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가 없는 나라 : 별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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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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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희
  • 동아시아
  • 2018-10-24
  • 9788962622478 (896262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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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경계 밖에 선 한반도화교 137년의 기록
책 상세소개
불편한 진실, 반성의 역사

우리가 배척하고 무관심하게 대했던 화교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한 권에 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실패한 나라. 격동의 근현대사를 함께 겪은 우리 이웃 화교, 오랜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사과하며, 20년에 걸친 연구와 조사를 통해 그 정직한 역사와 불편한 진실을 137년 만에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마지막 남은 한 쪽의 공백을 겨우 메웠습니다. 뙤놈, 짱깨 또는 짱꼴라, 이 부끄러운 언어들. 어원은 있으나(본문 72쪽) 차별과 배척만 100년 넘게 내려온 이 혐오의 언어들. 그리고 “밀수업자, 아편쟁이, 원수의 생간을 내어 형님과 한점” (오정희 『중국인거리』) 한다는 이민족에 대한 무서운 프레임. 이 말은 세계에 4,000~5,000만이 두루 퍼져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스터링 시그레이브 말처럼 “어느 한 국가에 속하지 않은 세계적 규모의 인종 세력”인 화교에 대한 우리의 표현이고 인식이다. 멀게는 정유재란부터, 본격적으로는 임오군란부터 한반도에 정착한 화교는, 1944년 7만 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2만 명 정도 남았다. 137년 동안 우리와 함께 살면서, 근현대의 격동기를 함께 겪었다. 대다수가 산동성(山東省, 산둥성) 출신인 그들은 당시 농부의 임금이 2.8배나 되었던 조선으로 살기 위해 건너왔다. 삶에 억척스럽고 재주가 좋은 이들은 중화요리점과 이발소·양복점의 삼도업(三刀業)을 비롯한 주단포목점, 주물공장과 양말제조, 그리고 채소 재배에 능력을 발휘하며 근대 초기 조선경제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건축 기능공도 뛰어나서 서울의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등의 건축물에도 숙련된 그들의 노동력의 공이 컸다. 우리와 함께 격동의 근현대사를 같이 살았다. 일본의 조선 강점기를 함께 겪었고 6.25 민족전쟁의 와중에 끼어 남과 북이 갈라지고 이념이 충돌하는 혼란도 함께했다. 조선인의 혐오와 일제의 방조에 의한 ‘만보산사건’을 비롯한 두 차례 화교배척사건에 200명이 넘게 숨지는 참화를 겪기도 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4명이 옥사하는 등 항일운동도 같이 했다. 북한 화교의 남한 이주도 같이 겪었다. 대다수가 산동반도(山東半島, 산둥반도) 출신이지만 해방 후 대만 국적으로 살다가 지금은 중국과의 이중국적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상징적으로 서울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에 지금은 오성홍기가 걸려 있지만, 100년 동안에 5번 국기가 바뀌어 걸렸다. 참으로 기구한 질곡의 현대사를 살아왔다. 아울러 우리가 현재까지 자행한 차별과 배척 역시 엄연히 기록하고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의 재일동포 법적 지위 문제로 많은 요구를 했지만, 우리 스스로 화교의 법적 지위를 위해 논의하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한 적이 거의 없다. 지금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에 비하면, 화교의 법적 지위는 문명국가로서는 부끄러울 정도이다. 상업용 토지 50평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는 일제강점기의 외국인토지법을 1961년 다시 공표해 재산상의 불이익을 주었고(1999년에 철폐) 거주 자격과 영주권, 참정권 문제는 미개한 수준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도 대만인도 중국인도 아닌 ‘나라 없는 난민’이 되었다. 21세기 들어 조선족을 중심으로 중국의 노동력이 급속도로 유입되어 2015년 대림동에만 3만여 명 정도가 정착해 있다. 이를 ‘신(新)화교’라 부르는데, 더욱더 늘어날 것이고 동남아를 비롯한 이민족의 유입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다민족 국가, 다양성의 시대에 살면서 이들과 이웃으로 살아가기 위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역사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거울이듯이, 지난 137년간 화교와 우리 삶을 담은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에 공백으로 남아있던 마지막 남은 한쪽을 채워준 역작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말해주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목차
一 한반도화교는 언제, 어디에서 왔을까?
화교가 ‘오무장공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까닭
청국 조계에서 인천차이나타운으로
중국인이 조선에 이주한 이유
한반도화교의 인구 추이 (1883~2015)

二 한국식 중화요리를 창조하다!
짜장면의 한국화, 그리고 세계화
화교 중화요리점의 비애
명동 고급 중화요리점 ‘아서원’의 비화

三 삼도업(三刀業), 가위와 면도, 식칼 기술로 이룬 경제
상해에서 시작된 첨단 패션의 화교 양복점
싸고 서비스가 좋은 화교 이발소

四 화교가 주단포목상점을 석권한 이유
비단장수 ‘왕서방’의 마지막 후예
화교 주단포목상점의 전성기
조선총독부의 고관세 부과로 쇠퇴의 길을 걷다

五 솥과 양말 제조에 두각을 나타내다
솥 제작의 달인, 주물업 시장을 장악하다
화교 양말제조의 중심지, 신의주

六 종교건축을 도맡아 시공한 화교 건축회사와 기술자
명동성당 시공을 주도한 화교 건축기술자
노동시장 판도를 바꾼 화공

七 화교 농민, 채소재배의 달인이 되다
인천 최초의 채소시장을 열다
채소재배의 경쟁력은?
화농의 쇠퇴, 사라진 ‘왕서방’들

八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한 북한화교
꾸준하게 채소재배를 해온 북한화교
북한에도 짜장면이 있다!
북·중 무역을 주무르는 화교 무역상

九 한국의 대표 차이나타운: 인천 vs 대림
노(老)화교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도약
신(新)화교 차이나타운의 탄생과 급속한 발전

十 화교 사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동향회관’의 탄탄한 조직력
화교사회를 결집하는 ‘중화회관’과 ‘중화상회’
화교협회, 교민협회, 그리고 북한의 화교연합회
재이주한 지역에서 한화(韓華)의 정체성으로 뭉치다

十一 화교학교의 교육 흐름
화교학교 설립
교동회 중심의 화교학교 운영
중국 정부에 흔들리는 화교의 교육과정
사라져 가는 한국의 화교학교
북한정부에 좌지우지되는 북한의 화교학교

十二 민간신앙과 종교 생활
거선당, 의선당 그리고 달마불교회
107년 역사의 화교 교회

十三 친일과 항일 그리고 중국과 대만 사이
중화민국 시기부터 생겨난 조선화교의 민족의식
경성총영사관 국기 교체사건
범한생 총영사의 친일 활동
격렬하게 펼쳐진 조선화교의 항일활동
국민당과 공산당,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十四 화교배척사건과 차별의 역사
두 차례의 화교 배척사건
평양사건의 피해가 큰 이유
한국화교에 대한 차별
나라 없는 난민

十五 조선족 신(新)화교와 한족 신(新)화교 사회
한족 신(新)화교 사회단체
재한조선족 신(新)화교 사회단체
책속으로
화교 중화요리점의 역사는 한국 중화요리의 역사와 겹치는 것이 많다. 1880년대 서울과 인천에서 시작된 중화요리점은 급속하게 발전한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이주해 온 화교가 주요한 고객이었지만 점차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 이들 중화요리점은 북경요리와 광동요리 등 고급 요리를 파는 곳으로 고급 요정 역할도 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대회가 비밀리에 열린 곳은 아서원이고, 나석주가 서울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하기 위해 화교로 가장하고 식사를 한 곳은 공화춘이었다. 1940년 소파 방정환의 전집 출판기념회가 개최된 곳은 열빈루였다. 화교 중화요리점은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무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41~42쪽, 제2장 「한국식 중화요리를 창조하다!」 중에서서울시 중구 을지로입구에 세워져 있는 36층의 롯데호텔은 롯데백화점과 같이 내외국인에게 인기가 있는 명소이다. 롯데호텔의 부지 가운데 을지로1가 181-4번지와 181-5번지의 부지는 1974년 4월 이전까지 화교가 경영하는 고급 중화요리점 아서원(雅?園)이 자리한 곳이었다.그런데 1969년 2월 서광빈의 무남독녀인 서○○가 롯데 재벌에 아서원을 6,000만 원에 매각하면서 5년간에 걸친 아서원 소송사건이 벌어졌다. (…) 아서원 주주 측과 한국화교 사회는 대법원의 판결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은 롯데라는 막강한 경제력을 등에 업은 재벌과의 싸움에서 돈 때문에 패소했으며, 화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판결과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아서원 주주 측의 패소는 한국에서 화교가 살아갈 희망을 빼앗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의 3대 중화요리점이었던 태화관(泰和館)과 대관원(大觀園)도 아서원에 뒤이어 문을 닫았다.
/49~52쪽, 제2장 「한국식 중화요리를 창조하다!」 중에서벽돌제조와 조적의 기술을 가진 일본인 건축기술자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화교 건축회사와 화공이 그들보다 더 많이 채용 및 동원된 데는 그들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미국 남장로회의 스와인하트 선교사는 광주와 순천 지역의 개신교 관련 건축물의 대부분을 설계한 인물이다. 그는 15년간 함께 화교 건축회사와 공사한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장점을 세 가지로 소개했다. 첫째, 직공의 선택과 재료의 사용에서부터 완성까지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고 실행력이 높다는 점. 둘째, 건축 자재를 스스로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도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 셋째, 미국의 일반적인 견실한 건축회사의 활동과 비교적 유사하다는 점.
/89쪽, 제6장 「종교건축을 도맡아 시공한 화교 건축회사와 기술자」 중에서서울 명동의 중국대사관의 정원에는 국기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청국이 1883년 이곳에 한성상무공서를 설립한 후에는 청국의 국기인 황룡기가 게양되었다. 1912년 1월 중화민국이 수립된 후는 오색기가 게양되었으며, 남경국민정부 수립 후인 1928년 6월에는 청천백일기가 게양되었다. 그런데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7년 12월
28일 청천백일기는 친일 중화민국임시정부의 오색기로 교체되었다.
/182쪽, 제13장 「친일과 항일 그리고 중국과 대만 사이」 중에서화교습격은 9일 전북에 이웃한 전남과 충남으로 확산되었고, 12일에는 충북·황해·평남·경북, 14일에는 서울과 인천에도 발생했다. 전라도, 충청도 그리고 인천 부근의 화교는 인천 지나정으로 피난했고, 인천 화상상회는 이들을 각 주단포목상점과 잡화상점에 수용했다. 지나정은 화교의 집단거주지이고 군중의 습격으로부터 상대적으
로 안전한 곳이었기 때문에 각지에서 피난민이 몰려든 것이다. 피난민의 인원은 약 500여 명에 달했다. 인천은 전국에서 화교의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전국 인적 피해 총인원의 3할, 물적 피해 총액의 약 6할을 차지했다.
이러한 참사는 1931년에 재발했는데 사건의 규모는 1927년 사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조선일보》가 1931년 7월 2일 오후 중국 길림성 장춘 만보산 근처에서 조선인 농민이 벼농사를 짓기 위해 수로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 관헌과 충돌해 조선인 농민이 다수 살상되었다는 호외 신문을 발행했다. 이른바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의 발발이다.
197쪽, 제14장 「화교배척사건과 차별의 역사」 중에서
출판사 서평
화교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우리 근현대의 생활사, 경제사, 사회사, 정치사 『화교가 없는 나라』는 화교의 경제, 생활, 사회, 정치 등 화교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크게 한반도화교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다루는 역사적 시간은 중국인의 한반도 이주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1882년부터 현재까지의 137년간이다.
책은 이러한 의문에 하나하나 답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내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화교는 어떤 분야에서 경제 활동을 펼쳤으며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화교 경제는 왜 쇠퇴했을까? 화교는 어떤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을 영위했을까? 화교와 조선인 및 한국인은 어떤 관계에 있었으며 서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
책은 비단과 주물업 시장 노동자, 건축 노동자, 이발소, 양복점, 중화요리점을 경영하던 기술자들, 그리고 일반 노동자의 삶 등 한반도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았던 화교들의 생활상을 촘촘히 다루었다. 또 화교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 그들의 경제활동을 지탱하고 있는지, 화교 타지에서 개인을 마음과 문화로 이어주는 종교생활도 함께 분석했다.
특히 세계 화교사 중 연구 공백으로 남아 있던 한국화교 뿐 아니라 북한화교도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어 더욱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책을 읽다 보면 ‘한반도화교’를 오롯이 담아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저자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화교에 관한 역사적 내용을 쉽게 풀어썼으며 실제로 화교를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곳곳에 넣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137년 화교의 역사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한반도화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중국 각 정부의 한반도 주재 외교기관 및 외교관 대표의 명단과 한반도화교의 연표를 부록으로 넣었다. 연표를 통해 독자들이 한반도화교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돕고 있다.
우리가 화교 200명 이상을 학살한 ‘만보산사건’을 비롯한
화교에 대한 부끄러운 역사를 아십니까?
한 때 7만 가까웠던 화교가 2만도 남지 않은,
배척과 차별과 혐오의 부끄러운 민낯을 기록합니다. 우리가 재일동포와 관련해 일본의 차별에 분개하면서, 정작 한국은 화교에게 어떻게 대했을까?
역사 시간에서 배운 만보산사건은 중국 당국의 재만 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일제의 조선인과 중국인 이간질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길림성 장춘 만보산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촉발된 1931년 화교배척사건에 있다. 화교 200여 명이 살해되고 화교 경제가 초토화된 이 중요한 사건을 남북한의 근대사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우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사건에 대해 그동안 알든 모르든 무관심하게 대하며 배척해왔고 화교에 대한 핍박은 ‘현재진행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외국인토지법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공포된 법률이었다. 박정희 정부 이후 외국인토지법이 더욱 강화되었고 화교는 줄곧 부동산 소유 제한에 가로막혔다. 이로 인해 화교들의 경제력은 취약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면 약 100여 년간 토지 취득에 제한을 받았던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02년 노화교에게 영주권을 부여했지만 법적 지위는 아직도 매우 취약하다. 한국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동수당은 물론이고 의료, 교육 등 복지혜택은 거의 받을 수 없다.
화교는 단순히 화교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화교 연구 자체가 중국을 분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한반도화교에 대한 역사를 바로 알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화교 사회와의 갈등, 공생의 경험은 앞으로 중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오늘의 다문화 사회를 헤쳐나가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근대 한반도화교사 혹은 동아시아화교사의 필독문헌!
인천대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가
20년간의 연구와 취재 끝에 완성한 ‘한반도화교’ 교양서

이정희 교수는 1999년 대구 영남일보 기자 시절 취재 당시 한 남학생이 “한국인, 정말 싫어요!”라고 외친 것을 목격했다. 이때부터 기자로서 한국사회의 화교에 대한 차별문제와 처한 상황을 한국 사회에 고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화교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20년간을 화교 연구에 힘써왔고 화교 학술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현재는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로 있으며, 중국 칭화대학 화상연구센터의 특별초빙연구원(교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해 한국화교 50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이정희 교수가 지금껏 스쳐 지나간 화교는 100명도 훨씬 넘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책은 현실성 있고 촘촘하게 구성되었고 다양한 시각에서 한반도화교의 역사적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전직 기자답게 청국의 총영사관, 화교협회 회의록, 일본총독부 보고서 등 방대한 자료들도 한데 모으고 조사해 이 책을 출간했다.
책은 비단 한반도뿐 아니라 동시대 동아시아가 하나의 경제권·생활권으로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화교들의 행적을 통해 추적했다. 종종 추상적일 수도 있는 질문들에 동아시아라는 격동기를 살아왔던 화교라는 역사적 행위자를 통해 아주 구체적으로 답하고 있다.
이정희 교수는 화교에 대해 더 이상 배타적인 이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한다. 또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시선으로 화교를 바라보길 원한다. 책에는 화교의 역사뿐 아니라 화교에 대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도 담겨 있다. 이정희 교수는 이 책을 출간하며 자신을 더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었고, 한민족과 한반도의 경제와 사회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유익한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화교가 없는 나라
저자 이정희
출판사 동아시아
출간일 2018-10-24
ISBN 9788962622478 (8962622475)
쪽수 240
사이즈 143 * 205 * 24 mm /33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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