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천세진 장편소설
책 상세소개
이기호(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천세진은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작가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호수와 버섯과 나무에 대해서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웅덩이마다 하나의 문장’이 모여 ‘호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을 기억하려는 노력. 하나의 시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고, 그것이 내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_이기호(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
이 책은 시인이자 이야기꾼인 천세진의 첫 소설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나 미하엘 엔데의 『모모』,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처럼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이야기’로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는 동화 같은 소설이다. 호수마을에 사는 미로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잠겼다가 이야기꾼을 따라 여러 마을을 여행하는 길에서 꽃과 나무, 버섯 등이 품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와 만나고 마침내 눈물호수에 이르러 엄마를 만나는 여정을 따뜻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이야기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온 이야기꾼
어느 날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등장한 ‘미로’. 책도 모르고 글도 모르는 미로는 호수세계에서 왔다고 한다. 한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마을과 이야기를 글이 아닌 말로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존재하는 호수세계.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고 이야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호수세계 사람들에게 이야기꾼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작은 호수마을에 사는 미로는 엄마를 잃고 슬퍼하던 중 그 마을의 하나뿐인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에게 그리움거울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 그리움거울 호수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로는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호수세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루 할아버지와 첫 여행을 떠난다.
미로는 아주 작은 호수도, 가장 보잘것없는 호수도,
구루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가장 신비한 호수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176쪽)
커다란 바오밥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바오밥 호수마을, 무엇이든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두 얼굴 호수마을, 순록을 따라 여행하는 순록 호수마을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사는 호수마을들의 모습이 동화처럼 펼쳐진다.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보존하는 중책을 맡은 이야기꾼에게도 일반 주민들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의 여행을 따라가며 구루 이야기꾼이 미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가겠어요. 그곳에…… 소금기억 호수에……”
잊은지조차 몰랐던 기억을 건드리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미로는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을 찾기 위해 언젠가 소금기억 호수에 꼭 가겠다고 결심한다. 소금기억 호수는 사람들이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기억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찰랑거리는 호수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모든 이야기를 기억할 수는 없기에 바른 이야기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는 구루 이야기꾼의 말은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친 풍요 속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호수세계를 부러워하게 되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는 없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느껴온 결핍을 그곳에서는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에 붙은 너무 많은 말은 무성한 잎들일지도 몰라.” (117쪽)
미로는 안개 속에서 나타나 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다. 호수세계와 우리 세계의 경계를 흐려놓았기에 우리도 언젠가 미로를 만날 수 있고 호수세계에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미로와 호수세계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짙은 안개가 끼면 미로를 떠올려보는 순수함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마음이지 않을까.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로와 구루 이야기꾼의 여행은 선물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1부
1. 어느 사건에 대한 기록
2. 호수세계 이야기
2부
3. 눈물호수가 넘친 날
4. 게으른 이야기꾼
5. 이야기꾼의 여행
6. 여행의 시작
7. 친구가 사는 호수마을
8. 버섯숲
9. 바오밥 호수마을
10. 모래들판의 별호수
11. 두 얼굴 호수마을
12. 반딧불 호수마을
13. 개밥바라기 호수마을
14. 소리 호수마을
15. 그리움거울 호수
16. 소금기억 호수
17. 순록 호수마을
18. 고향 호수
3부
19. 외삼촌의 기록을 덮으며
책속으로
자기는 스무 곳 정도의 큰 호수마을도 아직 다 가보지 못했는데, 65만 명이나 되는 큰 마을은 평생을 살아도 그곳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다. 미로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크기를 이야기의 크기로 생각하는 것에 크게 놀랐다. 한 번도 도시의 크기를 이야기의 크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33쪽)누구나 슬픔을 겪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가혹하게 찾아드는 이치를 이야기꾼은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슬픔도 자주 다니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인지…… (58쪽)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는 일이 갑자기 찾아오지 않으면 서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가 위로해주고, 위로받을 수 있지만, 갑자기 찾아온 슬픔은 쉽게 위로할 수 없어.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도 어쩔 줄 모르고. (74쪽)“사람들은 늘 종류를 나눠. 겉으로 드러난 모습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나면, 그다음에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누려고 하지. 사람만 나누는 게 아니야. 생각도 나누고, 느낌도 나누지. 그렇게 끝없이 나누고 나누어서 같은 모습의 사람들을 찾으려고 그러는 건지, 그냥 사람들을 계속해서 나누고 나누어서 혼자가 되려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야.” (77쪽)“그렇기 때문에 뼈대가 중요한 거야.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어떻게 가지들을 뻗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잎이 모두 떨어진 뒤야. 이야기에 붙은 너무 많은 말은 무성한 잎들일지도 몰라. 이야기꾼들은 이 마을에서 그걸 배우는 거야.” (117쪽)“죽음은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는 거야. 사람도 동물도 마찬가지야. 식물은 열매를 주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잇기 위해서지. 감자도 그렇고, 콩도 그렇지. 사람이 감자나 콩을 먹으면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감자와 콩의 이야기는 사라진다고 믿겠지만, 그렇지 않아. 사람의 생명이 이어지면 사람의 이야기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이어지게 만들어준 것들의 이야기도 함께 이어지는 거야. 콩이 준 걸 먹고 콩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해주는 거지. 동물은 그렇지 않아. 기억이 이야기를 이어준다고 하지만, 기억으로 이어가는 이야기는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야.” (119쪽)“사람의 말은 공기 속을 날아가 다른 사람의 귀에 앉게 되지. 그러고는 신발을 벗고 귓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생각의 문을 두드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야.” (147쪽)“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내보내는 길도 잘 만들어야 해. 사람들은 그 길을 잘 구별하지 못해. 사람들이 모두 선한 길과 악한 길을 잘 구별할 수 있다면,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사라지겠지만, 그건 쉽지 않아.” (161-162쪽)“호수마을들에서 듣는 소리를 이해하게 될 때마다 너도 조금씩 알게 될 거야. 바람이 지나가면서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은 다른 곳을 지나오면서 들었던 소리를 전해주는 거라는 걸 말이야.” (175쪽)“사람들의 기억은 가볍거든. 잔에 담기면 잔 모양이 되고, 책에 담기면 책 모양이 되고, 꽃에 담기면 꽃향기를 품게 되고, 음식에 담기면 음식맛을 갖게 되지. 기억은 상처를 입기도 하고, 썩기도 하지. 온전한 기억은 어느 하나 발견하기 어렵지. 사람들은 그래서 기억을 자꾸 버리게 돼. 온전한 기억만 갖고 싶어하고, 아름답고 향기 나는 기억만 갖고 싶어하지. 그러면 기억은 자꾸 사라지게 돼. 하지만 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기억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야.” (197쪽)지나간 이야기는 지나간 나이로 남겨지지는 않는다고, 열한 살 미로의 여행은 열다섯 살의 미로가 들려준 것이니, 아마 여행도 열다섯 살이 되었을 거라고. 그래서 사람은 자주 이야기를 남겨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많이 남기지 않다가, 나이가 예순 살이 되어서 이야기를 남긴다면, 그 사람의 다섯 살, 스무 살, 마흔 살의 이야기가 예순 살의 이야기에 모두 섞여버리는 거라고 했다. (218쪽)자주 밤길을 걷는다. 밤길을 걷다가, 새소리와 벌레 소리, 바람소리 사이에서 이상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오랫동안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귀뚜라미처럼 소리를 멈추었다. 어느 날 작심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 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잊고 말았는지 조심스럽게 소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이야기들이 만든 세계가 사그라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후에 이야기 벽돌을 만드는 직공이 되기로 했다. 햇살이 좋은 날만 바쁜 게 아니다. 햇살 좋은 날, 비 오는 날, 달이 뜬 날, 달이 뜨지 않은 날에 만든 제각각의 이야기 벽돌들을 사러 오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말」에서)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이야기꾼 미로 |
저자 |
천세진 |
출판사 |
교유서가 |
출간일 |
2021-06-18 |
ISBN |
9791191278477 (1191278476) |
쪽수 |
240 |
사이즈 |
137 * 196 * 24 mm /390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