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야기 : 별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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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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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인희
  • 지식서재
  • 2021-03-12
  • 9791190266024 (1190266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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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책 상세소개


오늘날의 유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세 이야기 36편을 역사순으로 소개해 주는 인문교양서. 중세는 흔히 암흑시대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중요한 시대였다. 이 시대에 현대 유럽을 위한 수많은 것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중세는 역사의 무대가 유럽 대륙 전체로 확대된 “진정한 유럽 역사의 시작”이자, 이교 신들과의 싸움, 기독교 내분, 교황과 황제, 교황과 교황의 싸움이 펼쳐진 “종교 전쟁의 시대”이며, 종교적 전설과 기적, 기사들의 모험을 둘러싼 “환상의 시대”였다. 또한 중세 말기에는 이성과 인간 중심 사유로 돌아오는 “르네상스” 현상이 나타나고, 중세 끄트머리에 지중해 중심 사유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토대로 세계로 나아간 “제국주의”가 출발하기도 했다. 이 모든 중세의 진짜 면모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서양 인문학 책들을 연구하고 번역하고 강의해 온 저자의 통찰력 있는 시선과 명쾌하고 쉬운 글, 125점의 컬러 도판과 지도와 연표는 중세로 시간 여행을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제1부 중세 초기
01 고대, 찬란한 시대를 만들다
02 중세가 시작되다
03 야만적인 게르만 사람들, 새 주인공으로 등장하다
04 이슬람 세력, 유럽으로 진출하다
05 피핀의 선물, 교황이 영토를 얻다
06 카를 대제의 대관식
07 카를 대제의 시대, 서유럽이 되살아나다
08 〈콘스탄티누스의 선물〉, 교황권의 근거가 된 위조문서
09 약탈자 바이킹, 노르망디에 정착하다
10 카를 대제 이후 1000년까지의 유럽

제2부 중세 전성기
11 노르만 기사들의 정복 이야기 1: 정복자 윌리엄, 잉글랜드 왕이 되다
12 〈바이외의 자수벽걸이〉, 세계 최초의 역사 만화
13 11세기 노르만 기사들의 정복 이야기 2: 시칠리아 왕국
14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 진정한 가톨릭 시대를 열다
15 카노사의 굴욕, 교황과 황제가 성직임명권을 두고 싸우다
16 교황의 가짜 뉴스가 불러온 세계사의 전환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다
17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 왕국이 세워지다
18 순례자들의 보호자, 성전기사단
19 3차 십자군 전쟁, 신앙심과 이기심이 충돌하다
20 4차 십자군 전쟁, 콘스탄티노플이 유린당하다
21 이단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22 음유시인들의 시대와 강력한 여왕 엘레오노르 다키텐
23 『카르미나 부라나』, 떠돌이 수도사들의 노래
24 〈롤랑의 노래〉, 전설이 된 상아 뿔나팔
25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설과 역사
26 크레티앵 드 트루아, 궁정 기사소설을 만들어내다
27 중세 도이치 작가들, 궁정 기사문학 전성기를 열다
28 『에다』, 게르만 신들과 영웅들 이야기

제3부 중세 말기
29 14세기 대재앙, 페스트가 퍼지다
30 백년전쟁과 잔 다르크,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영토 정리
31 무역의 발전과 유럽의 팽창
32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하고 비잔틴 제국이 저물다
33 르네상스의 시작
34 고대가 부활하고 현대적 개인이 등장하다
35 르네상스 미술의 발전
36 에스파냐가 영토를 되찾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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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마르텔의 아들인 피핀(Pippin der J?ngere)은 자기가 실제로는 왕 노릇을 다 하는데도 왕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에 짜증 났다. 그래서 이 점을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유럽의 정신적 지주이던 로마 주교에게 심부름꾼을 보내 물었다. “메로빙 왕들처럼 권한도 없고 무능한 사람들이 ‘왕’이라는 직함을 유지하는 게 옳은 일인가?” 그러자 눈치 빠른 로마 주교가 피핀이 원하는 답을 보내 왔다. “옳지 않다.” 피핀은 귀족회의를 소집하여 그의 답을 전하고, 제대로 된 왕을 선출하자고 제안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그 자신이 왕으로 뽑혔다. 이로써 메로빙 왕가가 힘없이 끝나고 카롤링 왕가가 시작되었다. 따져보면 피핀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왕권을 찬탈한 인물인데, 유럽 종교 지도자인 로마 주교가 재빨리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도덕성이 뒤로 밀리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 피핀은 그에 대한 답례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자처하는 교황에게 땅을 주기로 약속했다(754).
[05 피핀의 선물, 교황이 영토를 얻다]에서“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종족(셀주크)이 그리스도교의 나라(비잔틴 제국)로 침입해서 칼과 강탈과 불로 인구를 줄였습니다. 이 종족은 자기들의 더러운 관행으로 제단을 오염시키고 파괴했어요. 그리스도교도에게 할례를 행하고, 할례의 피를 제단에 묻히거나 세례 함지에 쏟아부었습니다. 사람들을 고문해 죽일 경우에는 그들의 배를 열어 가장 중요한 내장을 잘라내, 그것으로 그들의 몸을 말뚝에 묶거나, 아니면 묶어서 이리저리 끌고 다닌 다음에야 죽이니, 가여운 희생자들은 내장을 모조리 바닥으로 쏟아놓고 엎어지는 겁니다. 침묵보다 말하는 것이 더 큰 해악이 되는, 여자들에 대한 악행이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 교황의 입에서 나온, 동양의 전쟁에 대한 이런 끔찍한 서술과 더불어 역사상 십자군 전쟁은 촉발되었다. 교황이 서술한 구체적 내용은 실은 가짜 뉴스로서 순전히 선동에 지나지 않는 말이었다. 무슬림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오리엔트 지방과 소아시아에서 이교도에게 행한 박해라고 해봐야, 가톨릭교도들이 이교도나 이단에게 자행한 일에 비하면 오히려 더 온건한 편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16 교황의 가짜 뉴스가 불러온 세계사의 전환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다]에서자크 드 몰레는 화형대에서 왕과 교황을 저주하면서, 그들이 한 해도 지나기 전에 신의 심판대에 설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과연 클레멘스 5세 교황은 같은 해 암으로 죽고, 필리프 왕은 사냥 사고로 죽었으며, 왕의 아들들도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필리프 왕이 속했던 카페 왕조는 7년 뒤에 종말을 고한다. 이렇게 자크 드 몰레의 저주가 실현되었다고 전해지며, 이는 중세의 유명한 전설의 하나가 되었다. 성전기사단의 전설적인 보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 성전기사들은 그노시스파로 여겨지고, 또한 다수의 음모설에 연루되었는데, 그런 음모설 중에는 그들의 후예가 프랑스 혁명의 배후 세력이었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 혁명 중에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당하자 프리메이슨 한 명이 헝겊 한 조각에 왕의 피를 묻히고는 “자크 드 몰레, 당신의 원수를 갚았다!”고 외쳤다고 한다.
[18 순례자들의 보호자, 성전기사단]에서전설에 따르면 사도 요한의 형인 야고보는 …… 유대 왕 헤로데 아그리파 1세의 명에 따라 참수형을 받아 죽었다. 그렇게 죽은 시신은 2명의 천사가 노를 젓는 (그러니까 실은 사공이 없는) 배에 태워져서 팔레스티나에서 에스파냐의 갈리시아 해안까지 운반되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대장정이다. 지중해를 횡단하고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대서양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이베리아반도 북부에 도달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노선이지만, 그야 뭐, 천사가 노를 젓는 판이니 별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곳 해안 이리아 플라비아에서 배는 물에 휩쓸리며 육지에 닿았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여러 난관 끝에 시신을 찾아내서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 매장할 수 있었다. …… 이리아 플라비아의 주교는 이렇게 발견된 성유골이 진짜라고 선언했다. 아스투리아스 왕은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 성 야고보(에스파냐어로 산티아고Santiago)를 기리는 교회를 지었다. ‘별 평원(캄푸스 스텔라이campus stellae, 오늘날 ‘콤포스텔라’라는 낱말의 유래)’이라는 곳이었다. 이렇게 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위한 초석이 놓였다.
[25 산티아고 순례길의 전설과 역사]에서중세 말기에 이루어진 작은 기술적 차이들이 합쳐져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게 하고 또 그 이후로 유럽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올라설 수 있게 해주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침반과 대포와 범선이다.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의 튼튼한 성벽을 공격할 때 헝가리의 대포 기술자를 고용한 것을 다음 장에서 보게 된다. 술탄 메흐메트 2세(Mehmet II)가 콘스탄티노플의 점령에 그토록 공을 들인 것은 단순한 정복욕 때문만은 아니고 실용적인 목적도 컸다. 바로 흑해와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려 애쓰는 동안 유럽의 무역 중심지들은 차츰 대서양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중세에 번영을 누린 독일(신성로마 제국)의 아우크스부르크와 뉘른베르크 등은 무역 요충지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지중해 무역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의 하나다. 하지만 15세기가 되면서 새로운 기술로 범선과 나침반을 개선한 유럽인들은 더는 과거의 무역로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비싼 운송료를 감당해야 하는 육로 대신 해상 수송로를 찾아낸 것이다. 거대한 범선은 거의 모든 물품을 바닷길로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이제 지중해에서 지브롤터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이용하게 되었다.
[31 무역의 발전과 유럽의 팽창]에서
출판사 서평
중세, 고대와 근현대를 이어주다
중세는 흔히 ‘위대한 고대’와 ‘위대한 근현대’의 중간에 낀 “별 볼 일 없는” 시대로 여겨져 왔다. 이 시대에 과거의 찬란했던 고대 문화가 북방 야만인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동시에 현대 유럽을 위한 수많은 사회적 장치와 사유, 가치관 등이 형성되기도 했다. 암흑시대처럼 보이는 중세는 사실 매우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놀랍고 중요한 시대였다.
중세 초에 유럽의 새 주인공으로 등장한 야만적인 북방 게르만 사람들이 따뜻한 남부 유럽으로 내려와 과거의 로마 제국 영토를 제멋대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그리스 로마 정신을 계승했으며, 기독교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유럽 정신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계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정신과 기독교, 이 두 가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유럽 문화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유럽 대륙 전체에 걸친 “진정한 유럽 역사”가 시작되다
중세는 또한 진짜 유럽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주요 무대는 유럽의 남부, 소아시아반도, 레반트 지역(아시아), 북부 아프리카 등 일부 지역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중세가 시작되면 북쪽과 동쪽에서 게르만족들이 몰려와 서로마 제국 영토에 프랑크 왕국 등을 세우고,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이킹 세력들도 밀려 들어온다. 유럽 대륙 전체가 역사의 무대가 되고 남유럽 사람들만이 아닌 북유럽 사람들, 곧 게르만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제야 본격적인 전체 유럽의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프랑크 왕국을 세운 게르만족(프랑크족) 수장 클로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프랑크 왕국의 궁내대신이던 카를 마르텔의 아들 피핀이 “아무것도 안 하는 (메로빙) 왕들”의 왕좌를 빼앗아 새 왕조인 카롤링 왕조를 세우고, 약탈자 바이킹이 해적질을 일삼다가 프랑스 북부 해안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노르만 기사가 되는 등 흥미진진한 일화가 전개된다. 각자의 신앙과 이익이 충돌하는 “전쟁의 시대”가 펼쳐지다
고대와 중세를 이어준 핵심 이념인 기독교는 7세기 아랍 세계에서 출발한 이슬람교와 충돌했다. 양측 사이의 갈등은 11세기 말의 십자군 전쟁으로 이어졌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십자군 전쟁을 부추기기 위해 이슬람 세력의 박해를 지나치게 과장한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이후 십자군 전쟁은 총 8차까지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신앙심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변질되었다. 1차 십자군 때는 일부 지휘자들이 본대를 이탈해 레반트(소아시아) 지역에다 자기 영토를 만들었고, 식량난에 시달리던 십자군이 이교도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3차 십자군 때는 잉글랜드의 “사자심장 왕” 리처드가 귀국길에 같은 기독교 세력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십자군 전쟁에서 함께 싸운 동지였던 그들 사이에 의리라곤 없었다. 4차 십자군 때는 성지 회복은커녕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고 약탈했다. 기독교 수호를 위해 모여들였다는 십자군의 명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때 500년 이상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막아오던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같은 기독교도에 의해 회복할 길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싸움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동로마 제국의 동방 기독교(=그리스정교)와 서로마 제국의 서방 기독교(=로마가톨릭) 사이에는 정통성 논쟁이 벌어졌다. 교황과 황제 사이의 우위 다툼도 있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교황이 살아있는데도 새 교황(=대립교황)을 선출하고, 아비뇽 유수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교황이 3명에 이르는 등 중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종교 전쟁들이 자주 벌어졌다.종교적 전설과 기적, 기사들의 모험을 둘러싼 “환상의 시대”가 열리다
11~13세기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온갖 모험 이야기를 낳았는데,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12세기 중반부터 기사(knight)문학이 꽃피게 된다. 신앙의 시대인 중세에는 수많은 종교적 전설들과 성인(聖人) 열전, 기적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이런 미신과 상상력이 문학작품에 반영되면서 판타지(환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중세인들은 태어난 지역에서 살다가 그 인근에서 죽었다. 정교한 지도도 없던 시절에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졌다는 온갖 싸움 이야기, 승리와 패배 이야기, 싸움에서 이기고 그곳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어떤 영웅이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거듭 전해졌다. 사람들은 가본 적도 없는 나라의 악당이나 적들을 상상하면서 용이나 사람 잡아먹는 늑대 등 온갖 기묘한 괴수들까지 꾸며내서 이야기에 덧붙였다. 덕분에 중세 기사 이야기들은 판타지 요소를 띠게 되었다.
중세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단인 성전기사단은 성지를 방어하고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거기에 순례자들을 위한 은행 업무, 대부업까지 손대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 심지어 무슬림들도 성전기사단의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였다. 재력과 은행에 군사력까지 갖춘 기사단은 각 나라 왕들의 위협이 되었고, 결국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교황 클레멘스 5세에 의해 해체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성전기사단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영화화됨) 등 대중문화에서 음모론과 관련해 등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성전기사단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고 또 볼 수 있다. 르네상스,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다
중세 말기에는 페스트(흑사병)의 확산, 콘스탄티노플의 몰락 등 말기적 증상들이 나타난다. 동시에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들도 엿보이는데, 대표적인 예가 르네상스 현상이다. 사람들은 환상과 미신에서 벗어나 이성과 현실로 돌아와서 합리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는데(합리화 과정), 그 과정에서 안내자 역할을 한 것이 고대의 사유와 유산이다. 이 시기에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새롭게 발굴되었다.
르네상스와 그 직후에는 수많은 발명과 기술적 혁신과 과학적 사유들이 나타났다. 15세기 중엽에 등장한 구텐베르크 인쇄술은 성서를 널리 보급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고 종교개혁을 이끌었다. 유럽은 중세가 끝나는 시점에서 이러한 성과들을 기반으로 지중해에서 벗어나 대서양을 토대로 세계로 눈길을 돌렸다. 제국주의가 출발한 것이다. 이후 유럽인들이 주도하는 전 세계의 변화는 엄청나게 빠르고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었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중세 이야기
저자 안인희
출판사 지식서재
출간일 2021-03-12
ISBN 9791190266024 (1190266024)
쪽수 400
사이즈 151 * 224 * 26 mm /59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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