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 별밤서재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요약정보 및 구매

상품 선택옵션 0 개, 추가옵션 0 개

  • 김종훈
  • 이케이북
  • 2020-08-25
  • 9791186222317 (118622231X)

15,500

13,950(10% 할인)

포인트
690p
배송비
무료배송
포인트 정책 설명문 닫기

00포인트

포인트 정책 설명문 출력

관심상품

선택된 옵션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관련도서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상품 정보

별밤서재 사은품
책 상세소개
◎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ㆍ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까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들어 있는 현충원 역사 기행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 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2009년 11월 초, 민족문제연구소는 4400여 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한다. 이 중 국립서울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5명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 34명이 있다. 이 책에서는 2009년 반민규명위가 발표한 1000여 명의 ‘국가공인’ 친일파에 들지는 않지만,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비공인 친일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친일파와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국가공인과 비공인 친일파 발밑에 잠들게 된 독립운동가, 즉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이 잠든 5곳(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국립4ㆍ19민주묘지, 수유리묘역, 효창공원)의 위치를 지도에 그렸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목차
ㆍ이 책을 읽기 위해

1부 국립서울현충원
ㆍ한눈에 보는 국립서울현충원
ㆍ추천 답사
ㆍ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ㆍ서울국립현충원 친일파 묘역 위치(총 35명)
ㆍ임시정부요인묘역
ㆍ무후선열제단
ㆍ독립유공자들이 잠든 곳

1장 국립서울현충원의 국가공인 친일파
01 김백일 _독립군 때려잡던 친일파, 어떻게 현충원에 묻혔나?
02 신응균 _대한민국 포병의 아버지가 감추고 싶은 이력 하나
03 신태영 _“야스쿠니가 목표”라고 외쳤던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과거
04 이응준 _“천황에게 충성을” 외치던 대한민국 국군의 아버지
05 이종찬 _3대가 친일했지만 묘비엔 ‘명문 혈통’으로 언급된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06 백낙준 _해방 후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이 된 연세대 총장의 과거
07 김홍준 _친일파 선정 발표 뒤 현충원에 재안장된 간도특설대원

2장 국립서울현충원에 잠든 비공인 친일파들
01 박정희 _만주군 박정희가 남긴 기록 “멸사봉공, 견마지로”
02 정일권 _대통령 빼고 모든 걸 다 이룬 만주군 출신 최장수 총리
03 안익태 _《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작곡가의 노래는 어떻게 애국가가 됐나
04 채병덕 _무능했던 일본군 출신 육군참모총장의 최후
05 임충식 _대한민국 육군 대장이 된 간도특설대 병사

3장 친일파 아래 잠든 국립서울현충원의 지사들
01 신규식 _그를 ‘임시정부의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 이유
02 이상룡 _조선의 선비들이 이상룡과 같았다면, 역사는 어찌됐을까?
03 지청천 _친일파 이응준 발아래 잠든 광복군 사령관의 비애
04 김성숙 _이제는 제대로 알려져야 할 독립운동가 출신 민주주의자
05 김익상 _조선 최고의 상남자, 그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06 이재명 _이완용을 찌른 칼이 한 치만 더 깊었다면
07 나석주 _“나는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08 박열 _일본 감옥에서 외친 말, “나는 조선인이로소이다”
09 김상옥 _1:1000, 종로를 흔든 그날의 총성
10 박재혁 _‘가기허다수익’이면 ‘불가기재견군안’
11 이종암 _끝까지 살아남았다면, 그는 현충원에 잠들었을까?
12 조명하 _‘로즈데이’를 기념하는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 사람
13 남자현 _영화 〈암살〉의 전지현은 정말로 남자현을 모티브로 했을까?


2부 국립대전현충원
ㆍ한눈에 보는 대전현충원
ㆍ추천 답사
국립대전현충원의 역사
국립대전현충원 친일파 묘역 위치(총 34명)

1장 국립대전현충원의 국가공인 친일파
01 신현준 _‘광복군’으로 신분 바꾼 해병대의 아버지
02 김석범 _‘창씨개명’만 하지 않은 해병대 사령관의 비밀
03 송석하 _“간도특설대 창설에 가장 큰 영향 끼친 인물”
04 백홍석 _친일파 백홍석이 묘비에 남긴 말 “한 점 부끄럼이 없다”
05 백선엽 _한국전쟁 ‘영웅’의 감추고 싶은 과거 기록

2장 국립대전현충원에 잠든 비공인 친일파들
01 김창룡 _김구 암살의 배후는 어떻게 현충원에 잠들었나?
02 방원철 _친일과 항일, 남과 북을 모두 ‘걸은’ 유일한 인물
03 황장엽 _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이 현충원에 잠든 이유

3장 친일파 아래 잠든 국립대전현충원의 지사들
01 곽낙원과 김인 _독립운동가 ‘김구’를 만든 사람들
02 정정화 _임정의 어머니, 그녀가 해방 후 정치를 하지 않은 이유
03 조문기 _우리가 놓쳤던 ‘마지막 레지스탕스’의 비극


3부 국립4·19민주묘지와 효창공원
1장 국립4ㆍ19민주묘지
ㆍ한눈에 보는 국립4·19민주묘지
ㆍ추천 답사
01 김경승 _친일파가 국립4ㆍ19민주묘역에 남긴 짙은 흔적
02 국립4ㆍ19민주묘역에 잠든 4ㆍ19혁명 시민 희생자
03 근현대사기념관 _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귀한 장소

2장 수유리묘역
ㆍ한눈에 보는 수유리묘역
ㆍ추천 답사
01 김창숙 _조선의 마지막 선비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
02 무후광복군과 이시영 _누군가는 기억해야 할 애국지사들
03 이준 _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갔건만
04 신익희 _그가 살았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변했을까?
05 여운형 _그날 혜화동로터리에서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면

3장 효창공원
ㆍ한눈에 보는 효창공원
ㆍ추천 답사
01 효창공원 묘역에 잠든 애국지사들
02 백범김구기념관과 의열사
03 안중근 _효창원에 마련된 가묘
04 차리석 _임시정부의 버팀목

ㆍ에필로그
ㆍ참고문헌
책속으로
(p. 31)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 김백일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김찬규(본명)는 만주국 초기의 장교 양성 기관인 펑톈군관학교에서 수학했다. 견습 기간을 마치고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인 1938년 12월 젠다오성 일대 항일무장세력 탄압을 목적으로 설립된 간도특설대의 창설 요원에 선발되었다. 대위 진급 후 특설대 제1련의 연장(중대장)을 맡아 휘하 조선인 장병들을 거느리고 젠다오성 일대의 동북항일연군을 포함한 항일무장부대를 공격했다. 1944년부터는 러허성 및 허베이성 일대로 이동해 팔로군 ‘토벌’과 민간인 탄압에도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p. 79) 쿠데타 일으킨 만주군 출신 장군. 1960년 4ㆍ19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제2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을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한다. 정변 직후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이 됐고, 계엄부사령관과 계엄사무소장,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거쳐 7월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취임한다. 1961년 8월에 육군 중장으로 진급하고 3개월 뒤인 11월에 별 네 개를 단 육군 대장이 됐다. 이때부터 육군 대장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과 내각 수반을 겸했다.
박정희는 5ㆍ16군사정변 직후인 5월 19일 〈민족일보〉를 폐간하고 발행인이었던 조용수사장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용수 사장에 대한 탄원이 이어졌지만 박정희 정권은 같은 해 12월 22일 사형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전국 916개 언론사 가운데 일간지 39개(중앙일간지 15개), 일간통신 11개, 주간지 31개만 남기고 모두 폐간당했다.(p. 120) 1921년 9월 10일께, 베이징을 떠난 김익상은 신의주를 거쳐 1921년 9월 11일 서울에 도착한다. 동생 김준상의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12일 일본 전기수리공 차림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로 갔다. 오전 10시경 청사로 들어가 2층 비서과에 폭탄을 던지고, 이어 회계과에 폭탄을 던졌다. 불행히도 비서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계과에 던진 폭탄은 폭발했다.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리는 말도 안 되는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김익상의 놀라운 기지가 발휘된다. 전기수리공으로 위장한 김익상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일본어로 ‘피하시오’를 외치며 조선총독부 청사를 빠져나왔다. 이후 전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며 몸을 피했다. 목수로 위장해 평양을 거쳐 다시 자신이 왔던 길을 되짚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날이 1927년 9월 17일. 베이징을 떠난 지 딱 일주일 만이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당시까지만 해도 조선총독부는 광화문이 아닌 남산 자락에 있었다는 것이다. 김익상의 의거 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 이전을 준비했고,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새로이 올렸다. 1926년의 일이다. 1996년 김영삼 정권이 완전 철거할 때까지 무려 조선총독부 건물은 70년을 경복궁과 광화문을 잇는 맥을 끊고 있었다.(p. 146) 타이중에서 일본인 이케다가 경영하는 차 농장 등에서 일하며 기회를 엿보던 조명하는 당시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이던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가 일본군에 검열을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조명하는 그날부터 거사를 준비한다. 여기서부터 무협지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조명하는 확실한 성공을 위해 중국인에게 비도를 배워 연마한다. 비도, 말 그대로 칼을 던져 상대를 해하는 방식이다.
1928년 5월 14일, 타이중시 도서관 앞, 환영 인파 속에 일왕의 장인이었던 구니노미야가 등장했다. 구니노미야를 확인한 조명하는 품 안에서 비도 한 자루를 꺼내 망설임 없이 던졌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비도는 구니노미야의 목을 스쳐 운전자에게 박혔다. 하지만 조명하는 애석해하지 않았다. 그는 의거 성공을 위해 미리 칼에 독을 발라뒀다. 거사 후 조명하는 중국 군중을 향해 “당신들은 놀라지 말라. 나는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일제 군경은 조명하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후 조명하는 타이베이로 압송돼 사형선고를 받고 5개월 뒤인 1928년 10월 10일 순국했다. 그렇다면 황족이었던 구니노미야는 어찌됐을까? 조명하의 예상대로 구니노미야는 패혈증에 걸려 이듬해 1월에 사망했다. 패혈증은 인체에 세균이 침입해 죽는 병이다. 조명하 의사의 거사가 죽음의 직접적인 이유가 된 것이다.(p. 262) 독립운동의 중심에 선 김창숙. 3ㆍ1운동 후 중국으로 망명한 김창숙은 임정에서 이동녕과 이시영, 신규식 등 지사들을 만나 임시의정원을 조직한다. 1919년 4월 30일부터 열린 제4차 회의에서 김창숙은 김정묵 등과 함께 의정원 경상도의원으로 선출됐다. 5차 회의에서 김창숙은 교통위원이자 의정원 부의장직에도 당선됐다. 당시 의정원 회의가 진행됐던 곳이 중국 상하이 진선푸루, 지금의 루이진얼루라는 거리다. 아무런 표식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장소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이미 유학자로서 크게 이름을 떨친 김창숙은 중국의 국부 쑨원 등과 도 공조해 한ㆍ중 공동 항일운동을 추진했다. 훗날 김창숙의 행보가 의열 투쟁까지 이어진 것을 고려하면 위기의 순간 대쪽 같은 선비의 지조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게 한다.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한국독립후원회도 당시 김창숙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출판사 서평
◇ 현충원에서 만나는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와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
‘충렬을 높이 드러냄. 또는 그 충렬.’ 국어사전에서 현충(顯忠)을 정의한 말이다. 충렬(忠烈)의 사전적 의미는 ‘충성스러운 열사’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가 함께 잠들어 있는 우리나라의 현충원은 현재까지도 우리 역사상 가장 이상한 동거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불린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이 2020년 7월, 논란 속에 국립대전현충원 장군제2묘역에 안장됐다.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생애와 업적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바로 알아야’ 할 우리 역사를 다시 기억해내고 기록한다. 그리고 국가공인 친일파와 비공인 친일파의 행적과 좇아서 ‘바로잡아야’ 할 우리 역사를 짚어낸다. 더불어 항일과 친일을 기억하는 공간이 달라야 하는 이유를 통해서 우리의 실천적 지혜를 모으고, 항일과 친일의 경계를 짓는다. 현충원이 독립운동가에게는 항일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장소로, 친일파에게는 책임을 ‘묻을’ 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차이와 사이를 구분하고 하나씩 바꿔가는 일이 우리 후손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은 국립서울현충원, 국립대전현충원, 그리고 국립4ㆍ19민주묘지과 수유리묘역과 효창공원을 총 3부로 나눠 설명한다. 국립묘지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고, 누가 잠들었는지 알 수 있도록 각각의 국립묘지를 지도 위에 그려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역사를 풀어냈다.
1부 국립서울현충원에서는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 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외에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비공인 친일파 5인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등이 있다.
제2부는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선엽의 행적을 좇는다. 국립대전현충원은 계룡산 줄기 따라 뻗은 국가공인친일파의 무덤들 아래 독립운동하다 생을 마감한 지사들의 묘가 펼쳐져 있다.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뤘다. 서울시 강북구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민주열사와 애국지사의 무덤,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저자 김종훈
출판사 이케이북
출간일 2020-08-25
ISBN 9791186222317 (118622231X)
쪽수 328
사이즈 141 * 211 * 27 mm /445g
배송공지

사용후기

회원리뷰 총 0개

사용후기가 없습니다.

상품문의

등록된 상품문의

0개의 상품문의가 있습니다.

상품문의가 없습니다.

교환/반품

교환 및 반품
[반품/교환방법]
마이페이지> 주문배송조회 > 반품/교환신청 또는 고객센터 (1544-0435)로 문의 바랍니다.

[반품주소]
- 도로명 : (10882) 경기도 파주시 산남로 62-20 (산남동)
- 지번 : (10882) 경기도 파주시 산남동 305-21

[반품/교환가능 기간]
변심반품의 경우 수령 후 14일 이내, 상품의 결함 및 계약내용과 다를 경우 문제점 발견 후 30일 이내

[반품/교환비용]
단순 변심 혹은 구매착오로 인한 반품/교환은 반송료 고객 부담

[반품/교환 불가 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단지 확인을 위한 포장 훼손은 제외)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악세서리 포함)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예) 음반/DVD/비디오,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1)해외주문도서)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 (1) 해외주문도서 : 이용자의 요청에 의한 개인주문상품으로 단순변심 및 착오로 인한 취소/교환/반품 시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고객 부담 (해외주문 반품/취소 수수료 : ①양서-판매정가의 12%, ②일서-판매정가의 7%를 적용)

[상품 품절]
공급사(출판사) 재고 사정에 의해 품절/지연될 수 있으며, 품절 시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이메일과 문자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소비자 피해보상,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됩니다.
- 대금 환불 및 환불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함.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회원로그인

오늘 본 상품

  •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
    항일과 친일의 역사
    13,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