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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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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책 상세소개








목차
들어가는 글 8

머리말 5

제1부 일제 강점기 ~ 1950년대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 오늘날 대한민국 도시망의 형성 17
1912년 조선 민사령 공포 만백성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다 22
1945년 미곡 시장 자유화 자유 시장경제로 발돋움하다 28
1949년 농지개혁 신분 차별의 종말을 예고하다 34
1950년 상속세 법 제정 재벌 후계자에게 내려진 특명! 상속세를 줄여라 40
1953년 주한 미군의 주둔 한국의 정치·경제·문화까지 뒤바꾸다 46
1957년 삼성의 공채 제도 시행 인맥이 아닌 실력을 보고 뽑겠습니다 53

제2부 1960년대

1961년 박정희-이병철 면담 재벌의 부정 축재, 처벌이냐 투자냐 63
1961년 은행 국유화 한국 금융이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70
1964년 수출주도 전략 전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만의 경제 전략 77
1964년 베트남 전쟁 파병 목숨 걸고 얻어낸 해외 진출의 기회 83
1965년 한일협정 이 돈의 명목보단 공장부터 짓겠다 90
1967년 GATT 가입 자유로운 무역 거래의 시작 96
1967년 제철소 입지 결정 지역 간 경제 격차가 시작되다 102

제3부 1970년대

1970년 새마을운동 우리 농촌 마을 잘 살아보세! 111
1971년 그린벨트 지정 부동산 투기 문제의 원천 118
1970년 공기업 민영화 한국 재벌 그룹의 형성 125
1972년 기업공개촉진법 한국 재벌 문제의 시작 131
1970년 중화학공업 정책 루이스 전환점을 넘어선 경제 발전 138
1973년 중동 건설 중동 인부의 땀방울로 이룬 경제 발전 144
1973년 현대 vs. 포드 협상 결렬 현대 자동차 세계로 뻗어가다 150
1975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 강남 문화의 시작 157
1977년 부가가치세 도입 세금 부담으로 국민의 반발을 사다 164
1979년 롯데백화점 개장 소비자 중심 사회의 시작 170

제4부 1980년대

1980년 인플레를 잡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179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등장 185
1983년 이병철의 도쿄 선언 삼성 반도체, 세계 일류 산업이 되다 191
1983년 중국민항 불시착 한국 정부의 진심이 중국의 마음을 열다 197
1985년 대졸 여직원 공채 여직원에게 정당한 업무와 임금을! 204
1986년 3저 호황 저금리, 저유가, 저달러로 흑자를 달성하다 210
1987년 민주항쟁 혁명은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 216
1988년 외국인 노동자 유입 한국 경제를 온몸으로 버티는 힘 222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사회에 한국을 알리다 228

제5부 1990년대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다 237
1992년 외국인 주식 구입 허용 주식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242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삼류가 아닌,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라 248
1993년 대우의 세계 경영 한국 경제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하다 254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국민의 예금을 장려하고 금융범죄를 방지하자 260
1997년 IMF 외환위기 한국 경제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 267
1998년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 한국의 규제 패러다임을 바꾸다 274
1998년 리니지 출시 디지털 경제에 충격을 안기다 280
1999년 분양가 상한제 폐지 타워팰리스의 등장 286
1999년 대우 그룹 파산 기업 부채비율이 200%를 넘어선 안 된다 292

제6부 2000년대 이후
2003년 NPT 탈퇴 북한의 핵개발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301
2003년 소버린 사태 한국 재벌 그룹의 민낯이 드러나다 308
2004년 KTX 개통 한반도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다 315
2004년 바다이야기 출시 불법 사행사업이 본격적으로 성행하다 321
2009년 한국의 아이폰 출시 정보통신 정책 자체를 뒤바꾸다 327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원자력 발전의 분기점에 서다 334

참고문헌 341
책속으로
조선 백성의 힘겨운 삶은 외국인의 눈에도 훤히 보였던 걸까.《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쓴 영국의 탐험가이자 여행가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을 여행하면서 조선 백성의 삶에 대해 기록했다. 그는 조선 백성이 무기력한 이유를 양반의 수탈 때문이라고 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봐야 관리가 모두 빼앗아갈 것이 분명하니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25~27쪽, 〈1912년 조선 민사령 공포: 만백성의 사유 재산을 인정하다〉 중에서미국은 자동차 국가였다. 미군이 진주한 국가에서도 커다란 대형 트럭이 오가야 했다. 해방 이후 미군이 본격적으로 주둔하면서부터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생겨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기간에도 군수품과 병력 이동을 위해 도로를 만들었다. 이후 한반도 전역에 미군이 배치되면서, 전국의 도로망이 만들어진다. 이때부터 한국은 자동차 도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서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이 등장하고 관련 분야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도로망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주한 미군은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준 영향이 적지 않다. 당시 미군은 한국에서 트럭을 비롯한 막대한 양의 자동차를 운행했다. 자동차를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정비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런 자동차 정비에 한국 인력이 투입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자동차에 대해서 잘 알고 정비도 잘하는 사람이 많은 국가가 되었다. 한국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다. 이미 자동차에 대해서는 그 어느 개도국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8~49쪽, 〈1953년 주한 미군의 주둔: 한국의 정치·경제·문화를 뒤바꾸다〉 중에서 그때까지는 한국에 지금 기준으로 대기업이라 할 만한 기업이 없었다. 따라서 사장은 직원을 구할 때 친척, 친구, 고향 사람 등 주변의 추천을 받아 채용했다. (…) 지금 시각에서 보면 친족과 친구를 데리고 회사를 운영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가까운 사람 말고는 믿고 채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전쟁 이후 사회가 혼란스럽고 사람들은 서로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믿을만한 건 기존 인맥밖에 없었다. 공채 제도는 더는 가족과 친척, 동네 사람을 채용하지 않고, 실력있는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것이었다.
55쪽, 〈1957년 삼성의 공채 제도 시행: 인맥이 아닌 실력을 보고 뽑겠습니다〉 중에서 1967년 당시 GATT 가입국은 71개국이었다. 한국은 72번째로 가입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71개국이라는 수치가 아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는 이미 모두 GATT에 가입되어 있었다는 현실이다. 한국은 GATT에 가입하기 전에는 미국이나 일본 등 개별적으로 무역 협상을 맺은 국가와만 거래가 가능했다. 일본은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지만, 1965년에 일본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비로소 일본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GATT 가입 이후 71개국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98~99쪽, 〈1967년 GATT가입: 자유로운 무역 거래의 시작〉 중에서 현대아파트는 현대 정주영 회장의 작품이었다. 1960년, 정부는 한강의 홍수 대비, 수위조절을 위해서 춘천에 소양강댐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건축, 건설 관련자를 불러 소양강댐 건설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정주영 회장은 그 계획을 듣고 서울 압구정 주변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다른 건축업자는 소양강댐 건설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정주영 회장은 소양강댐 건설 준비를 하면서 압구정의 땅을 사들인 것이다. 이때까지 압구정 지역은 여름마다 홍수가나면 침수되곤 했다. 그래서 집이나 건물이 들어설 수 없던 지역이었다. 소양강댐을 지으면 압구정 지역은 침수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주택을 지을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아직 강남 개발 초기로, 사람들이 강남을 꺼려 이주를 잘 하려 하지 않았고 아파트가 팔릴지도 의문이었다. 현대는 당시 기준으로 최고급 아파트를 지었다. 그리고 주요 권력층, 사회 인사에게 이 아파트를 싸게 분양했다. 자연스레 부유층이 이 지역에 몰리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압구정과 청담동 지역에서는 소위 부유층을 위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59~160쪽, 〈1975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건설: 강남 문화의 시작〉 중에서 롯데백화점 직원들은 손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라는 환영 인사였다.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매장 직원이 손님에게 이런 식으로 인사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드디어 한국도 공급자 중심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고객 만족이 중요하다는 개념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172쪽, 〈1979년 롯데백화점 개장: 소비자 중심 사회의 시작〉 중에서1960년대 이후 한국은 고성장-고인플레이션 경제였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경제성장을 하다 보니 더는 고성장이 어려웠다. 저성장 사회가 되면 저인플레이션이 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고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진 사회에서 이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김재익이 바로 그 일을 해냈다. 지금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5% 선만 되어도 고물가라고 난리다. 해마다 10%, 20% 이상 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사회에서 이제 5%만 올라도 화들짝 놀라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의 그런 물가 인식은 김재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180~181쪽, 〈1980년 인플레를 잡다: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중에서 장인 정신이 투철한 일본 기업들은 25년짜리를 두고 일부러 수준 낮은 반도체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일본 반도체는 오랜 기간 성능이 유지되는 고급품인 만큼 가격도 비쌌다. 하지만 PC 업계에 그런 고품질 반도체는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이 3년짜리 반도체를 본격적으로 공급한 곳이 삼성이다. 시장에서 딱 요구하는 품질의 반도체로 대신 가격이 쌌다. PC 시장이 성장할수록 삼성 반도체의 비중도 늘어났고, 마침내 PC가 컴퓨터 시장의 대세가 되면서 삼성반도체가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시장에서 선두로 나아가게 된다.
195~196쪽, 〈1983년 이병철의 도쿄 선언: 삼성 반도체, 세계 일류 산업이 되다〉 중에서 사무실에는 ‘여자가 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종종 대졸 여성이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있어도 결국은 이런 일을 맡겼다. 아니면 디자이너나 비서 등 여성이 하는 것으로 인식된 일만 할 수 있었다.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남자 동기와 같은 업무를 주지 않았다. 대졸 여성은 그런 대우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대기업에의 취업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대우의 대졸 여성 공채는 획기적이었다. 대우는 대졸 공채로 들어온 여성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커피를 타지 않게 하겠다고 했고, 남직원과 똑같은 업무를 맡긴다고 했다. 200명을 모집한다는 공고에 5,300명이 넘게 지원했다.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은 대졸 여성이 대거 지원한 것이다.
206~207쪽, 〈1985년 대졸 여직원 공채: 여직원에게 정당한 업무와 임금을!〉 중에서 1992년 이전의 한국 주식 시장과 그 이후의 한국 주식 시장은 완전히 다르다. 단지 외국인 투자에 문을 열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달라졌을까? 사실은 투자 문화와 투자 상식, 투자 관행 등 모든 게 달라졌다. ‘기업이 성장하고 이익이 증가하면 주가도 오른다’ ‘좋은 주식을 고르면 2배, 5배, 심지어 10배의 수익도 낼 수 있다’ ‘주식 투자를 하려면 기업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저 PER 주, 저 PBR 주가 저평가된 주식이다.’ ‘저평가 주를 사서 오래 소유하고 있으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아는 당연한 투자 상식이다. 그런데 1992년 이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PER(주가수익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뭔지, 그런 지표들을 이용해서 어떻게 주식 투자를 한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244~245쪽, 〈1992년 외국인 주식 구입 허용: 주식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중에서한국 문화산업 수출에서 온라인 게임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리니지는 단순히 한국을 온라인 게임 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게임으로 그치지 않는다. 현대 경제는 점차 디지털화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경제의 특징과 문제점이 모두 리니지에서 나타난다. 리니지는 현대 디지털 경제의 시초이다. 리니지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엄청난 사회적 논쟁에 휩쓸렸다. 그 이전까지 우리가 살던 곳은 아날로그 사회였다. 그런데 리니지는 디지털 게임 세계에서 사람이 생활하고 싸우고 서로 돕는 게임이었다. 리지니 게임 안은 완전한 디지털 사회였다. 이 디지털 사회에서 만들어지던 관습과 문법이 기존의 아날로그 사회와 충돌을 일으켰다.
283쪽, 〈1998년 리니지 출시: 디지털 경제에 충격을 안기다〉 중에서 대우 파산을 계기로 기업의 부채 자금 관리가 완전히 달라졌다. 기업은 원래 부채가 많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보유 현금이 많은 곳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하나는 ‘대마불사’라는 한국 경제의 암묵적 합의가 무너진 것이다. 그때까지는 중소 그룹은 망할지 몰라도 대규모 그룹은 망하지 않는다, 정부가 어떻게든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0년대 말의 대우는 재계 2위의 재벌 그룹이었다. 2위 그룹이 망한다면, 그 어떤 기업들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벌이는 행동과, 잘못하면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벌이는 행동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때부터 한국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를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정부가 더 이상 기?
출판사 서평
처음 보는 한국 경제사 이야기 영화 〈기생충〉에서 아버지 기택은 아들 기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1901년 8월 20일, 경부선 철도의 공사 첫 삽을 뜨는 자리에 참여한 당시 경부철도주식회사의 이사 타케우치 츠나竹內綱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만약 경성-부산 간 철도가 관통한다면 연선의 산업이 발달하고 문화 향상에 있어 그 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 믿습니다. 아울러, 장래를 생각해보면 시베리아 철도 및 중국 내에서 계획되고 있는 철도가 관통한 후에는, 대한제국의 의주를 거쳐 경성에 이르고 경부철도에 접속해 경성과 부산이 동양 유수의 도시가 되는 것은 세계 대세의 흐름인 바입니다. 그 때문에 경부 철도는 유익하고, 그 성공으로 대한제국의 융성을 추진할 수 있는 이 철도의 기공은 실로 국가의 경사라 할 것입니다.”
타케우치 츠나竹內綱 경부철도 주식회사 이사, 경부선 북부 기공식 축사, 1901년 8월 20일. 이제 막 경부선의 첫 삽을 뜨는 자리에서 앞으로 철도가 의주를 지나 장래 중국의 동북지방, 속칭 만주를 거쳐 (당시는 아직 만주 철도의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다) 시베리아까지 이어져 더 넓은 세계와 이어질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다. 그러나 경부선 철도에서 정말 ‘계획했던’ 것은 따로 있다. 경부선의 노선을 고민하며 이후 만들어질 호남선을 미리 염두에 두었던 것. 그래서 지금의 경부선 코스가 나왔다. 노래도 있지 않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내님은 어디에 있나/ 서울에 있나(서울에 있나) 대전에 있나(대전에 있나)/ 대구에 있나(대구에 있나) 부산에 있나 찍고 (…)” 대전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이다. 철도가 도시의 성장을 이끌었다. 오늘날 한국의 도시 순위 상위에 있는 곳은 대부분 경부선과 호남선의 영향 아래 성장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도시망, 국토의 공간적 발전에 1901년 공사를 시작해 1905년에 영업을 개시한 경부선의 영향이 짙게 드리운 것이다.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사건은 무엇인가 전작『말하지 않는 한국사』와 『말하지 않는 세계사』에서 역사의 뒤안길을 뒤져 맛깔난 에피소드들을 뽑아내고, 『규제의 역설』에서 세계의 온갖 규제를 시시콜콜 흥미진진하게 전해주었던 최성락 교수가 드디어 자기 전공 영역으로 돌아왔다. 『49가지 결정』은 한국 경제사 선택의 순간 가운데 가려 뽑은 49가지 결정적 선택 이야기다.
그 결정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경부선 개통이다. 일제가 조선의 물자를 수탈과 대륙 침략을 위해 철로를 놓았다는 얘기는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이 노선 선정에도 꽤 공을 들였단 건 잘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그 계획 아래 시행된 계획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무수히 많은 사건을 지나쳐 왔다. 저자는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이중에서 어떤 사건들을 골라내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한국 경제의 주요 사건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있다. 5.16 군사 쿠데타, 경부 고속도로 건설, 8.3 사채 동결, 장영자 사건, TDX 전자교환기 개발 등이다. 이렇게 유명한 사건만 골라내도 리스트가 금방 채워질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1972년의 8.3 사채 동결은 해당 년도뿐만이 아니라 1970년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경제 사건이었다. 그런데 2020년 현재, 8.3 사채 동결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1970년 당시에 이 사건이 중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이로 인해 2020년의 한국 경제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1982년의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도 1980년일대를 뒤흔든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2020년 현대 한국 경제와 과연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같은 해 일어난 전자교환기 TDX 개발은 한국 정보통신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지금 상황에서 돌이켜볼 때 TDX가 과연 중요한 사건인지는 의문이다. TDX를 개발하지 않은 많은 개도국도 지금은 모두 우리와 똑같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무선통신 혁명이 이루어진 후의 시점에서 보면 전자교환기 TDX를 개발하거나 하지 않거나 차이가 없다.과거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 왔는가? 『49가지 결정』은 아직 접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소개한다. 보통은 예전에 중요한 사건들 위주로 관성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만다. 『49가지 결정』을 쓰면서 최성락 교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을 현재에 두고,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모습, 그것이 긍정적인 모습이건 부정적인 모습이건,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에 도달한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모습에 영향을 남긴 것만 추렸다. 역사란 무자비한 것이다. 당시에 아무리 중요하고 큰 사건이었더라도 지금의 우리와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급이 떨어진다.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저 에피소드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예전의 중요한 사건 중에 어떤 것은 선정되었지만 어떤 것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다른 책들에서는 주목하지 않았던 어떤 사건들이 이 책에서 처음 한국 경제의 오늘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로 남았다.
가령 사적 소유권을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사유경제의 기틀을 닦은 1912년의 조선민사령 공포, 시장의 자율성을 만천하에 공표한 1945년 미군정의 미곡 시장 자유화 정책 등은 보통 한국 경제의 중요한 사건들로 잘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관념들, 경제에 대한 생각들이 이후 한국 경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또 한국에 미친 주한미군의 역할을 흔히 정치적이거나 문화적인 부분에서만 찾는데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에 미친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처음 미군이 진주해 들어오고, 이후 철수했다가 한국전쟁을 통해 다시 들어온 후 장기 주둔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 경제의 오늘을 만든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현대 한국 경제에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지금의 한국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들을 선정했다. 여기 소개된 사건들은 그냥 사건인 것만이 아니라 책 제목 그대로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49가지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이러한 선택과 결정을 거치며 계속 변화해왔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도 있었고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도 있었다. 어쨌든 계속 국가 수준에서 선택을 하면서 변화를 만들었다.
다른 나라 창업주, CEO들의 이야기만 흥미진진한 게 아니라, 박정희와 이병철의 만남이 어떻게 한국 경제를 바꾸었는지, 소양강댐 건설 계획을 처음 듣자마자 정주영이 했던 일이 또 지금의 한국 경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가 포드자동차와의 합작이 어긋난 후 독자개발을 결심했던 것이, 이병철이 반도체에 ‘몰빵’하기로 했던 것이 어떻게 지금의 세계적인 대한민국 기업사로 이어지는지 등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리는 이런 거인들의 역사를 거쳐 오늘에 도달한 것이다.
2020년 ‘K’ 자를 앞세우고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기 존재감을 뽐내게 된 것에는 여기 소개된 49가지의 결정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다음 미래가 궁금하다면 먼저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왔는지 살펴보자. 여기 그 해답이 있다.
상품 정보 고시
도서명 49가지 결정
저자 최성락
출판사 페이퍼로드
출간일 2020-10-23
ISBN 9791190475303 (1190475308)
쪽수 352
사이즈 141 * 211 * 26 mm /46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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