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무지개떡 건축 탐사 프로젝트
책 상세소개
건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무지개떡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살기 좋은 도시의 미래상을 제시해온 건축가 황두진의 『가장 도시적인 삶』. 한국의 상황을 해석하는 건축을 설계해온 실무 건축가이자,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쓰기를 꾸준히 병행해온 저자의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이번 책에서 저자는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상가아파트를 성실히 조사하고 직접 답사하며 도시를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건축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한다.
공간과 도시의 활력을 위해서는 주거나 상업시설 등 단일 용도가 아닌 복합 기능을 갖춘 건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도시를 도시답게, 삶터와 일터, 거리와 건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소통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해법, 도시에서 일하고 놀고 머무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해법이 바로 '무지개떡 건축'이라고 강조한다.
보편적인 도시건축을 논의하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구체적인 실물과 현장과의 만남, 개별 건축의 ‘하드웨어’와 디테일을 세심하게 읽어가는 방식을 통해 그 담론을 전개해가며 상가아파트의 미덕을 설명하고 무지개떡 건축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구성을 제공한다. 내 주변의 무지개떡 건축을 직접 조사하고 답사하는 방법을 담은 ‘답사 가이드’나 ‘답사 코스’를 표기한 지도까지 꼼꼼히 기록해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의 탐사 여정에 동참하도록, 도시건축에 관한 문턱을 낮추고, 실질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목차
추천의 말
서문
1부 단독형 무지개떡 건축
2층 한옥상가: 무지개떡 건축의 탄생
충정아파트: 한 건물이 바라본 한국 근현대사
야마토아파트: 허구와 실제 사이
서울역 앞 관문빌딩: 최초의 주상복합?
미동아파트: 거리형 아파트의 전형
원효아파트와 금성아파트: 도시의 활력을 위한 실마리
서소문아파트: 물길 따라 휘어진 선형아파트
삼각아파트: 중규모 상가아파트의 전형
피어선아파트: 최고급 도심형 주상복합건축의 원조
안산맨숀: 수직의 마을
대구 명륜로 한양가든테라스: 나의 길을 가련다
중곡동 주거복합: 동네에 뿌리내린 열린 건물
인천 구월동 앤하우스: 작은 집 큰 공간
2부 단지 결합형 무지개떡 건축
고은아파트, 연화아파트, 홍파아파트: 소규모 단지형 상가아파트
반포주공 노선상가아파트: 이별의 카운트다운
타워팰리스: ‘초고층 주상복합’이라는 현상
3부 시장 결합형 무지개떡 건축
좌원상가아파트: 지명도 낮은 건물의 수수께끼
세운상가: 역설의 교훈
낙원빌딩: 한 시대가 낳은 우발적 실험
효자아파트: 전통시장과 한 몸
원일아파트: 시장과 집을 잇는 도시적 드라마
유진상가: 상가아파트라는 하이퍼텍스트
대신아파트: 1970년대의 실험 정신
성요셉아파트: 지형에 순응한 선형식 아파트
숭인상가아파트: 아파트가 흐르는 천변풍경
4부 해외 도시의 무지개떡 건축
싱가포르 골든마일: 싱가포르의 세운상가
쿠알라룸푸르 전통 상가주택: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
방콕 호프: 진화하는 상가주택
시드니 상가주택: 주민과 관광객이 공존하는 곳
평양 상가아파트: 한반도의 보편적 도시건축을 찾아서
부록
무지개떡 건축 타임라인
무지개떡 지수
무지개떡 건축 용적률
무지개떡 건축 답사 가이드
무지개떡 건축 답사 코스
출판사 서평
‘알쓸신잡’에서 화제가 된 ‘무지개떡 건축’의 모든 것!서소문아파트에서 세운상가, 낙원빌딩, 가든테라스, 중곡동 주거복합까지
살아 숨 쉬는 도시를 위한 길 옆, 가게 위 주거 탐사기과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 도시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직주분리’, 즉 일터와 삶터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터와 삶터가 가까이 있는 도시 공간의 필요성을 일찍이 주장했던 건축가 황두진은 서울 시내 곳곳에 위치한 상가아파트를 분석했다. 성실히 답사하고 치밀하게 분석해 발과 머리로 쓴 이 책은 우리에게 건축사에서 외면당해온 상가아파트라는 외로운 공간을 통해, 지난 세월 한반도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건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행복하게 품을 미래 공간을 꿈꿔보시길. - 정재승(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황두진의 책은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존재를 향한 따사로운 눈길이다. 거의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은 부실한 기록 때문에 힘도 부쳤겠다. 스스로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는 믿음은 사뭇 용기가 되었다. 그렇게 찾아 나선 ‘상가아파트’는 역사가 되었고, 믿음과 용기가 보태져 『가장 도시적인 삶』을 잉태했다. 이 책은 도시건축에 대한 배려와 격려로 만든 ‘도시건축의 보학(譜學)’이다. - 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눈 밝은 건축가 황두진은 상가아파트의 역사와 가능성을 재발견한다. 이는 과거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임과 동시에, 우리가 살아갈 도시를 아름답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그의 오랜 고민의 결과다. 이 책을 들고 골목길을 걸으며 답사를 해도 좋겠고, 아직 가치가 저평가된 구역을 찾아 탐사에 나서도 좋겠다. - 김시덕(문헌학자·작가)'한옥' 건축가, 그리고 ‘도시적’ 해법을 고민하는 건축가
한옥을 현대건축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작업과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해온 건축가 황두진. 그의 다양한 활동 영역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동시대 한국에 적합한 도시건축에 대한 성찰과 관심이다. ‘무지개떡 건축’이라는 개념으로 살기 좋은 도시의 미래상을 제시해온 그는 이번 책에서 도시 곳곳에 자리 잡은 상가아파트를 성실히 조사하고 직접 답사한다. 그로써 도시를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건축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한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상황을 해석하는 건축을 설계해온 실무 건축가이자, 도시와 건축에 관한 글쓰기를 꾸준히 병행해온 저자의 이력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보편적인 도시건축을 논의하는 거시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항상 구체적인 실물과 현장과의 만남, 개별 건축의 ‘하드웨어’와 디테일을 세심하게 읽어가는 방식을 통해 그 담론을 전개해나가는 것이다.‘가장 도시적인 삶’은 무엇일까
도시에서 행복하게 일하고 놀고 거하기 위한 선택!
현재 대한민국 총인구의 약 92퍼센트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제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도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장소 중 하나가 시장이다. 도시에서 상업가로의 중요성을 배재할 수 없는 이유다. 구도심에는 오래된 큰 시장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상권이 형성되면 사람이 모이고, 상업시설 옆에 주거가 들어서고, 지역은 활력을 얻는다. 주거시설과 관련된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주택 유형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60퍼센트를 넘어섰다. 아파트는 빠르게 지배적인 도시 주거 양식으로 자리 잡았고, 정치·사회·경제적 중요도 역시 높아졌다. 그에 따라 아파트의 역사, 그것이 만들어낸 문화, 계급 상승 수단으로서 부동산 등 아파트를 분석하고 비평한 여러 연구서들이 출간되었다. 물론 이때 그 대상이 되는 아파트는 대부분 거리와 주변 지역에 대해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는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의 대명사, 거리와 외부에 배타적인 ‘단지형 아파트’다. 한편으로 대단지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이전처럼 높은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저성장 시대에 본격 진입했다. 그와 함께 도시정책 및 사업의 패러다임이 ‘도시재생’,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면 철거” 위기에서 재생의 길을 걷고 있는 ‘세운상가’가 대표적인 사례다. ‘마을만들기’처럼 도시 바깥이 아닌 도시 안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아파트에 관한 논의들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국의 공동주거와 도시 또는 사람의 관계에 접근한다. 아파트는 나쁜 주거 유형이고, 그 대안이 ‘마당 있는 단독주택’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대답은 구체적이고 명확하다. 단독주택은 도시의 ‘밀도’를 감당할 수 없다. 얼마 전 ‘알쓸신잡’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가 전통시장을 방문해 “시장에 사람을 살게 하자”는 황두진 건축가의 제안을 언급했듯, 공간과 도시의 활력을 위해서는 주거나 상업시설 등 단일 용도가 아닌 ‘복합’ 기능을 갖춘 건물이 필요하다. 그래야 (OECD 국가 중 평균 통근 시간 1위의 자리에서 벗어나) 직장과 집이 가까운 ‘직주근접’의 삶을, 주민들의 편의시설이 적절히 위치한 동네를 이룰 수 있다. 요컨대 밀도와 복합성은 도시 거주민들의 생활양식, 도시의 기능과 특성을 고려한 주거의 필수 조건인 동시에 무지개떡 건축의 핵심이기도 하다. 도시를 도시답게, 삶터와 일터, 거리와 건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 숨 쉬고 소통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해법, 도시에서 일하고 놀고 머무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해법이 바로 무지개떡 건축인 것이다.이 책은 무지개떡 건축 중에서도 주로 상가아파트의 전체적 구성, 그리고 건물과 도시가 만나는 방식에 주로 관심을 둔다. 즉 개별 상가아파트의 특성 못지않게 도시건축의 유형으로서 상가아파트의 보편적 가치를 조망하고, 그 존재를 다시 알리며, 나아가 이를 재구성하여 현대에 다시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서문, 15쪽)우선 단독주택은 기본 밀도의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으므로 보편적 유형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기존의 단지형 아파트는 의외로 토지 이용의 효율도 높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도시의 기본 에너지인 거리의 활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기존의 다가구, 다세대, 연립주택 들은 기본 밀도는 어느 정도 충족하고 도시 맥락의 유지에도 공헌하지만 대부분 주거 단일 용도인 경우가 많아 거리에 대해서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즉 도시의 기본 밀도를 충족하면서 복합 기능을 통해 거리의 활력에 기여하고, 도시의 기존 맥락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상주인구와 유동인구의 적절한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유형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무지개떡 건축이다. 그리고 그 시원적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상가아파트다. (서문, 16쪽)도시란 결국 밀도와 복합이라는 두 키워드로 구성되는 인간의 정주 형태다. 도시건축의 유형은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만 무시해도 결국 도시적 보편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그 유형 자체가 아예 송두리째 사라지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온다. (443쪽)서울은 지금 지나치게 외곽으로 팽창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가 끝난 이제, 교외는 다시 축소되고 인구는 구도심으로 회귀할 것이다. 노령화 역시 의료, 문화 등의 이유로 교외보다는 도심을 선호하는 경향을 부추길 것이다. 그렇다면 구도심의 주거 기능이 갈수록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피어선아파트 같은 건물이 다시 각광받을 시대가 점차로 돌아오고 있다. (154쪽)단지형 아파트의 경우 내부 환경은 좋을지 몰라도 거리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결국 도시를 수많은 빗장 공동체로 쪼갠다. 도시적 발칸화(balkanization)인 셈이다. 거리형 아파트는 물론 장단점이 이와 반대다. 길에 면하여 지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층부가 상가가 되고 결과적으로 가로의 활력에 기여한다. 물론 안팎으로 조경이 잘된 단지형 아파트 역시 거리를 좋게 만들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업가로의 중요성은 도시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항목이다. 무엇보다 거리형 아파트는 고립되지 않은 도시의 일원으로 작동한다.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이 바로 위에 거주함으로써 직주근접의 삶을 실현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85~86쪽)한국 공동주거의 연보에는 건축가의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난 건축가의 작업 중에 공동주거, 특히 아파트가 별로 없다. [……] 공동주거는 건축계에서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작업 조건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건축가의 의지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강한 소위 작가형 건축가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주제다. 그러나 공동주거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건축 유형임은 부인할 수 없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이 관심을 두고 노력할 필요와 명분이 충분하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상황은 예외적이다. 국가 주도로 이루어진 고도성장기에 건축가들이 주체적으로 자기의 사상과 철학을 펼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근본적으로 농경문화의 소산일 ‘땅’의 문화에 익숙한 한국 건축계가 도시라는 개념을 전제로 삼는 공동주거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 저항이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공동주거는 거대 조직에서 일하는 익명의 건축가가 맡아 하는 작업으로 굳어졌다. 시민들로서는 충분한 다양성을 경험할 기회를 얻지 못했고 자연히 대규모 단지가 지배적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175쪽)가능한 높은 가격에 땅을 팔고 정든 동네를 떠나 근사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방법이다. 물론 여유가 있으면 그 자리에 남들처럼 다세대나 다가구를 짓고 세를 놓는 방법도 있다.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니 동네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동네에서 살지도 않고, 그 동네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지도 않으며, 선거철 지역구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즉 부재지주(不在地主)가 된다. 가깝게 살지 않으니 세입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 필요도 없다. 동네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월세만 꼬박꼬박 나오면 된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꿈꾸는 흔한 부동산 성공 신화다. (193쪽)직주근접, 옥상마당, 거리형 아파트, 수직마을 …
오래된 건물이 간직한 도시를 살리는 기술과 미덕을 찾아 나선다
『가장 도시적인 삶』의 모든 장은 하나 이상의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 즉 상가주택 또는 상가아파트를 다루고 있다. 모든 글은 정확한 기록, 실증 연구, 실측 자료 등이 매우 빈약한 환경에서 다양한 자료와 방법을 거의 총동원하여 쓰였다.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 구가옥대장 확인은 물론, 연구 논문과 옛날 신문, 국내외 검색 엔진을 수시로 뒤지고, 현장 조사나 주민들과의 인터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제는 사라진 아파트에 실제 거주했던 분으로부터 제보를 받기도 한다. 사뭇 상가아파트 ‘탐정기’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책에 등장하는 도심 속 상가아파트들을 저자는 단지형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고립되지 않고 도시의 일원으로 작동하는 ‘거리형 아파트’라고 이름 붙인다. 우리 건축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상가아파트의 의미와 가치를, 때론 재밌고 신선한 용어로, 때론 낯익은 개념으로 적극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건물의 후면 골목으로 이어지는 출입구를 두거나 각각 철도와 도로에 접한 건물 측면을 다르게 설계한 ‘서소문아파트’, 언덕 지형을 그대로 받아들인 ‘성요셉아파트’, 1층 상가에 인접한 인왕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둔 ‘원일아파트’를 통해 건물이 가로의 연속성과 주변을 헤아리는 태도를 강조한다. ‘삼각아파트’, 세운상가 등 여러 상가아파트가 중정을 두어 환기와 채광뿐 아니라 포근하고 차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낙원빌딩’의 경우 중정이 “마을 광장 역할”을 맡고 있다. ‘금성아파트’와 ‘안산맨숀’에서는 마당 있는 집의 장점까지 살린 ‘옥상마당(또는 옥성텃밭)’을 발견한다. 삼각아파트나 ‘대신아파트’는 거주민의 프라이버시와 외부 이용자의 접근성을 함께 고려하는 세심한 설계의 사례로 꼽힌다. 또한 한 동의 건물이면서 하나의 마을이라 할 만한 규모와 복합성을 수직적으로 구현한 ‘수직마을’의 가능성을 안산맨숀이나 ‘피어선아파트’의 사례에서 짚어낸다. 또는, 전쟁도 이겨낸 한국 최초의 아파트가 도로 확장에 잘려 나가거나, 도로나 하천 위에 지어진 낙원빌딩, ‘유진상가’ 등이 재건축 공식을 적용할 수 없는 탓에 지금껏 살아남은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찰과 발견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상가아파트가 지어지고 힘겹게 세월을 버텨온 과정, 곧 한국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은 상가아파트의 미덕을 설명하고 무지개떡 건축을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구성을 제공한다. 입지, 규모, 복합, 보행자 친화성 등 ‘무지개떡 지수’ 산정의 다섯 가지 평가 항목을 정리했다. 내 주변의 무지개떡 건축을 직접 조사하고 답사하는 방법을 담은 ‘답사 가이드’나 ‘답사 코스’를 표기한 지도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이뿐 아니라, 각 건물의 형태적 특징, 도시와 만나는 방식을 포착한 사진도 무척 다양하다. 특히 수차례에 걸쳐, 맞은편 옥상에 오르고, 주거에 양해를 구하는 등 초상 사진 촬영하듯 공들여 찍은 건물 정면을 보면, 이들을 향한 저자의 애정이 양껏 묻어난다.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의 탐사 여정에 동참하도록, 도시건축에 관한 문턱을 낮추고, 실질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는 건축가의 의지와 태도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으면 주변의 낡고 평범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무지개떡 건축 답사를 가고 싶어진다.결론은 항상 같다. 일단 가서 보고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막상 실물을 대하면 어떤 충실한 자료로도 대체할 수 없는 구체성과 현실성이 밀려온다. “건물이 말을 걸어온다.”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269쪽)서소문아파트가 도시를 대하는 섬세한 태도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7동과 8동 사이다. 여기에는 개구부가 하나 있다. 이 부분의 상가 하나를 희생하고 건물 후면 골목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개설한 것이다. 그 결과 상가의 흐름은 통일로에서 시작되어 서소문아파트 뒷골목으로, 또 경의선 철도변으로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다. 이것은 담장을 두르고 주변 지역과의 차단을 꾀하는 요즘의 단지형 아파트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서소문아파트 특유의 미덕이다. 낡았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요즘 건물들은 이렇게 도시를 읽고 해석하고 그를 몸소 실천하는 저 시대의 기본적 태도, 즉 도시적 예의범절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개발 시대의 실험작, 서소문아파트가 여전히 소중한 이유다. (124~125쪽)이 모든 것은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 속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만들어진 건물 중에는 의문을 자아내는 것들이 있다. 특히 코너 부분을 녹지로 처리하거나 아예 개방해버리는 경우, 상업가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어질 뿐 아니라 도시 블록의 연속성이 완전히 와해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103쪽)특이점은 저층부의 처리다. 지하 1층과 1, 2층이 상가인데 그 윗부분의 주거와 조형적으로 확연히 분리했다. 눈짐작으로도 1미터가 넘는 두꺼운 띠가 안으로 움푹 패었고 에어컨 실외기가 여러 개 올라가 있다. 상가와 주거는 당연히 창문을 내는 방식도 다르기 마련인데, 거기에 더해서 이런 띠가 있기 때문에 한눈에도 위아래 기능이 다른 복합건물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상가아파트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적극적인 조형이다. 심지어 상가 부분은 외벽 색상도 다르다. 이 당시 건물치고는 주상복합건물의 정체성을 상당히 강조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136쪽)이곳[삼각아파트] 설계자는 매우 치밀한 건축가였던 것 같다. 건물의 바닥 레벨을 잘 조절하여 중정 주변의 세대들이 중정 바닥에서 조금 올라와 있도록 계획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중정에서 집 안이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아 주거 공간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이다. (140쪽)흥미로운 점은 이 건물군이 전면의 도로와 후면의 단지를 대하는 태도다. 전면에만 상가가 자리할 것 같으나 뒤로 돌아가보면 단지 쪽으로도 열려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 노선상가아파트가 애초에 어떤 의도로 계획되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엄연히 속해 있는 동시에 일반 시민에게도 열려 있다. 바로 이런 개방성이 이 건물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추억이 자라나게 하는 토양이다. (244쪽)상가아파트들은 거의 예외 없이 평지붕 건물로서 당연히 옥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냥 텅 비워두거나 물건을 쌓아놓는 용도 정도로 쓴다. 생활공간과 인접한 마당으로 계획하거나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안산맨숀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내용은 항공사진으로도 확인이 어렵고 직접 가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올라가보니 안산맨숀은 옥상 전체가 경작지나 다름없었다! 한쪽은 인왕산, 또 다른 한쪽은 안산으로 둘러싸인 공중정원, 아니 공중텃밭이 거기 있었다. 아마도 안산맨숀 주민들은 서울에서 가장 멋진 경작지를 소유했는지도 모른다. 텃밭을 가꾸려고 주말마다 교외를 오가며 길바닥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데 비하면 이 얼마나 도시적이고 친환경적인 해결인가. (163~164쪽)일단 지형의 흐름에 철저하게 순응한 건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고갯길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형과 건물, 그리고 길 사이에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툭하면 대지를 평탄화해서 경사지를 계단으로 만들어버리는 요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93쪽)서소문아파트는 하천 위에, 낙원빌딩은 도로 위에 지어져 둘 다 대지 지분이 없다. 홍제천 위에 세워진 유진상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이라고 할 건축물대장상 대지 면적이 0이다. 대지 지분이 없으니 일반적인 재건축 공식이 적용되기 어려운데, 어쩌면 그 덕에 아직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357쪽)설계자가 누구였든 간에, 이 정도의 대규모 복합건축을 지으면서 당연히 거쳤을 생각의 기록과 흔적은 아쉽게도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커다란 청사진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으리라는 다소 섬뜩한 의혹도 생긴다. 손정목 교수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서 토로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 근대화의 정직한 모습일 것이다. 이론도 계획도 없이 오직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우직하고 성실하게 밀어붙이는 것. 그 결과물 중 상당수는 잊히고, 일부는 와우아파트처럼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또 어떤 것들은 낙원빌딩처럼 지금 봐도 매우 의미 있는 모습으로 살아남았다. ‘어쩌다 모더니즘’이란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314쪽)현실은 항상 불완전하다. 제도는 제도일 뿐 그 영향이 모든 건물에 다 미치지 못하는 탓이다. 오래된 건물의 경우 건축물대장의 여기저기에 공백이 흔히 있다. 설계자, 시공자가 누락된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록만으로 보면 ‘아비어미도 없는’ 건물인 셈이다. 심지어 생일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람으로 치면 천애 고아다. 물론 난리를 많이 겪은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327쪽)1단계는 책에 나와 있는 곳에 가는 것이다. 책의 내용과 자기 경험을 비교해보거나 전혀 엉뚱한 상상을 할 수도 있다. 책의 오류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다 보면 책에 나오지 않은 곳, 남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가야겠다는 의욕이 생긴다. 그것이 2단계다. 3단계는 그 결과로 어떤 기록을 남기는 일이다. 페이스북도 좋고 블로그도 좋다. 어지간한 책보다 이들 온라인 매체의 파급력이 오히려 큰 경우도 있다. 각종 도구가 발달한 요즘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정확하고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기록만은 아니다. 내가 성실히 잘 기록하면 그것이 역사가 된다. (부록, 499쪽)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가장 도시적인 삶 |
저자 |
황두진 |
출판사 |
반비 |
출간일 |
2017-10-27 |
ISBN |
9788983718921 (8983718927) |
쪽수 |
520 |
사이즈 |
144 * 202 * 34 mm /742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