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상세소개
장미와 동백에서 ‘서양 역사와 문명 총서’의 첫 번째 책으로 경남 대학교 이종흡 명예교수의 〈마술, 과학, 인문학〉의 개정판을 출간합니다. 1996년에 출간된 〈마술, 과학, 인문학〉은 짧은 시간 사이에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96년에서 2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다소 낯설 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책의 배경이 된 15-18세기 사이의 유럽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널리 다양한 책으로 다루어진 시대였지만, 역사에 다가가는 접근 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믿는 바’를 확인하는데 머물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술, 과학, 인문학〉에서 다루는 내용은 저자 스스로 밝힌 것과 같이 그리 새로운 내용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과학혁명’과 함께 자연과학이 종교와 인문학, 그리고 더 나아가 ‘오컬트’라고 부르는 마술에 대한 비학 지식과 분리되기 시작했다”는 믿음이 굳건하기 때문입니다. 서구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과학적 합리성’, 그리고 ‘종교와 과학의 분리’가 결정적이었다는 설명이 반복되었고, 과학의 발전으로 대표 되는 ‘근대성’에 대한 찬양과 비판 모두 같은 설명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믿는 바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학문이 반복되면서 이질적인 지식과 믿음은 서로 만나기 위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문송하다’ 혹은 ‘인문학은 대학 밖으로 나가야 한다’ 라는 사회가 왔습니다. 그리 고 다시금 〈마술, 과학, 인문학〉은 지식체계로서 과학담론의 역사를 탐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극 히 ‘비과학적’이라 여겨지는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오컬트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마술의 세계, 그리고 합리성 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종교, 그리고 인문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포괄적인 학문 분야가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합리적 학문, 순수한 지식과 이론’이라는 과학에 대한 신화가 벗겨집니다. 저자는 과학 역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 역시 인간이 지닌 결점을, 인간이 뿌리내린 사회의 다 양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근대 과학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아이작 뉴턴은 그들 스스로 마술에 심취했던 이질적인 그들 자신과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술, 과학, 인문학〉은 ‘고정관념에 뿌리내린 허구적 신화’라는 내러티브로 역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근래의 많은 역사서가 이 내러티브에 뿌리내린 채, 사실 그렇게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들을 반복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제를 한정 지어야 한다’는 말로 대변되는, 역사가 가진 다면성을 쉽게 넘기고 좁은 주제에 집중해야한다는 압박을 떨쳐낸 모습에서 ‘그것이 실제로 어떠했는가?’ 라는 역사학의 오랜, 하지만 끝내 성취할 수 없는 이상이 된 명제를 지향하려는 태도를 읽게 됩니다.
이 책이 가진 이런 매력이 오랜 시간동안 소수의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다시 세상에 빛을 낼 수 있 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내용과 한 권의 책을 만들어간 연구자 한 사람의 지난한 노력 모두에서 우리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삶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만, 어느 한 편에서 특정 학문은 필요가 없다는 주장 역시 쉽게 마주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지식이나 방법에 뿌리를 두어야, 아니면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학문이라는 주장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좀 더 익히기 쉬운,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지식은 ‘시간 내어 취미 삼아 공부해도 상관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합니 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의 역설일까요?
하지만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이라는 이름의 지식은 완전히 다른 세계관에 뿌리를 둔 지식과 믿음 사이에서 논쟁과 상호 참조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그 가운데 ‘과학적’이라는 통념과 동떨어진, 연금술과 마법 같은 신비로움에 대한 경이와 헌신에서 출발한 것도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서 우리는 지식과 삶의 다양성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목차
개정판 서문에 덧붙여
서론
어떤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가?
과학연구의 일반적 문제 / 비학과 과학의 문제 2. 어떻게 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연구방법 / 연구대상의 한정
1부
1장 르네상스 비학의 인식체계
신플라톤주의적-헤르메스주의적 배경
‘태고신학’의 전통 / ‘태고신학’과 헤르메스주의
2. 비학의 인식론
‘두 권의 책’: 서적 신비주의 / ‘마술사’로서의 인간
2장 비학의 상징체계
비학의 언어
자연적 언어의 전통 / ‘아담의 언어’와 상형어
2. 비학의 수사학
창조의 수사학 / 비학적 상징의 수사학
2부
3장 17세기 자연과학에서 비학적 논제의 연속성
‘자연이라는 책’의 해독
종말론, 유토피아, ‘지식=권력’
4장 과학적 담론의 형성
자연지배의 수사학
비학적 ‘지식-권력’의 사회적 정당화 / 지식 전달의 수사학
2. 보편 언어의 계획
이상적 언어에 관한 논의들 / 언어 대 사물
3부
5장 근대 인문학에서 비학적 논제의 연속성
태고적 지혜에 관한 논의들
이교적 지혜 대 기독교적 지혜의 비교 / ‘고대인과 현대인’의 비교
2. 시적 지혜
‘태곳적 지혜’의 심오함과 범속함 / 시적 지혜와 시적 상징
6장 인문학에서 ‘과학적’ 담론의 형성 인문학적 탐구영역의 정립
‘인간이 만든 것’의 진리성에 관한 논의 / ‘베룸-팍툼’의 원리
2. ‘새로운 과학’으로서의 인문학
과학적 담론에 관한 수사학적 성찰 / 언어의 비유적 본성과 창조성
결론
참고문헌
색인
책속으로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신적 이미지, 영웅적 이미지, 인간적 이미지는 각자의 ‘향기로운’ 물줄기 를 유지하면서 현실이라는 넓은 바다로 유입된다. 비학과 자연과학과 인문학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느 하나만이 일방적으로 존재하였던 시대는 없으며, 그 어느 하나가 개인의 정신을 온통 사로잡은 적도 없었다. 신을 잃어버린 시대도, 자연을 잃어 버린 시대도, 인간 자신을 잃어버린 시대도 없었다.” - 5쪽“어떤 이론의 함축이 뒤 시대에 실현되는 진보의 역사를 기술하려면 이론적 ‘선구자’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문제 는 역사가에 의해 미리 결정된 틀에 선구자를 끼워 맞춘다는 데 있다. (중략) 관한 길고도 뜨거운 논쟁의 와중에서 희생당한 장본인은 바로 베이컨과 비코였다. 이와 같은 논쟁에서 그들이 선구적인 천재로 칭송 되었느냐 지적 낙오자로 취급 되었느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론의 진보과정을 재구성하겠다는 연구자의 결정이 그 이론을 만 든 과거의 인물들에게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 15-16쪽“복선적ㆍ 이중적 접근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중적’이라고 해서, 16-17세기에 비학과 과학이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었다던가, 당시의 지식인들이 과학자와 비학자로 철저하게 나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처럼 철저한 구분은, 또 다시 뉴턴을 정 신분열자로 만드느냐, 아니면 두 개의 ‘모순된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느냐는 양자택 일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 28쪽“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의 연원을 아랍 및 비잔틴 전통으로 추정하거나, 중세 스콜라주의로 추적하거나, 라틴 변경 지역으 로 추적해도,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가 ‘태고 신학’의 계보에 편승하여 운반 되고 정당화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 느님의 계시는 특별히 선택된 인간이나 초인간적 존재의 입을 빌어,태곳적의 모든,즉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이교 민족에게 도 주어졌다는 것, 따라서 모든 민족의 태곳적 문헌은 ‘경이로운 지식의 보고’라는 것. 바로 이것이 ‘태고 신학’의 참뜻이다. ‘어 느 지역이든 그곳에 어울리는 신학의 원형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 50쪽“‘태고 신학’이 아주 먼 옛날에 이교민족과 유대민족의 선지자들이 ‘신에 관한 일’에 대해 가지고 있었으리라고 믿어진 ‘심오 한 지혜’ 를 뜻한다면, ‘태고 신학’의 르네상스는 그 지혜 안에서 ‘신사’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그것 을 발견하려는 노력, 그것을 발견하였다는 확신 등을 수반하였을 것이다. 베일에 싸인 창조주의 의지며 권능의 비밀을 훔쳐 보려는 호기심은 중세 내내 죄악시되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호기심의 해방’과 함께 뚜렷한 지적조류를 형성할 수 있었 다.” - 58쪽“비학의 상징적 표현은 이러한 ‘자폐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감각에 효과적인 전달 수단이자 ‘언어의 부족’을 메우는 대안으로 정당화 되기 보다는, 일종의 ‘시험’으로 정당화된다. 상징적 표현이 독자들에게 일으키는 혼란과 혼동은, 비 전의 입문자를 가리기 위한 ‘시험’으로 당연시된다. 신성하고 비밀스러운 지식은 마술사 자신에게만 명료할 뿐 공표될 수 없 는 지식으로 남는다. 진리의 공표는 계속 유예된다. 한마디로, 비학적 유비에 서 ‘감춤과 드러냄’의 수사적 전략은, 지식의 축 적보다는 반복을, 지식의 개선과 진보보다는 손상되지 않은 계승을 의도한다.” - 143-144쪽
출판사 서평
장미와동백은 2022년에 시작한 출판사입니다. 역사와 과학, 예술과 사회에 관한 책을 주로 출간합니다. 젊 은 연구자들의 참여로 편집과 번역, 집필이 이루어지고, 보편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이슈를 선택하는 것보다 우리가 믿고 지향하는 가치를 보편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2022년 출간 예정 도서ㆍ알렉산더 갤러웨이, “연산할 수 있는, 연산할 수 없는”(원서 Uncomputable, Verso, 2021)ㆍ저스틴 조크, “혁명을 위한 수학”(원서 Revolutionary Mathematics, Verso, 2022)ㆍ폴 A. 로스, “역사적 설명의 철학적 구조”(원서 Philosophical ofHistorical Explanati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19)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
마술, 과학, 인문학 |
저자 |
이종흡 |
출판사 |
장미와동백 |
출간일 |
2022-07-15 |
ISBN |
9791197932588 (1197932585) |
쪽수 |
396 |
사이즈 |
150 * 225 m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