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정준화 시집
책 상세소개
자연 속에 녹아있는 신의 뜻을 느끼고, 찾아내어 인간의 언어로 치환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은 이러한 능력으로 상당한 지위를 누리기도 하였으나, 모든 자연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에 사는 시인은 외롭고 무능하다.
삶은, 영혼을 맞이하고 가꾸는 과정으로, 거칠고 힘들다. 거친 삶에서 받는 마음의 상처가 영혼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려면, 감싸 안아줄 필요가 있다.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며, 타자의 영혼에 입힌 상처를 보속할 수 있도록 싸 안는 것이 사랑이다
물질계와 영혼계의 관계를 잘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 흔적을 찾아내고 해석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물질계에서 받은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주어진 몫의 영혼을 정갈하게 할 수도 있기에, 이에 시인의 자리가 생긴다.
목차
1 수술실
중간 지대(수술실) 12
수술실 가는 계단 14
스크럽(洗手 Scrub) 16
아득한 길(칼, Scalpel) 18
침입(끌, Osteotome) 20
몸 속 깊이 상아백옥象牙白玉periosteal elevator 22
뼈 굴착(bone drill) 24
재주꾼 혈관 겸자鉗子, Mosquito hemostat 26
압박과 침입(육각 압박나사, Hexagonal compression screw) 28
강요强要, 쇠망치, Hammer 30
야만의 힘(톱, bone saw) 32
물체의 기억(전신 마취) 34
2 수술 기록지
탄생(제왕 절개 수술) 38
꿈 같은 평화(급성 골수염, 대퇴골) 40
곪아 터지는 맹장(급성 화농성 충수염) 42
벽(壁, 무혈성 괴사) 44
걸어야 산다(대퇴 경부 전자간 골절) 46
대퇴 경부 골절 48
대퇴 골두 인공 치환술 50
고관절 인공 관절 전치환술 52
대퇴 전자하부 분쇄 골절 54
대퇴 과상부 분쇄 골절 56
숨통(기관지 절개술) 58
쓰러진 친구 구출하기(슬관절 전방 십자인대 파열) 60
철판 고정 수술(상완골 경부 골절) 62
심지心持, 내부 支持 骨髓鉦, K-Nail 64
틀어진 팔 바로잡기(주관절 내반 변형 교정술) 66
바람난 뼈 달래기(소아 경골 개방성 골절) 68
탈선 선도(경골 및 비골 간부 분쇄 복합 골절) 70
평형 잡기(근위 경골 절골술, 안짱다리 바로잡기) 72
슬개골 골절 74
오금 물 혹(베이커씨 낭종) 76
족관절 골절 78
손목 터널 신경증 80
발 뒤꿈치 뼈 골절 82
지방종 84
팔꿈치 상박 과상부 골절 85
손목 뼈(요골 원위부) 분쇄 골절 86
회복실 88
3 요양 일지
첫눈 92
11월의 비 94
가을 오후 96
잠간暫間만에 98
임종사臨終辭 100
4 물방울
연필 104
대박大雹, 큰 우박 106
호박벌 108
미세먼지 110
기우제祈雨祭,- - 祈詩祭 112
물방울 113
낯 익은 얼굴 115
부끄러움 116
좋은 사이 118
돌아온 호두 119
숲 속 나무 사이로 열린 길 120
맨드라미 122
5 노래로 들려주는 이야기들
안개 속으로 124
해 질 무렵 126
새털 구름 127
붉은 포도주 129
남겨진 어깨의 아픔 131
바람의 초대 132
구름 잡기 134
6 시인의 말(나오며)
시의 자리 138
시인의 자리 149
책속으로
중간 지대(수술실)
그림자 없는 밝음, 바람 없는 공기, 소리 없는 말
의식과 감각과 피를 재우고 안을 밖으로 들어내는
경계 공간境界 空間 외부인 출입 금지, 외부 먼지 침입금지, 외부 생각 틈입 금지
손을 씻고 또 씻으며 생각을 지운다
소독액을 겹쳐 바르며 닦고 또 닦는다
차단복을 입으며 한번 더 외부를 차단한다 필요한 수술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필요 없는 수술을 하는 것이 더 해롭다
몸으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좁고 위험하다 경로를 숙지하여야 한다 들어간 후에 통로를 찾으면 주변을 망가뜨린다 잘못 선택한 진입로는 실패의 원인이다 두터운 통로를 얇고 날카로운 칼로 열고 들어간다 칼날은 아주 예민하고 섬세하여 조금만 무뎌져도 새 날로 바꾸어 붙인다 부드럽게 비질을 하듯이 훑어 쓰기도 하고, 저며내는 방법을 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과감하고 대범하게 직각을 유지한다 박리하기 좋은 조직 사이로는 손가락을 쓰는 것도 효과적이다 주변에 위약한 혈관 신경들은 보지 않고도 알아야 한다 뼈나 근막 같이 단단한 조직에 은밀히 붙어가는 것이 안전하다 중요한 출혈을 간과하지 않도록 치밀하되, 소심해 지지 않도록 한다 미리 계획된 조작 이외의 상황에 말려들지 않도록 냉정함을 유지한다 목적한 곳에 이르면 미리 계획하여 두었던 조작을 신속 과감하게 한다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선책을 강구하여 가급적 빨리 빠져 나오도록 한다 결단이 필요한 때에 미적거리면 다른 문제들이 생긴다 최선을 추구하되 차선을 마련하며 받아들인다 쉽고 간결하게 한다 수술실 가는 계단 말하는 자와 묻는 자가 만나는
수술실은 4층, 건물의 중간층,
은행나무 끝 잎이 떨고 있는 곳
말하는 자는 내려오고
묻는 자는 계단을 오른다 아픔을 묻는 일,
어르고 달래고, 숨기고 피해도 보지만, 피할 수 없을 땐 칼을 뽑는다 계단은 오를수록 가파르고 멀어 지는데, 몸의 구조를 생각하고, 갈 길을 되새기며, 쉽고 빠른 지름길을 구상 하지만, 생각은 단지 생각일 뿐, 계단을 오르는 힘은 근육들, 은행 나무 줄기 같은, 결국은 감당해 내어야 하는 나무 뿌리 같은, 거칠고 질긴 근육에서 배어나는 땀
계단참에 이르러 숨을 고른다 대적對敵하는 칼은 중단세中段勢, 비켜남이 없도록, 밀려남이 없도록, 기세氣勢로 버티며 아픔을 묻고 칼을 잡으면,
모든 생각이 물러난다
[프롤로그]
시는, 물질과 영혼의 경계를 탐색하여,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언어로 구체화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에 시는, 논리 영역 외연을 감당하며, 삶의 가치, 방향 등을 보이려고도 하나, 숨어있는 진실의 아주 작은 일부를 찾아내는 것까지가 고작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내 삶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 모든 사고는, 축적된 개인적 삶 정보의 언어 환원 결과이다. 내 삶 밖의 일들은, 내 사고 능력 밖이다. 내가 나의 삶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어왔던 일들을 곰곰 되씹어 정리해낼 일이다. 나는 개업 의사이다. 의학은 과학 문명의 결과물이나, 다른 사람의 몸을 침범하는 외과의사는 야만적이다. 질병과의 투쟁을 오롯이 혼자 감당 해야 하는 개업의사의 삶은, 이를 버텨내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시를 쓰는 놀이는, 살벌한 개업의로서의 삶을 버텨내기 위한 휴식처이었다.
다른 사람의 몸을 헤집고 들어가던 수술 장면들의 기억들, 수술 기구들에 대한 추억들을 살펴보려 한다. 그 치열하던 기억의 구석에 숨겨져 있는 혼魂을 찾아내어 육화肉化해 보고 싶다.
2020년 겨울에
정준화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수술 기록지 |
저자 |
정준화 |
출판사 |
시와표현 |
출간일 |
2020-12-10 |
ISBN |
9791190943109 (1190943107) |
쪽수 |
151 |
사이즈 |
137 * 218 * 21 mm /338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