 알려 준다. 생동감 있는 1919년사의 복원을 통해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올바르게 담고 계승하려는 시도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기사 형식의 구성을 통해 1919년 당시 민중과 독립운동가부터 친일파, 지배자인 일본인까지 당시를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담았다. 독립운동사와 함께 국제 정세는 물론 사회문화상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 기사들은 당시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아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지, 그들이 꿈꾼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지금의 한국은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는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3·1운동을 1919년 3월 1일 하루 동안 서울과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시위 정도로 알고 있다.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이리저리 피난살이를 다녔던 망명정부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3·1운동은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참여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규모의 독립운동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독립을 ‘청원’하지 않고 독립을 ‘선언’했다. 남녀노소에서 장삼이사까지, 기독교에서 천도교, 불교까지 온 민족이 한목소리로 조선 독립을 외쳤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각성은 조선인 스스로 자유인의 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피를 통해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범을 불러왔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는 왕실과 귀족이 엄존하고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별이 엄연한 신분 사회였는데, 한 사람만을 위한 왕정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화정을 외친 100년 전의 목소리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이 책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2019년 1월 1일부터 4월 29일까지 ‘1919 한겨레’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기사들을 묶었다. 1919년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해 당시 〈매일신보〉, 법원 판결문, 검찰 심문조서와 같은 1차 사료를 비롯해 100여 편의 관련 논문, 50여 종의 연구서 등을 두루 참고했으며 전문가 20여 명의 자문을 거쳤다.

목차
머리말: 100년 전 ‘오늘’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19년 1일 1일
기미년 밝았다, 온 강토를 광복의 기운으로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간다
“민족자결주의는 당위 명제니 우리의 충정을 모아야 않겠소”
황포강변에 부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의 바람인가
14원 하던 쌀값이 38원 굶주린 궁민들은 분노한다
■ 해 넘기도록 맹렬한 돌림감기
■ 일본 순사 매질은 조선 사람만 골라 하나

1919년 1월 2일
일제하 쌀값 앙등, 참으로 참담하다
총독부 무단통치, 임계점 넘었다
패전국 독일… 배상금에 경제난까지 민심 흉흉
쌀값 폭등에 동맹파업 급증…노동자 총궐기 나서나
조선 땅 집어삼킨 동양척식회사
선산에 조상도 못 묻다니
■ 강도랑 한식구 돼서 그리도 감개무량
■ 돈까스·카레·오무라이스… 서양 맛에 빠진 일본

1919년 1월 9일
재동경 조선 유학생들, ‘조선청년독립단’ 결성
동경의 조선인 유학생은 일제의 지독한 골칫거리
최남선 vs 윤치호… 파리강화회의 논쟁
■ 셜록 홈스가 조선땅에 왔다
■ 부랑자로 검거된 양반들

1919년 1월 16일
김좌진의 탄식 “광복회 동지들이여!”
총독부마저 비판한 친일파들
일본 하층민에게 조선은 기회의 땅
‘붉은 로자’ 옛 동지들에게 피살
■ 세상 놀래킨 무오년의 범죄들
■ 차별 조장하고 뒤로 훈수 두는 총독부

1919년 1월 23일
광무황제 뇌일혈로 21일 급서
외세 앞에 유약했던 봉건제국의 종언
조선인들 충격과 통곡… 독립진영 기민한 움직임
파리강화회의 개막…일제, 민족자결주의 보도 금지
■ “식혜에 무슨 짓을…” 고종 독살설 확산

1919년 1월 30일
천도교 손병희 교주, 독립선언 준비 지시
천도교는 왜 독립운동 앞장섰나
동경 이광수·경성 최남선 ‘독립선언문’ 집필
“동경서도 독립운동하는데…” 경성 청년들도 나선다
■ 조선인 목숨이 하마보다 못하오

1919년 2월 9일
“세계 만국에 조선 독립을 선언하노라”
‘적국의 심장부’ 아랑곳없이 절로 터져 나온 “만세”
선언문 곳곳 ‘결연한 기백’…왕정과 결별·새 국가 쟁취 선포
사각 모자에 선언서 숨겨…문익점 버금가는 첩보전
독립선언 영향 준 일본의 ‘두 얼굴 민주주의’
하늘도 돕는 신한청년당 독립투쟁
연해주 윤해·고창일 씨, 파리강화회의행
국내서도 ‘독립선언’ 거사 착수…이완용 동참 거부
■ 잇따른 화재에 도깨비불 소문… 흉흉한 민심
■ 독립운동 위해 혼례 열흘 만에 생이별

1919년 2월 14일
‘일제·유교 굴레’ 이중속박, 담대히 떨치고 선 신여성
제발 저린 일본, 사이온지 암살 경계령
조선 여자 임금, 일본 남자 임금의 반의반 토막
■ 19살에 잡지 〈창조〉 창간한 김동인

1919년 2월 21일
경성 학생들, 광무황제 장례 전후 ‘만세’ 거사
여운형의 명문, 일본서도 “새겨들어야”
장덕수 체포, 운명의 장난
사형 예고에도 의연한 대한광복회원들
‘동경 2·8만세’ 일주일 만에 유학생 아홉 명에 실형
■ 공무원·교사가 꿈인 요즘 학생들

1919년 2월 25일
독립선언 드디어 ‘3월 1일’ 확정
거사 자금은 천도교, 선언서 번역은 기독교가 맡기로
전문학교 학생들, 종교계 독립선언 합류 결정
“사회주의가 곧 반일”… 한인사회당 꿈은 어디로
■ 조선인 아이, 일본인 아이가 쏜 총에 숨져

1919년 2월 26일
최초의 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결성
각지 독립운동가는 왜 연해주에 모였나
“열강에 독립청원서 전하라” 상해·동경으로 밀사 급파
■ 파리회의 간다던 이승만 미 병원에
■ 뭐 먹을 것 있다고 동포 등쳐먹소

1919년 2월 28일
민족대표 33인 최종 확정…이제 ‘거사’만 남았다
친일 첩자 오해로 총 맞은 한용운…민족대표 이모저모
자정까지 2만 1000부 극비 인쇄… 공장 감독도 몰랐다
■ 족보 밑에 숨긴 선언서 발각 직전 정전…위기의 순간들

1919년 3월 1일
유관순과 동기들 “담 넘어서라도”…군중들 경성으로
“거사의 날 밝았다”…친일파 심장부 태화관에서 독립선포
3·1선언서, 세계에 외친 ‘인류평등’…평화와 공존 정신 담았다
‘종이 태극기 물결’ 육조 거리
■ 감시 피해 기차와 인편으로…배포 큰 선언서 배포작전
■ 민족대표 권동진 일본 조선군 사령관과 밀회

1919년 3월 4일
맨손 시위대에 총포…조선은 계엄상태
민족대표 만세삼창 직후 총독부 연행
총독부, “알고 있었다” 애써 태연한 척
■ 3월 1일 동경서도 대규모 시위 왜

1919년 3월 6일
경성서 다시, 거침없는 만세봉기
이승만, 윌슨에 위임통치 청원
“서양의 동정을 얻어야” 독립진영 근심거리 이승만
■ “조선인 폭도”…〈아사히〉, 아싸리 정론지 이름 떼라

1919년 3월 18일
독립투사 몰려드는 상해…임시정부 거점되나
해외에서도 ‘대한독립만세’ 함성
“인류 평등 위해 육탄혈전 독립 완성”
우리 대표 김규식 씨, 천신만고 끝에 불란서 도착
■ “조선이 독립했단 게 사실이오 ”

1919년 4월 3일
임시정부 각론, 상해서 격돌
국내서도 정부 수립 논의 활발
3·1 한 달…더 거세진 불길
■ 일왕에게 경고하오…19살 유생의 기개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신채호의 일갈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
■ 이완용의 적반하장…토착왜구에겐 ‘만세’가 ‘망동’으로 들리오

1919년 4월 19일
일제, 제암리 주민 30명 교회 가둬놓고 학살
화수리선 순사 죽음 명분 새벽녘 온 마을 태워
선교사들, 참상 고발 앞장
미국 독립의 심장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
■ 일본도에 양팔 잘려도 끝까지 “조선독립 만세”

1919년 4월 29일
만세시위에 빚졌으니 독립전쟁 길 나서리
■ 조선인 수감자들 감옥 안에서도 만세시위 이어가

부록
〈한겨레〉가 뽑은 독립운동 ‘민중대표’ 48인
역사학자 좌담: ‘3·1운동 100년’의 현재적 의미

참고 문헌
책속으로
“(태형 제도에 의해) 일본 순사들에게는 그들이 원한다면 재판을 거치지 않고서도 한국인을 구타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었다. 해마다 수만 명에게 태형을 가했으며 그것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남는 것이라고는 줄을 이은 불구자와 시체뿐이었다.” 일본이 그렇게 흠모해 마지않는 대영국의 언론인 매켄지가 태형 제도를 두고 한 말이다. - 본문에서2년 새 쌀값이 세 배나 앙등하면서 농민과 영세민들의 생활에 일대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풀뿌리, 나무껍질은 예삿일이고 찰흙을 끓여 먹거나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어린아이를 내다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정사년(1917)과 무오년(1918),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 아래 조선인들이 겪은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다. - 본문에서물가 상승과 더불어 쌀값 폭등으로 가장 경제적 곤경에 처한 이들은 도시 노동자다. 쌀값이 크게 오른 재작년 후반기 이래, 알량하게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조차 이들의 경제적 형편을 다룬 기사를 빈번하게 싣고 있는 것은,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생존투쟁이라 할 노동자들의 동맹파업 또는 임금투쟁이 급증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 본문에서일본과 국내에서 조선 민중의 독립운동이 다시 불붙는 데에는 식민통치 9년 동안의 민족적 차별이 가장 큰 요인이다. 차별의 양상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곳은 일본인과 조선인, 특히 여성 노동자의 임금 부분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조선 남성이 일본인의 절반, 조선 여성이 4분지 1의 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선일체’ 타령에 울화통이 터지는 이유이다. - 본문에서 3·1운동 당시 조선인들은 독립을 ‘요구’하지 않고 독립을 ‘선언’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각성은 조선인 스스로 자유인의 의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노예의 삶에서 주인의 삶으로의 거대한 전환이었다. 이 땅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자유의 외침은, 1919년을 온통 희망으로 들끓게 했다. 9년 동안의 식민지배로 명운이 다한 것처럼 보였던 조선이 3·1운동을 통해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 본문에서조선 각지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목소리가 천둥과 같이 울려 퍼지고, 이를 진압하는 일제의 총구가 불을 뿜어내는 와중에도 전국적인 배포망을 가진 유일한 신문 〈매일신보〉는 눈 감고 귀 닫은 듯 국장과 관련한 가십들만 쏟아내고 있다. 허나 선언서가 방방곡곡 전달되고 있는 데다 어용신문을 대신하여 전국 각 학교 학생들이 격문과 지하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므로 만세운동의 기세는 한층 등등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 본문에서만세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인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경술년(1910) 국망 이후 억눌렸던 분노와 설움이 폭발한 데다 총독부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이웃들이 스러져가자, 각지의 농민·노동자들은 만세를 넘어 돌과 곡괭이를 손에 들고 헌병주재소를 습격하고 있다. (…) 그러나 화약을 구하기 쉬운 광산 지역에서조차 폭탄을 사용하거나 총을 사용하였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하였다. 곡괭이와 삽으로 주재소를 때려 부수는 순간에도 우리의 목적은 일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구하기 위함인 까닭이다. - 본문에서 그날, 식민지 백성들은 새로운 근대 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글을 배운 학생들은 격문을 쏟아냈고, 글을 못 배운 이들은 다른 이에게 물어서라도 ‘민족자결주의’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땅을 빼앗긴 농부들은 분노했고, 착취당한 노동자들은 파업했으며 상인들은 상점문을 걸어 잠갔다. 가부장제 아래 가장 약한 존재였던 여학생과 기생들이 남자보다 앞장서서 용기를 냈다. 얼굴 없던 이들이 얼굴을 드러냈고, 말 없던 이들이 말을 쏟아냈다. - 본문에서먼저 국호는 신석우·이영근 씨 등의 제청으로 ‘대한민국’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빼앗긴 국가를 되찾는다는 뜻에서 경술년에 잃어버린 국호인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도로 찾아 사용하되 정치체제는 ‘제국’이 아닌 ‘민국’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민국이라는 국호의 제정은 3월 1일 독립선언 직전까지 존재했던 복벽주의(왕정복고)를 완전히 극복하고 최초의 민주정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하다. 아울러 민국에는 신해혁명 이후 선포된 국호 ‘중화민국’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본문에서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백 투 더 1919
저자 오승훈 , 엄지원 , 최하얀
출판사 철수와영희
출간일 2020-04-11
ISBN 9791188215423 (1188215426)
쪽수 380
사이즈 150 * 220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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